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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료 현주소 <상> 환자 역외 유출 여전

의료기술 비슷한데도… 큰 병 생기면 일단 ‘서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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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이제 산업이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취임 후 의료관광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때마침 부산의 의료인들이 사단법인 부산의료발전협회를 최근 만들어 지역 환자들의 역외 유출을 막고, 의료관광을 후원하는 구심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이를 계기로 부산 의료계의 현황과 나아갈 바를 짚어본다.


- ‘서울 큰 병원이 최고’ 선입견 탓
- 2017년 60만 명 수도권서 진료
- 경제적 손실·장거리 치료 악영향

- 지역서도 난이도 높은 수술 가능
- 해운대백병원·고신대복음병원
- 혈액 불일치 간이식 수술 시행
- 온종합병원 간 암 환자 줄이어

#1. 50대 중반의 회사 임원 최모 씨는 최근 심한 피로감과 식욕 부진이 끊이지 않아 휴가를 내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간암 3기. 큰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는 충격적인 설명을 들었다. 주변 친구와 가족회의 끝에 최 씨는 친척으로부터 소개받아 서울의 모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부산보다는 수술을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 10여 년 전 부산서 개원한 김모 원장은 매년 1박 2일 일정으로 건강검진을 서울지역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받는다. 이유는 단 하나. 친절한 서비스 때문이다. 그는 평소 지역의 의료 수준이 서울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때만이라도 충분히 대접받는 기분을 들게 해주는 단골 병원을 찾는다. 전담 직원의 꼼꼼한 문진과 일체의 기다림 없이 이어지는 각종 검사 등은 마치 휴식을 취하는 듯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부산지역 의사들은 서울에 비해 의료수준이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간암 및 간담췌 수술로 전국의 환자가 줄을 잇는 온종합병원 박광민(가운데) 통합소화기센터장의 단일공 복강경 담낭절제술 모습.
■여전히 진료 위해 서울행

‘부산의 의료수준이 서울보다 10년 정도 뒤진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부산에선 이런 말이 회자되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부산시민이 적지 않다. 주변 지인들이나 친척도 예기치 않게 암 등 희귀 중증질환이 발견되면 지역에서 그 분야의 대가들을 수소문한다. 친절하게 한두 명을 소개한 후 나중에 경과를 물어보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서울로 가 있다. 실제로 부산의 의료수준이 서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막상 자기 자신이나 가족 친지에게 닥치면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다. 이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같은 추세는 각종 수치로도 입증된다. 건강보험공단의 2017년 한 해 동안 부산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 통계에서다. 이에 따르면 부산지역 환자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진료받은 비율이 대구(16.6%)보다 높은 17.4%인 60만여 명이고, 그에 따른 역외 진료비 부담은 60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부산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진료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의료 비용도 만만찮다. 역외환자를 연인원 60만 명 기준으로 환자 1인당 보호자 0.5명이 동행한다고 가정할 때 교통비와 식대는 1600억 원, 이 외에 환자 보호자의 숙박비와 간병비 등 제반 비용도 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타지역 환자가 부산 지역에서 진료를 보는 비율도 저조하다.

건강보험공단의 2017년 지역별 환자 유입 비율을 살펴보면 부산은 23.8%로, 서울(38.5%) 대전(34.8%) 광주(34.7%) 대구(29.5%)에 뒤처지며 전국 시·도에서 13위에 그쳤다.

건강보험공단의 또 다른 통계도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부산지역 암 환자가 서울 의료기관에 입원한 수치는 전체 13만3777건의 10.1%에 해당하는 1만3549건이었다. 입원이 아닌 외래진료로 서울을 찾은 환자는 전체 83만1005건 중 12.3%인 10만2195건으로 나타났다.

■암 수술 후 치료과정이 더 문제

송도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위치한 고신대복음병원 전경.
그럼 부산의 의사들은 지역 의료 수준이 서울에 비해 어떻다고 생각할까. 부산의 대학병원 의료수준을 서울의 ‘빅5’ 병원과 비교하면 어떤지에 관해 물어봤다.

모 대학 A 교수는 “의료 기술은 동급으로 봐도 무난하지만 의료시설과 장비, 친절도 등의 의료서비스는 약간 낮은 수준”이라고 평했다. 다른 대학 B 교수는 “특정 수술의 경우 단지 서울에서 먼저 시작했을 뿐 지금은 거의 같은 수준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지역 환자들의 서울행은 왜 줄지 않을까.

아직도 의료는 서울이 최고라는 뿌리 깊은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신대복음병원 오경승 병원장은 “검사 장비도 같고, 의료 수준도 비슷한데 예약을 했더라도 대기시간이 길고 의료비도 훨씬 비싼 서울행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간과한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암 수술 후 관리의 지난함과 위험성이다. 암 환자의 경우 수술 후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면역 및 영양 상태와 혈소판 등 각종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1~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각종 검사를 해야 한다. 환자는 이를 위해 새벽 KTX나 SRT를 타고 올라가 오전에 겨우 외래진료를 보고, 다시 기다렸다가 오후에 피검사 후 다시 내려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면역 상태가 생명인 암 환자가 이렇게 무리를 하면 오히려 예후가 더 나빠진다. 그러다 일주일 후 단지 피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을 다녀와야 한다. 만일 이 환자가 부산에서 수술을 받았다면 반나절이면 피검사 결과까지 볼 수 있는데도.

■부산서 안 되면 서울서도 안 된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메디컬스트리트에 의료기관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다.
부산에는 과연 믿을 만한 의사들이 없을까.

간암 환자의 간 이식을 예로 들어보자. 간 이식은 때론 의식이 없거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긴급한 중증 환자를 마주해야 한다. 의료계 전 과목의 모든 수술 중 가장 난도가 높은 수술이어서 간 이식을 외과수술의 꽃이라 부른다.

우주탐사선이 항공공학뿐 아니라 전자공학 물리학 수학 신소재공학 등 과학기술의 총아이듯 간 이식팀에는 간담췌외과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등 의료진과 전문간호사 그리고 이들을 총괄하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필수다. 간 이식팀이 있다는 사실은 수술 후 고도의 집중 관리가 요구되는 중환자실을 완벽하게 갖춘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인정받은 척도가 된다.

이제 부산지역 대부분 대학병원은 간 이식을 하고 있다.

해운대백병원은 최근 국내 간이식 분야 명의 왕희정 교수를 초빙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혈액형 부적합 간 이식을 성공한 왕 교수는 서울백병원과 아주대병원에서 3500여 건의 간 수술과 570여 건의 간 이식을 집도했다. 부산 외과의 개척자 장기려 박사의 명맥이 이어져 외과수술에 특히 강점을 보이는 고신대복음병원은 2015년부터 간이식을 시작해 지금까지 70여 회 시행했다. 신동훈 교수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혈액 불일치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부산대병원 윤명희 교수, 동아대병원 김관우 교수, 그리고 병원급으로 좋은강안병원 주종우 교수와 부산 인근 양산부산대병원도 간 이식을 하고 있다.

온종합병원 박광민 통합소화기센터장은 전국의 대학병원에서 수술 불가 판정을 받은 간담췌 암 수술을 잇달아 성공,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부산을 넘어 경북 호남 서울 등 수도권 대학병원의 수술 대기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악성 암 환자를 살려내 화제가 됐다.

㈔부산의료발전협회 김동헌 이사장(온종합병원장)은 “지금은 서울과 부산의 의료수준이 바슷해 부산서 안 되면 서울서도 안 된다”며 “부모님 사망 후 ‘서울의 큰 병원이라도 가볼걸’하는 죄의식은 이제 안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

이흥곤 선임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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