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의료관광 첫 허용 후
- 10년간 외국인 49만여 명 방문
- 부산, 자연경관·의료기술 바탕
- 환자 유치 공들였지만 실적 저조
- 10명 중 8명은 수도권 쏠림현상
- “관광보다 의료에 주안점 두고
- 보여주기식 행사는 쇄신 필요
- 공모 심사 투명성도 높여야”
# 3년 전 몽골에서 10대 후반의 남자 혈액암 환자가 고신대복음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현지에 공을 들여 운영하는 해외거점센터를 통해 이 병원에 온 환자는 몽골 최고위층의 자제. 몽골은 의료 수준이 낮아 부유층 대부분은 외국에서 수술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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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관광은 이제 부산의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몽골에서 온 부부(오른쪽)가 고신대복음병원의 VIP 건강검진을 받기 전에 병원 건강검진센터 코디네이터와 간호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
호텔급 외국인 전용 병실에 입원 후 3주간 각종 검사와 수술,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결제한 금액은 1억여 원.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기간 함께 온 부모는 짬이 날 때 해운대와 태종대 범어사 등 부산의 명소를 둘러보고 백화점과 면세점, 자갈치시장 등지에서 쇼핑했다. 안내는 병원 협력사인 국내 에이전시의 통역이 맡았다.
이 환자는 귀국 후 6개월에 한 번씩 후속 치료를 위해 고신대병원을 찾는다. 이때도 2주간 머물며 줄기세포 및 비타민 치료 등을 하며 3000만 원 안팎의 치료비를 낸다. 이와 별도로 부모나 친척이 번갈아 동행해 300만 원 정도의 VIP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번 달에도 고신대병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 2019년 30대 중반의 러시아 유방암 환자가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 환자는 수술받기 불과 며칠 전 러시아 현지 병원에서 원격진료센터를 통해 동남권의학원 유방암 전문의의 진료를 받았다. 한국에 갔을 때 우려되는 점과 수술 방법, 예후까지 상담한 후 의료진을 신뢰하게 돼 며칠 뒤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개월여간 각종 검사와 수술, 방사선 치료가 원스톱으로 진행된 끝에 암이 말끔하게 제거돼 귀국했다. 진료비는 3000여만 원. 이후 코로나19로 한국에는 못 오고 있지만 동남권의학원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현지 원격진료센터에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예정된 항암치료를 했고, 최근 원격 판독을 통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제는 암 환자가 아닌 건강한 예비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맥 잘못 짚고 있는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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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유방암 전문의가 러시아 현지 병원의 원격진료센터에서 통역이 배석한 가운데 유방암 환자와 원격진료를 통해 상담하고 있다. |
의료서비스에 휴양 레저 쇼핑 문화체험 등 관광 활동이 가미된 개념인 의료관광. 외국인 환자 유치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으로 국내에서 의료관광이 처음 시작된 2009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6만여 명. 이후 매년 성장을 거듭해 2019년 49만7400여 명으로 양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
부산도 이에 힘입어 높은 의료 수준과 빼어난 볼거리를 내세워 그동안 외국인 환자 유치에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9 외국인 환자 유치실적 통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만9748명. 한국에 온 전체 외국인 환자 49만7464명의 4.0% 수준이다. 반면 서울(64.4%)과 경기도(10.7%)를 찾은 외국인 환자는 전체 환자의 75.1%를 차지했다. 외국인 환자 10명 중 7.5명이 수도권을 찾는 극심한 쏠림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별 차이 없는 의료 수준을 고려하면 이 같은 쏠림 현상은 비정상적이다.
눈길 끄는 점은 대구와 인천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 변변한 국제공항이 없어 김해공항을 경유해 해외 환자를 유치하는 대구의 국내 점유율은 6.3%, 제2의 도시를 놓고 부산과 경쟁하는 인천도 5.0%로 부산보다 높다.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들은 바다 등 천혜의 관광자원, 수준 높은 의료시스템과 다양한 의료기관, 특급호텔 백화점 면세점 카지노, 국제공항을 갖춘 부산의 이 같은 초라한 성적은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 미래가 없으며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투자에 비해 실속이 없다. 부산시의 의료관광 1년 총 예산은 30억 정도로 대구시(20억)보다 1.5배 많고 제반 여건도 좋지만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은 초라하다.
의료관광 전문가들은 병원 대신 행정기관이 주체가 되는, 지금과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 의료관광 행사에 각국 에이전시 관계자 한두 명을 더 초대해놓고 참가국이 늘었다고 홍보하는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모 사업 심사의 공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외형적으론 외부 위원 및 전문가를 통해 공정한 심사를 한다지만 신청기관으로부터 불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특정 의료기관들을 제외하는 사례도 발생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의료’보다는 ‘관광’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도 지적됐다. 부산시 직제에는 관광마이스산업국 마이스산업과 내 의료관광산업팀이 있다. 대구시에는 혁신성장국 의료산업기반과 내 의료관광팀이 있다. 한 전문가는 “일과성에 그치는 관광보다 의료에 주안점을 둬야 지속성이 유지된다. 또 실속 없는 보여주기식 컨벤션 행사를 없애든지 콘텐츠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부산 의료관광을 담당하는 부산경제진흥원이 지금처럼 시 의료관광산업팀의 하부 조직으로 옥상옥의 역할을 하면 미래가 없다”며 “동등한 업무 분장과 협업 등의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트 코로나’ 부산 의료관광
박형준 부산시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부산이 의료관광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해 단순한 해양관광도시를 넘어 세계적인 의료관광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관광은 의료서비스와 휴양 레저 문화 등 다양한 관광 활동이 결합한 융복합 산업으로 부산의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한 축으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최소 한 달 이상을 머무르는 체류형 환자 유치에 중점을 둬야 한다.
암 치료, 수술을 해야 하는 희귀 중증질환, 방사선 및 핵의학 영역 같은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활용한 체류형 고부가가치 의료관광상품의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오는 2023년 가동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중입자 가속기, 정상 조직의 피해가 전혀 없는 4세대 플래쉬 방사선 치료는 외국인 환자 유치에 매력적인 차세대 치료법이다.
해외 병원과의 교류를 통해 원격진료를 할 수 있는 거점센터 마련도 중요하다. 여기에 환자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 네트워킹과 현지 의료기관에서 원격진료를 도와줄 헌신자까지 두는 세밀함도 갖춰야 한다. 러시아 몽골 베트남 카자흐스탄 중국 등 기존 국가와 함께 부산의 자매도시로 마케팅을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
황상연 동남권의학원 국제진료센터장은 “외국인 환자 유치는 지리적 거리가 중요하지 않다. 실낱같은 치료 희망만 있으면 거리와 상관없이 찾는다”며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스티브 잡스가 ‘방사선 미사일’치료를 위해 스위스 바젤대학에 간 것이 비근한 예”라고 말했다.
부산 서구의 의료관광산업특구 지정도 외국인 환자 유치에 희소식이다. 조만간 최종 결정될 특구에는 대학병원 3개, 종합병원 1개가 집중된 전국 유일 지역으로 암, 심뇌혈관 등 중증질환 치료에선 서울이 부럽지 않은 의료 수준이다. 의료관광산업특구 지정을 대비해 각 병원은 외국인 환자 전용 병동, 보호자용 게스트하우스 등 인프라와 치료비 일부를 쿠폰으로 페이백해 서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제도 등도 마련하고 있다.
㈔부산의료발전협회 김동헌 이사장(온종합병원장)은 “이런 여건이 완성되면 성형외과 피부과 등 미용성형 영역은 서면메디컬스트리트, 중입자 가속기 등을 갖춘 동부산권 의료기관은 휴양을 겸한 웰니스 의료관광이라는 지역 특성과 연계한 차별화된 큰 그림이 부산의 의료관광을 새롭게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흥곤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