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석 수난 시대!’
서울 수락산과 경기도 불암산 등 수도권의 산에 이어 부산의 진산 금정산과 백양산 자락에 있는 봉우리의 정상석도 사라졌다고 한다. 바위 인근에 설치된 안전 로프도 고의 훼손됐다고 한다. 이 고약한 행위가 누구의 소행인지 왜 그랬는지 정말 궁금하기까지 하다.
정상석은 글자 그대로 산 정상에 세워진 바위로, 해당 산의 이름과 높이가 새겨졌으며 표지석이라고도 부른다. 산꾼들은 이 정상석을 무척 좋아한다. 사실 산이 좋다고 하지만 막상 급경사 된비알을 오르다 보면 힘이 드는 게 인지상정.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더이상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그렇게 정상석이 고마울 수 없다. 그래서 인증샷은 필수!
오랫동안 산을 다니면서 정상석과 관련된 보고 들은 숨은 사연을 몇 가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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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 정상석. 왼쪽 뒤에 정상석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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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과 양산의 경계에 솟은 금오산(761m).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의 충절이 서려 있는 구미 금오산과 남해 보리암과 기도 효험이 빼어난 향일암을 품은 여수 금오산에 비해 지명도는 낮지만 헌걸 찬 근육질 암봉에 영산알프스 산군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알토란 같은 숨은 명산이다. 보석 같은 낙엽길도 이어져 적지 않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지금도 금오산 정상석 왼쪽 뒤 바위 위에는 과거 어떤 비석 내지 정상석을 세웠다 떼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바로 경남고 모 기수 동기생들이 정상석을 세운 흔적이다.
사연은 이렇다. 오래전 경남고의 모 기수 동기생들이 이 금오산이 맘에 들어 모산(母山)으로 정하고 산 정상에 정상석을 세웠다. 세월이 흘러흘러 밀양시가 정상석을 세우기 위해 금오산에 올라보니 시유지에 불법(?)으로 세운 정상석이 하나 서 있지 않은가. 이후 시는 수소문 끝에 해당 경남고 동기회에 정상석의 철거명령 최고장을 보냈다. 현재 서 있는 왼쪽 뒤 옆 철거 자국은 바로 당시의 웃지 못할 해프닝 때문에 남은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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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만 철마산 정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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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세워진 큰 정상석과 예전에 있던 조그만 정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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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부산 기장의 철마산 정상석.
오래전 국제신문의 인기 시리즈물 ‘근교산&그 너머’를 연재하던 기자는 거문산~철마산 코스를 소개했다. 당시 산행팀이 철마산에 올랐을 땐 지금의 커다란 정상석 대신 바로 옆의 조그만 정상석만 하나 달랑 있었다.
문제는 산행팀이 다녀간 뒤부터 신문에 소개되기까지의 10일 정도 되는 기간 중에 부산의 ‘철마거문산악회’ 회원들이 조그만 정상석 바로 옆에 커다란 정상석을 세웠다. 기자는 거문산~철마산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평소 전혀 취급하지 않던 정상석 사진을 그날따라 신문에 게재까지 했으니 여러 곳에서 문의전화가 올 밖에.
전화내용이 거의 다 이랬다. “산행팀 정말로 철마산에 간 것이 확실합니까” 아니면 “신문에 난 그 사진은 언제적 사진입니까”. 기자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한 것은 당연지사.
신문을 보고 철마산을 찾은 한 지인은 신문에도 없는 커다란 정상석이 새로 생긴 사실을 보고 그날 정상에서 모두들 “국제신문 산행팀이 정말 다녀간 것 맞냐”는 뼈있는 농담을 했다고 전했다.
아마 문의전화가 한달쯤 계속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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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마산 574봉 돌탑 옆에 서 있는 당나귀봉. 이렇게 눈살을 찌루리게 하는 정상석은 없어져야 하는 게 산꾼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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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철마산의 억새군락지이자 빼어난 전망대인 574봉 돌탑 옆에는 부산의 모 산행단체가 세운 정상석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은 뜻밖에도 당나귀봉.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의 약어였다.
당시 동행한 이창우 산행대장은 “산깨나 좀 탄다는 산꾼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발생했다”며 “굳이 정상석을 세우려면 574봉이 철마산의 전위봉임을 감안할 때 ‘가지산 중봉’처럼 ‘철마산 중봉’이나 소산벌 뒷산이기 때문에 ‘소산봉’쯤으로 명명했다면 산꾼들이 수긍하며 박수를 쳤을텐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 ‘파류봉’에 세워진 ‘파리봉’이란 정상석은 산행팀에게 큰 곤욕을 안겨줬다. 파류봉은 금정산성 제1망루 북쪽에 위치한 준봉. 참고로 제1망루 남쪽에는 상계봉이 위치해 있다.
파류봉에는 부산의 모 산악회가 ‘파리봉’이라는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기자는 기사에 파류봉이라 언급하고 지도에는 파류(파리)봉이라 표기했다.
이에 한 독자는 정상석에 엄연히 ‘파리봉’이라 적혀 있는데 산행팀이 ‘파류봉’이라 적었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어 틀렸다고 항의를 하지 않는가. 부산시가 공식적으로 세운 정상석도 아닌데 말이다.
적지 않은 자료를 뒤져봐도 딱히 어느 것 하나 ‘이것이 맞다’라고 입증할 문구는 없었다. 산행팀도 당시 고민이 많아 가까운 지인들에게 문의해 본 결과 파류봉이 일반적으로 많이 회자된다는 사실에 입각해 파류봉으로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이와 관련, 부산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산악회는 산 정상에 정상석을 세울 수 없다”고 말한 후 “그 정상석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 된다면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회적 통념으로 혼란을 일으키거나 산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상석은 마땅히 뽑아 마땅하다. 물론 금오산 정상석을 허락 없이 세운 경남고 모 동기회는 약간 억울하겠지만.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있던 정상석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이는 문제가 분명 있다.
하루빨리 범인이 잡혀 사라진 정상석이 제자리로 빨리 돌아오길 기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