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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자꾸만 걷고 싶은 인창병원 꽃길

  • 김나연 인창병원·인창대연요양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  |   입력 : 2024-06-03 18:27:11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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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연한 시작이었다. 초량의 본원은 5층의 옥외정원 화단을 다 들어내고 바닥 방수 공사를 해야 했다. 대연동의 분원은 1층 뒤쪽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 탓에 대나무 울타리를 다 걷어내면서 공사장 펜스와 맞붙는 아주 휑한 상황이 된 까닭이다.

인창요양병원에 조성한 꽃길.
어느 나이 든 정원지기는 봄에 수선화가 피기 시작하면 덜컥 겁이 난다는데, 3월에 들어서자 시계는 정말 숨 가쁘게 돌아갔다. 1층 목수국과 배롱나무를 소심하게 전지하고 시기적절함에 뿌듯하게 느끼던 것도 순간. 우리 화단의 미니 사과나무 세 그루는 전부 뻣뻣하게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5층 옥외정원은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을 야생화들로 채우리라 마음 먹었으나, 정작 올라오는 싹이 잡초인지 화초인지도 모르던 까막눈이었다. 그 정체가 드러날 때까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하얀 샤스타 데이지가 가득하던 지난해 5월, 간병사 한 분이 정성스레 키워낸 핑크빛 낮달맞이꽃, 이곳 저곳 올라오는 수염패랭이가 눈에 아른거리고 꽃대가 많은 수국이 막달에 들어선 임산부처럼 영양과 물마름이 걱정돼 아침 일찍 정원으로 나가보니 어김없이 할아버지 환자분이 봄꽃처럼 활짝 반겨주셨다. 커피사탕, 홍삼사탕을 쥐어주시는 할머니는 큰금계국이 비라도 오면 쓰러질 것 같다고 묶어주셨다. 또 다른 할머니는 꽃들도 사랑한다고 얘기해주면 좋아한다며 ‘사랑해 꽃들아’를 연발했다. 할머니 한 분은 “우리집에 감나무가 셋이 있었는데 남편이 정말 잘 키웠어”라며 아련한 이야기를 꺼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웃 담장을 넘어선 감나무 이파리에 볼멘소리가 나오자 할머니가 입원한 사이 서울 사는 아들들이 감나무를 다 베어버렸다고 한다. 세상에….

올해 4월 중순 유기질 비료를 가득 넣고 심은 상추가 풍작이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과의 상추 따기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과 첫 수확의 기쁨도 나누었다. 봄꽃이 지자 수레국화를 파종했고, 지난해 심은 에키네시아도 월동을 잘해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 여름 정원도 슬슬 준비가 되어 간다. “꽃을 보게 해줘서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받으면 너무 감사하다. 하루하루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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