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국가기상센터 내부 모습. 이 곳에서 기상에 대한 종합 분석과 기상통보관의 예보 등이 이뤄진다.

'기상청 오보 무엇이 문제인가'.

올들어 기상청 예보가 자주 틀려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지난주에는 국정감사에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일기예보가 경제 사회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다. 비나 눈이 오는지 여부에 따라 경제활동의 모양이 달라진다. 가정에서도 모처럼 주말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로 취소했는데 비가오지 않는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정확한 예보에 대한 욕구는 커지고 있지만 예보의 정확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형국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대책은 없는지 짚어본다.

잇따른 오보

지난 19일. 주말인 20일에 서울 경기 강원 영서 충청 등 중부지방에 비가 온다고 예보했으나 당일 비가 온 곳은 없었다. 이날 부산도 오전엔 구름이 많다고 했으나, 아침부터 청명한 날씨였다. 물론 날씨가 쌀쌀해진다는 예보는 틀리지 않아 큰 오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상청은 지난 여름부터 수차례 빗나간 예보로 신뢰를 많이 잃었다.

그러면 과연 예보가 얼마나 틀릴까. 기상청이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예비특보의 정확도가 크게 떨어졌다. 예비특보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기상청이 미리 발표하는 것이다. 올들어 8월까지 발표한 588건의 예비특보 중 특보로 이어진 사례는 56.5%로 절반을 조금 넘었다. 지난 2002년에는 82.2%였다. 또 2002년 이후 예보 데이터를 보면 단기예보(오늘~내일)의 강수유무 정확도가 84.5%인 반면 중기(2~7일) 예보는 64.3%, 장기(1개월) 예보는 43.8% 였다. 일주일전 예보를 믿고 계획을 세웠다간 곤경에 처하기 십상이다.

장마 후 큰비, 청명하지 않은 가을 하늘

올해 여름 장마가 7월 중순께 끝났지만 8월에 큰비가 계속 내렸다. 휴가 계획을 장마 뒤로 미뤘다가 낭패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9, 10월 가을 하늘은 공활하다고 애국가 가사에도 나와있다. 하지만 이번 가을은 그렇지 않다. 9월 이후 최근까지도 뭉게구름이 피거나 비가 내리기 일쑤였다. 높은 하늘에 떠있는 양떼구름이나 새털구름 조개구름은 눈을 씻고봐도 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현재 기상청에서 운용중인 슈퍼컴퓨터 2호기.

기상청이나 기후학자들은 주된 원인을 지구온난화에서 찾는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지만 다수가 인정하는 학설이다. 과거엔 6, 7월 중 장마전선이 한반도 주위에 머물다 7월 중순 이후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커지면 장마가 끝나고 화창한 여름 날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 여름엔 데워진 적도부근의 공기가 북쪽으로 이동해오면서 8월에 마치 열대지방 같은 날씨가 계속됐다. 대기 중 에너지가 넘쳐 기상현상이 급변한 것이다. 지난 여름 한반도와 중국 황하 부근에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 가을 날씨의 변화 역시 온난화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여름 날씨가 9월 초·중순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최저기온 상승, 일교차 줄어

이런 이상 현상의 원인이 최저기온의 상승에서 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여름에 열대야 일수가 크게 늘어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는 밤에 싸늘하고 낮엔 기온이 올라가 일교차가 큰 게 특징이다. 하지만 야간에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대기가 식지 않고 수시로 뭉게구름이 피는 날이 많았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20년 이전에는 7, 8월 중 열대야 일수가 5일을 넘는 도시는 없었다. 60년대엔 부산 서울 등 대부분 도시가 5일을 넘었고, 2000년대엔 서울 대구 부산 등 주요 도시들의 열대야 일수가 10일 전후이거나 넘었다. 반면 10월 중 일교차는 1920년대에 섭씨 10.7도에서 50년대 10도, 80년대 9.7도 등으로 좁혀지다가 2000년대에는 9.2도로 줄었다. 1920년대에 비해 일교차가 1도 이상 줄어든 것이다.

기상청, 기후변화에 대응 못해

기상청도 이러한 기후 변화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면 왜 오보가 많을까. 기상청은 여름철 오보가 많았던 부분에 대해 변화무쌍한 날씨 탓으로 돌린다. 8월이후 에너지가 충만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대기가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도 서구엔 비가 쏟아지고 금정구에는 햇빛이 나는 식의 국지성 호우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 순식간에 비구름이 형성되기 때문에 예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치예보모델 이상 없나

기상예보관이 일기를 판단할 때 수치예보모델의 분석을 토대로 한다. 물론 예보관은 이 분석에다 자신의 오랜 경험을 참고해 최종 판단을 한다. 즉 예보는 정확한 데이터 입수, 슈퍼컴퓨터의 처리능력, 수치예보모델의 정확한 분석, 예보관의 통찰력 등이 어우러진 산물인 셈이다. 여기서 수치예보모델에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정확한 예보는 어려워진다. 수치예보모델은 기상 분석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단적으로 기상청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달간 수치예보모델의 강수량 예측치는 1619㎜였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배 이상 많은 3410.1㎜의 비가 쏟아졌다. 이런 정도라면 수치예보모델을 믿을 수 없는 셈이 된다.

이상기후, 수치예보모델 부실, 예보관 경험부족

기상청은 수치예보모델을 1991년 일본에서 도입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 프로그램을 한국 실정에 맞게 개량해 1998년부터 사용했고, 그 뒤에도 현실에 맞도록 개선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기상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기상청이 이런 정도의 대비를 안했을 리 없다. 문제는 대비했는데도 틀렸다는 데 있다. 대비가 잘못됐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부경대 변희룡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여름 날씨는 열대성 기후였지만 기상청이 온대성 기상 예측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여름 이후 오보가 빈번했던 이유는 갑작스러운 이상기후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수치예보모델의 부실, 그리고 열대성 기후에 대한 예보관의 경험 부족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대책은 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오보를 줄일 수 있을까. 정확한 예보를 하기 위해선 정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제대로 분석이 이뤄져야 하며, 우수한 예보관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기상청은 2009년에 슈퍼컴퓨터 3호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맞춰 수치예보모델도 새 것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드·소프트웨어를 모두 교체할 예정이므로 일단 기다려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인력과 예산의 확충도 필요하다. 기상청 인력을 보면 일본 5841명, 영국 1763명, 호주 1400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230명에 불과하다. 예산도 이들 국가의 1/2~1/3 수준이다.

부산대 하경자 교수는 "오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고급인력 등 삼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면서 "특히 고급인력이 부족한 만큼 전문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지원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협조 : 한국기상청, 부산지방기상청

도움말 : 부경대 변희룡(대기과학) 교수, 부산대 하경자(대기과학) 교수, 기상청 장동은 수치예보모델팀장, 기상청 윤원태 기후예측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