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환자 후송 못해 혼자서 수술
- 사흘밤 꼬박 치료에 매진해 호전
- 인공위성 이용해 국내선 전화
- 와이파이도 터져 카카오톡 가능
- 밤이 길어 실내서 족구·탁구 즐겨
- 북극도 도전 극지의학 개척 희망
부산에서 1만2439㎞ 떨어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대원들의 건강을 최근 1년간 책임졌던 부산 출신의 김용수(62) 외과 전문의가 돌아왔다. 부산고와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부산지역 종합병원에서 일하다가 환갑이 넘어 미지의 세계 남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11월 10일부터 올해 11월까지 장보고과학기지 3차 월동연구대의 의료대원으로 근무했다. 지난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거제동 국제신문 4층 대강당에서 극지해양미래포럼 주최로 열린 '윤호일 극지연구소장 초청 극지 토크콘서트'를 찾은 김 박사를 만나 흥미진진했던 남극 생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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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연구원들이 빙하를 연구하려고 설치한 빙하캠프에 김용수 박사가 의료 지원차 현장에 나가 있다. |
■긴박했던 순간, 고마운 카톡
장보고기지 의사는 월동대원 16명과 남극의 여름에 해당하는 11월~2월 연구와 보급을 위해 기지를 찾는 수십 명의 건강을 돌본다. 혼자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해야 할 경우라면 X레이 촬영, 마취, 수술 집도, 간호 등을 도맡아 한다. 문제는 3월부터 10월까지 고립되는 시간이다. 김 박사는 "위중한 응급환자가 발생하더라도 바다가 꽁꽁 얼어붙어 쇄빙선이 다니지 못하는 등 후송할 교통수단이 없어 의사가 기지 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수술할 수밖에 없다. 외과의사를 뽑는 것도 이런 이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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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박사가 장보고기지 내 병원에서 환자를 수술하고 있는 모습. |
김 박사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지난 1월 대원 한 명이 '배가 아프다'며 찾아 왔는데 배에 덩어리가 만져졌고 X레이를 찍고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S상결장 궤실염이었습니다. 대장이 터지면 위험해질 수 있어 후송을 고민했어요. 사흘 밤을 꼬박 새우며 항생제 등 약물치료를 했더니 배에 뭉쳐진 덩어리가 사라지고 상태가 호전됐습니다."
지난 2월 말에는 물자를 보급하러 기지를 찾은 극지연구소 소속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승무원이 괄약근간농양으로 고통을 호소하자 김 박사는 국소 마취 후 수술을 진행했다. 또 손가락이 찢어지고 부러진 대원에게는 상처를 꿰매고 깁스를 했다. 그는 "혹시나 몰라 환자 상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정형외과 의사 친구에게 카톡(카카오톡)으로 보냈더니 내 진단과 치료방법과 같아 안도했다"고 말했다. 장보고기지에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국내선 전화가 깔려 있고 와이파이가 터져 카톡, 보이스톡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밤만 계속되는 극야에 불면·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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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극야 기간 밤하늘을 수놓은 오로라. |
해가 뜨지 않고 밤만 계속되는 극야도 견디기 힘들었다. "지난 5월 7일부터 8월 7일까지 93일간 이어진 극야 기간에는 햇빛을 보지 못하니까 멜라토닌이 잘 생성되지 않고 비타민D가 부족하고 생체리듬이 깨져 불면증과 우울증을 호소합니다. 바깥은 영하 30도에 칼바람이 불어 외출도 불가능하죠. 대원들에게 미리 준비해간 비타민D 주사를 줬어요. 대원들은 수요일 족구, 금요일 영화 감상, 자신의 관심 분야 발표회, 헬스, 탁구, 스크린골프, 오로라 감상 등을 하며 극야를 이겨냈습니다." 그는 "극야 기간 해가 잠시 뜨기는 하는데 건전지가 다 된 손전등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남극 이어 북극 도전하고파
김 박사가 극지에 관심에 두게 된 것은 2013년 3월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 웨델해 탐사에 나선 아라온호의 선의(船醫)를 하면서부터. 그는 "3개월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세상의 땅끝이라는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해 세상에서 가장 거친 바다라는 드레이크 해협을 거쳐 웨델해 빙원 사이를 헤치고 인간의 발길을 허용한 적이 없던 경이로운 얼음제국을 둘러보는 행운을 누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돌아와 일기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검색해 구매한 'Empire Antarctica'(남극 제국)라는 책에 감명받아 남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책은 영국 의사 게빈 프란시스가 남극에 있는 영국 핼리기지 월동연구대에 자원해 14개월간 고독, 황제펭귄과 함께했던 극지의 자연 및 인간의 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것이다. 김 박사는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남극 방문을 넣고 '남극 제국-얼음과 침묵과 황제펭귄들의 세상'(군자출판사)을 번역해 지난해 8월 출간했다.
김 박사는 귀국하자마자 버킷리스트 목록을 추가했다. "오는 7월 북극 다산기지로 가는 아라온호 선의로 승선해 남극과 북극을 다 가본 '서전'(외과의사)이 되고 싶어요." 극지의학을 개척해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오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