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정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구운 오리고기를 집어 맛보려 하고 있다. |
"단골집을 소개하려면 집 근처가 좋겠는데요."
이규정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수영구 망미동으로 기자를 초대했다. 단골집이라고 하면 한달에 한번 이상을 가야 하는 곳 아니냐며 집과 먼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소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일리있는' 이유였다.
부산지방병무청 맞은편 골목길에 있는 '명가(051-755-0709)'라는 간판을 찾았다. 이 이사장의 옆자리에는 수필가 남기욱 씨가 앉아 있었다.
신라대 인문대 학장을 역임하고 최근까지 대우교수로 일했던 이 이사장은 지난 6월로 신라대 강단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하지만 바빠 보였다. 며칠전에는 캄보디아 자원봉사를 다녀왔고 현재는 개강 예정인 소설창작교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무엇보다 "글 쓰는 일이 바쁘다"는 그였다.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그는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8박 9일 동안 캄보디아에서 시설보수와 의료봉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는 "6~7세의 아이들이 자신이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놀고 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며 그때의 기억을 아직 지우지 못한 듯 보였다.
그는 "나는 원래 외식을 잘 안하는 사람"이라며 "혼자 있어도 사먹지 않고 밥을 해먹는다"고 했다. 잦은 외식은 하지 않지만 활동이 많은 그에게 회식은 피할 수 없는 자리. 성당 사람들과 회식을 할 때 자주 찾는 곳이 이 음식점이었다. 게다가 이 집의 별미인 오리고기는 그의 부인이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생오리 유황오리를 주문했다. 커다란 쟁반에 오리고기가 가득 담겨 나왔다. 고소한 양념냄새가 풍겼다. 큼직하게 썰어놓은 버섯과 파가 향긋한 향을 더했다. 지방을 제거한 살코기였다.
생고구마와 살얼음이 담긴 백김치, 열무김치, 무채나물, 옥수수 등이 함께 상에 올랐다. 고기를 불판에 올려 굽기 시작하자 지글지글 고기 익는 냄새가 군침을 돌게 했다.
이 이사장이 "오리고기의 기름은 불포화 지방산이라 건강에도 좋다"고 말하자 곁에 있던 남기욱 선생이 "돼지고기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먹고, 쇠고기는 공짜로 사주는 것 아니면 먹지 말고, 오리고기는 찾아가면서 먹는다"며 맞장구를 쳤다.
양파소스에 찍어 고기맛을 봤다. 두툼한 고깃살이 쫄깃쫄깃 씹혔고 느끼한 맛이 없었다. 과일즙 등 이 집 비법이 숨어 있는 천연양념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역시 담백한 양념이 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맞게 간이 배어 있었다. 그는 이 집 음식 하나하나의 간이 다 맞고 깔끔하고 담백하다는 설명을 들려줬다.
고기를 먹고나자 오리뼈탕이 나왔다. 오리뼈를 고아낸 국물에 감자 고추 파 등이 들어 있었다. 생소한 음식이라 얼른 맛을 봤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났다. 돌솥밥에 숭늉까지 먹고나자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 이사장에게 방금 먹은 음식에 대해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해 줄 것을 청해봤다.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고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비영리법인의 수장으로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뛰어다니는 그다운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