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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방을 건설하기 전만 해도 낙동강 하구 본류였던 서낙동강에 일제시대 건립한 녹산수문. 수문 옆의 작은 봉우리가 노적봉이다. |
낙동강 1300리길이 숨을 다한 곳. 낙동강이 기나긴 여정을 끝내며 낳은 땅. 강의 서쪽, 강서는 낙동강의 자식과도 같은 곳이다. 강은 이 곳에 김해평야라는 비옥한 삼각주를 남겼지만 시련도 함께 줬다. 강서의 역사는 강과의 싸움의 역사다. 드넓고도 기름진 이 땅엔 이 곳에 깃들인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칠점산과 삼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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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옛 녹산수문. |
"강서는 모래톱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땅이죠. 때문에 유사 이래 끊임없이 지형이 변해왔어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서낙동강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박만택(74) 강서문화원 명예원장은 서기 1세기께 이후 바다였던 곳에 모래톱이 점차 쌓이면서 오늘날의 지형으로 조금씩 변해왔다고 설명했다.
강서구 대저1동에 칠점산(七點山)이란 자그마한 야산이 있다. 지금은 공군 제5전술 공수비행단 부대 안에 있어 일반인들이 잘 볼 수 없다. 7개의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뤄져 칠점산이라 했으나 지금은 일제시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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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만택 강서문화원 명예원장이 대저수문 앞에서 서낙동강의 물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각종 개발로 인해 모두 깎여나가고 한 개만 남아 있다.
"오랜 옛날만 해도 현재의 김해 봉황동 지역이 연안이었고 칠점산은 바다 위에 있는 섬이었어요. 이후 칠점산과 덕도산 등 주변의 작은 섬 주위로 낙동강의 토사가 퇴적되면서 오늘날의 삼각주가 형성됐죠. 그래서 칠점산은 강서의 뿌리인 셈입니다." 박 명예원장은 그러나 한개 남은 구릉마저 파헤쳐지는 등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강서의 혼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홍수와의 싸움
오늘날의 강서 지역에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건 300~4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해마다 홍수와의 전쟁이었다. 그나마 삼각주로 형성된 비옥한 들판이 이들을 여기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대저 1동에 동연정, 서연정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어요. 잦은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이 곳에 큰 못을 이뤄 못 주위에 정자를 지어 동연정마을, 서연정마을이라고 했죠. 그러나 계속되는 홍수에 지금은 못도, 정자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어요." 박 명예원장은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만 해도 잦은 홍수 때문에 수시로 마을 지형이 바뀔 정도"라고 전했다.
삼랑진, 원동을 거친 낙동강은 지금의 대저수문 있는 곳에서 동낙동강과 서낙동강으로 갈린다. 서낙동강은 평강천 지류를 만들어 이 세강은 예로부터 삼차강(三叉江)으로 불렸다.
"1930년대 동낙동강에 일천식(一川式·한 일 자처럼 곧은 모양) 제방을 쌓고 서낙동강 위로는 대저수문, 아래로는 녹산수문을 세우고서야 지긋지긋한 홍수에서 벗어났죠." 박 명예원장은 수문과 제방공사 전엔 지금의 서낙동강이 낙동강 본류였다고 했다. 대저수문으로 인해 서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준 데다 곧은 제방이 들어선 현재의 낙동강(동낙동강)이 본류가 됐다는 것이다.
#갈대숲이 비옥한 들판으로
온통 갈대숲으로 뒤덮였던 모래톱이 변신을 시작했다. 홍수가 줄어들자 낙동강이 선사한 비옥한 들판으로 사람들도 몰려 들었다. 오늘날의 곡창지대로 거듭난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인 일제 말만 해도 온 나라가 피폐하던 시절이었지만 이 곳은 부촌이었죠. 기름진 땅에서 벼농사가 잘된 데다 배 농장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했어요. 오죽했으면 가락동엔 쌀이 많이나 배가 부르고 풍족하다는 뜻의 '식만(食滿)마을'이란 곳도 있겠습니까." 강서문화원 박홍목(70) 원장은 그 어려운 시절에도 대저 고향에서 서울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낸 경우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많았다고 전했다.
낙동강의 본류였던 서낙동강 주변은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온갖 물산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명지에서 녹산, 가락동 강가는 나루터가 번성했다. 강가를 오가거나 바다에서 올라온 배들로 파시를 이룬 곳도 많았다고 한다.
녹산 출신인 강서문화유적보존회 황규성(72) 회장은 "강서구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녹산은 지금은 각종 개발로 옛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서낙동강의 길목으로 번창했던 곳"이라며 "해방 전후만 해도 녹산수문이 있는 성산나루터 주위로 가덕도 대구와 거제도 해산물 등을 실은 배들이 수도 없이 오가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글 = 장재건 기자 jjk@kookje.co.kr
사진 =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