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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바라본 가덕도의 맨 남단. 바다를 향하고 있는 지능선 상의 산정에 위치한 하얀 등대가 눈길을 붙잡는다. 등대에서 보면 다대포 거제도 진해시 등 남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진제공=강서구청 |
영도의 1.6배로 부산서 제일 큰 섬이지만 지난 1989년에야 비로소 부산 강서구로 편입된 막내 가덕도.
섬의 대부분이 산줄기로 얽히고 설켜 있어 활용가치를 못느낀 때문인지 오랜 기간 김해 진해 창원 마산 등 인근 지자체로 떠넘겨지는 유랑의 아픔을 겪었다.
패총과 고인돌이 발견돼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임진왜란 땐 해상 요충지로, 러·일 전쟁 땐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하는 등 꽤 쓸모가 있었던 것 같지만 섬이 육지를 배반하여 무슨 역모라도 했는지 유형(流刑)의 이 섬은 파도와 함께 외로움을 곱씹어야 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반짝 소개된 적도 있긴 있었다. 3년 전 태풍 '매미'가 섬을 집어삼켰을 때였다.
가덕도는 이제 낯설지 않다. 부산신항과 컨테이너 배후도로,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와 가덕대교 등 부산의 미래 서부산권 개발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상전벽해란 말을 새삼 떠올리며 가덕 주민들은 밝은 미래를 꿈꾸었지만 2006년 9월 섬 주민들은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허울 좋은 대역사에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내주고 정작 주민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 때문이다. 남측 컨부두는 어민들의 생업을 앗아갔고, 반드시 필요한 섬 일주도로 계획은 '하세월' 하면서 부산과 섬을 잇는 도선은 연말이면 없앤다고 한다. 대신 가덕대교와 거가대교를 연결하는 천성~눌차 도로공사 계획만 애드벌룬처럼 띄운다. 투기자본이 몰려 70% 이상의 토지가 외지인의 소유가 된 사실도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순응은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옛날이 그립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다. 가덕도에서 태어나 지금의 삶도 가덕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순혈' 가덕인 세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덕도 도선 운항 중단 앞둔 진영해운 김태복 사장
녹산 선착장에서 가덕도에 들어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한다. 흔히 도선이라 불리는 이 배는 오는 12월이면 운항을 하지 못한다. 신항 공사 때문이다. 남측 컨부두와 북측 컨부두를 연결하는 연결잔교(통로)가 생겨 도선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친에 이어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진영해운 김태복(52) 사장 겸 선장. 그는 가덕도와 뭍을 오가며 주민들을 실어나르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지난 1989년 정식 사장이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가 선착장이고 도선이었다.
중학교때부터 이미 배를 몰았다는 그는 가덕도 1200여 가구 4000여 명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며, 가가호호 밥숟가락 개수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연말까지만 운항하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 보름간 거의 식음을 전폐했고 잠도 못잤어요."
이후 신항 공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올 7월까지 운항이 연기된 후 또 다시 올해 말까지 세 번째 연기됐다. 몇 차례 운항 중단 통보와 연기가 반복되면서 그는 "이젠 그저 담담할 뿐"이라며 마음을 비운 듯 말했다. 어차피 도선이 없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어서 몇 개월 연기되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
그는 요즘도 늘 그렇듯 오전 5시 다대포 집을 나와 하단에서 선장을, 동아대 앞에서 직원을 태우고 녹산으로 출근한다. 직접 표를 팔고, 사무실 청소도 손수한다.
가덕도에서 태어나 15살까지 섬에서 살았고, 이후 생업도 모두 가덕도 주민들과 함께 한 터라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 편으로 더욱 슬픔이 북받친다고 했다.
"요즘 섬주민들은 예전과 달리 표정이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편안하고 넉넉했는데 요즘은 살림살이가 고달픈지 이를 악물고 살려는 모습이 얼굴 표정에 역력하다고 말했다. 그 만큼 삶이 팍팍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내 코도 석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육수장망 숭어잡이 사령관 김보섭 대항어촌계장
"부산사람들이 전국에서 가덕 숭어를 제일 안 먹어. 내가 먹어보니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그 맛 그대론데. 옛날부터 가덕도 숭어를 알아줬잖아. 숭어 잡아서 먹고 살고 하는데…."
김보섭(68) 대항어촌계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오랫동안 참아왔는지 대뜸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알고보니 200년 전통의 어로법인 가덕도 육수장망 숭어잡이의 사령관격인 어로장이었다.
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물어봤다. 숭어 자원은 아직도 풍부하지만 어가가 형편없다고 했다.
"2월부터 5월 말까지 통상 15만~20만 마리의 숭어가 잡혀. 한데 수년 전에는 마리 당 3000~5000원 정도 했는데 요즘은 500~700원 정도야. 경비도 안 나와. 되레 손해야. 그래서 안 잡아."
그러면서 그는 "10년 전만 해도 자갈치시장에서 하루 5000마리를 팔았는데 요즘은 200~300마리도 안 먹는다"고 했다.
불만은 이어졌다. "마을버스가 천성까지만 들어와. 천성에서 대항으로 넘어오는 도로가 형편없어 차가 못다녀. 이런데도 도선을 없앤대. 대항이나 외항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떡하라구. 도로는 안 만들어주고 숭어도 안 먹고."
대항마을은 3년 전 섬에서 유일하게 체험형 어촌마을로 지정돼 5억 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3층짜리 민박집도 지었다. 김 씨가 숨은 주역이다.
하지만 신항 공사와 때를 같이해 어촌체험의 한 프로그램인 돌미역 따기와 자연산 담치잡기를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그 많던 것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의 가덕도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영원한 아버지 소양보육원 지형식 원장
올해 개원 60주년을 맞은 소양보육원 지형식(52) 원장은 요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막내 초등학교 1학년을 비롯한 107명의 아들 딸들을 돌보기에도 벅찬데 올해부터 부산아동복지연합회 회장이란 감투를 본의 아니게 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 원장을 만나기 위해 전화를 하면 하루는 시청, 다음날은 구청에서 회의가 있어 스케줄 맞추기가 매우 힘들었다.
소양보육원은 1946년 부친 지득용 초대 원장이 춘천에서 개원했지만 한국전쟁 때문에 1950년 12월 이곳 가덕도에 둥지를 틀었다. 지 원장은 1997년 부친의 뒤를 이어 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가업을 이은 점에서 진영해운 김태복 사장과 동일한데 그는 김 사장과 동갑이며 어릴 적부터 친구라고 했다.
"저도 여기서 태어났고, 지금은 대학생이 돼 섬을 떠나 있지만 제 아이들도 여기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제 처도 보육원에서 만나 원장과 생활지도교사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해서 보육원은 제 인생의 전부이자 하나님이 주신 천직입니다."
지 원장의 사고의 기준은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랬다.
"거가대교와 가덕대교가 생기면 제일 염려스러운 점이 술집이나 포장마차 등 유흥업소 등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가덕도 토지의 70% 이상이 외지인의 소유가 된 사실과 관련, 지 원장은 원생과의 대화를 예로들며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이 다가와 올해는 왜 농사를 안 지어요. 고개를 숙인 누런 벼이삭을 보면 전 그렇게 기분이 흐뭇하던데. -그건 땅주인이 뭍사람들에게 팔아서 그런 거야."
가덕사람들에 관해 물어봤다. 지 원장은 "최근에는 사회복지 개념이 확립돼 주민들이 자주 찾아와 청소도 하고, 간식거리도 주고 갑니다. 그들도 어려운 삶인데도 말이에요."
글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 = 김동하 기자kimd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