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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콩트-지금 갑니다, 언더우먼!

이번엔 빚 보증이 아닌 사람 살리는 생명 보증이니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7-02-15 18:50:47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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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이나 멀리 가시자고?"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뇌세포가 엉기는 기분이었다. 그 바람에 달수의 입에서 비꼬는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장고 끝에 똥수 둔다더니 고작 결정했다는 것이 전라도 장흥이라니. 이모저모 따져볼 필요도 없이 잘못된 게 분명했다. 해서 정신상태라도 확인할 요량으로 검지를 세우고 아내의 눈 앞에 흔들어 보였다.

"이거, 말연씨 눈에 지대로 비셔?"

"왜 이래요, 이 양반이?"

아내가 입을 씰룩이며 그의 손을 밀쳤다. 사실, 달수에게 이번 설은 '퍼펙트한 방콕'이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 방문의 그 힘든 귀성길을 이번에는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점에서 형님이 고마웠다. 부모님의 칠순을 맞아 효도한답시고 해외여행을 떠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장모 또한 몇 해 전부터 서울의 처남에게 역귀성을 하는 처지이니 아예 신경쓸 필요조차 없었다. 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이라도 갈까 싶어 며칠 전 아내에게 넌지시 속내를 비췄던 것이다. 그런데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장흥이라니.

"제 정신인 사람이 12만 킬로미터를 뛴 14살짜리 늙은 프라이드를 끌고 그 먼길을 가시자고?"

한번 꼬인 속이라 그런지 비아냥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아내는 아랑곳없었다.

"설마 고장이야 나겠어요? 지금까지 잘도 굴러 다니는데?"

"그거야 701호 지호 엄마가 더 잘 아실 걸."

달수네는 차를 구입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이엠에프 때, 그가 친구의 사업보증을 섰다가 된통 옆구리를 쥐어 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간답시고 설쳐도 그에겐 먼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내의 고집스런 근검절약 덕분에 드디어 아이엠에프 그늘을 벗어나 집을 마련한 점이다. 아내의 평생 소원이던 집을 갖게 되자 이웃에게 저자세이던 아내의 태도 또한 달라졌다. 옆집 지호 엄마와도 당당한 이웃으로서 그가 퇴근하기 무섭게 옆집 소식을 타전하기 바빴다.

그런 어느 날 바로 지호 엄마의 낡은 차가 넝쿨째 우리집으로 굴러오게 된 것이다. 이젠 우리도 승용차를 가질 만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로서도 난감했다. 해서 가만 있었더니 그걸 승낙으로 알았는지 운전면허를 딴다며 부산을 떨어댔다. 급기야 한 달 후 그도 갖지 못한 면허증을 따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차를 몰고 용감무쌍하게 큰길까지 나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폐차 직전의 낡은 차라 언제 퍼질지 내심 걱정이었다. 그런 차에 먼 길을 가자니 핑계삼아 던져본 말이었다.

"걱정 말아요. 지호 엄마가 최소한 이 년 정도는 끄떡없다 했으니깐."

"오호라, 지호 엄마가 정비사셔? 그럼 그 말 믿고 702호 주인마님 혼자 조용히 다녀오시든지."

역시 아내의 순진함은 오늘도 변함없었다. 답답한 순진함 때문인지 그의 말이 한 단계 높이뛰기를 하고 말았다. 해서 아내의 눈동자가 알전구처럼 커졌지만 못 본 척했다.

"명색이 설인데 어디서든 자식 노릇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깐 달수씨. 같이 가, 으응?"

아내는 달랐다. 코맹맹이 소리까지 내며 그의 앞으로 무릎걸음까지 했다. 하지만 남편더러 달수씨라니. 달수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와장창 꼬여드는 기분이었다.

"이거 왜 이러시나, 이름도 고상한 우리 말연씨께서?"

그의 말투에는 다량의 이기죽거림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되레 딴청을 부렸다.

"근데, 달수씨 이름은 누가 지었다 그랬어?"

"다 알면서 또 와 이카셔?"

달수가 된 사연은 기막혔다. 하루는 만삭의 몸으로 어머니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헌데 생각지도 못한 산통이 몰려왔다. 어머니 왈, "아직 달수도 차지 않아 이름도 짓지 않았는데 우예된 일인지 모리겠네?" 하필 곁자리에 앉아 있던 이웃집 할매가, "이름이 무에 필요하누? 달수라는 이름 놔두고?" 하는 바람에 달수가 되어버린 웃지 못할 사연. 그런 이야기는 아내도 이미 알고 있었다. 헌데 느닷없이 묻고 드는 낌새가 이상했다.

"달수도 못 채운 양반을 부부로 맺어준 사람이 실제 누군지 알아요?"

아내는 피식 웃더니 이야기의 바늘을 슬쩍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장모님이 아니면 그 위대하신 분이 대체 누구셔?"

"당신 말마따나 언더우먼이시지."

언더우먼? '원더우먼'도 아니고 '언더우먼'이라면 그도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아내의 이모였다. 원더우먼처럼 성격도 이상한 '잠녀'였던 장흥의 이모. 그러니 언더우먼 이모를 만나러 가던 길을 어찌 잊을까.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가면서 짓물리는 엉덩이와 찍어누르는 듯한 허리 때문에 아내의 원산지 확인작업을 게을리한 걸 얼마나 후회했던가. 더군다나 고생고생하면서 막상 도착한 마을은 정말 땅을 알뜰살뜰하게도 이용한 궁벽한 어촌이었고. 게다가 이모의 성정은 또 어떻던가. 정 하나는 무지막지하게 퍼주는 무서운 양반 아니었던가. 그 바람에 밥상머리에 앉는 것이 공포였다. 이건 먹는 만큼이 아니라 먹일 만큼 계속 디밀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떠날 때 건넨 보따리들 때문에 며칠 동안 온몸이 쑤시고 아팠던 건 뻔한 통수였다.

"이모는, 당신 처음 보자마자 알았대요."

"뭘?"

"행복이란 놈의 문턱은 한번도 넘지 못했다는 걸."

그건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의 지독한 가난을 지금도 잊을 수 없으니깐. 하지만 왜 아내가 불쑥 그런 말을 하는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때 이모가 그러더라구요. 언젠가 너도 심봉사처럼 눈뜰 날 있을 것이다, 결혼을 왜 하라는지 진가를 알아볼 것이다, 하고 말이죠."

"이, 이모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

"그럼요, 이모의 그 말 아니었으면 당신과 결혼할 마음을 굳히진 않았을 걸?"

입에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내의 말이 맞긴 했다. 공장에서도 피부가 얼마나 시커맸으면 만지면 썩는다고 흑인 취급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사무실 경리였던 아내로서야 현장근무나 하는 그를 마음에 둘 리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야말로 삼겹오겹의 난공불락 요새였다.

"근데 와 말연씨는 그런 말을 시방 하셔?"

"말할 기회가 있었나요? 더군다나 이제 운신도 제대로 못하고 세상을 떠날 초읽기 하는 중이라니 생전에 뵙고 싶어 그런 거죠, 뭐. 당신이 안 간다면 어쩔 순 없겠지만."

"안 간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으셨는데?"

말을 뱉고 나니 아차 싶었다. 역시 아내는 승낙으로 알았는지 잽싸게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아내의 행티로 보아 말을 바꾸었다간 초상집이 될 것만 같았다. 그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자 난감했다. 이 일을 어쩌단 말인가.

"고마워요, 당신. 대신 내일 당장 재직증명서 한통 떼와요."

재직증명서라니? 이건 또 뭔 날벼락이란 말인가. 전라도 땅은 그것 없는 실업자는 못가는 땅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가 눈을 홉뜨자 아내는 배시시 웃는다.

"이모가 수술을 받는데 수술 보증을 설 마뜩한 사람이 없나봐요."

벌어진 입마저 다물 수 없었다. 겨우 옆구리 좀 펴려는데 또 보증이라니. 더군다나 그 지긋지긋한 보증을 위해 먼 길까지 가다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었다.

"걱정말아요, 이번엔 빚 보증이 아닌 사람 살리는 생명 보증이니깐!"

말투로 보아 아내의 마음은 확고해 보였다. 그렇다면 모든 건 이미 결정된 셈이었다.

이상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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