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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세이 뷰-파인더] 한라산의 살아있는 전설 노루

순하고 수줍은 눈망울

  • 백한기 기자 baekhk@kookje.co.kr
  •  |   입력 : 2012-03-01 18:50:0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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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산간에 많은 눈이 내리자 한라산 노루가 떼 지어 제주시 해안동 목장에 내려와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노루는 엉덩이에 커다란 흰색 반점이 있다.
제주 한가운데 해발 1950m 높이로 우뚝 솟은 한라산. 오랜 전설과 수많은 사연을 품은 채 인간보다 신의 것에 가까운 신비로움을 간직한 산. 한라산은 제주의 모든 것이다. 여기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야생동물은 130여 종. 그 중 한라산을 가장 한라산답게 하는 동물이 있다. 동그랗고 순한 눈망울, 숲속 사이로 자꾸 몸을 숨기는 순하고 겁 많은 녀석. 바로 한라산의 살아있는 전설, 노루다.

이번 겨울 한라산이 눈 속에 파묻혔다. 나무 마다 한 가득씩 눈이 쌓였고 등산로도 눈 속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야생동물에게 겨울은 수난의 계절이다. 눈 덮인 산 속에서는 먹이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라산에서 뛰놀던 노루들도 낮은 지대로 내려온다. 녀석들을 찾아 3일 동안 한라산을 헤매고 다녔다.

■노루야 노루야, 어디 있니

   
머리에 뿔이 난 수컷 노루.
노루는 몸길이가 1~2m, 키는 70㎝ 안팎, 몸무게는 15~30kg에 이르며 앞 윗니와 송곳니가 없다. 점프력이 뛰어나 한 번에 보통 6~7m까지 갈수 있다. 그러나 앞발 길이가 뒷발보다 짧아 내리막 비탈에서는 잘 뛰지 못한다. 노루의 나이는 이빨이 닳은 상태나 뿔을 보고 판별하는데 수명은 보통 12년 정도이다. 엉덩이의 커다란 흰색 반점으로 다른 동물과 노루를 구별하기도 한다.

한라산 도착 첫날. 서쪽 중산간 목장지대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단 한 마리의 노루도 볼 수가 없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노루의 집단 서식지 한라산에서 녀석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뜻밖이었다.

"노루가 있긴 있는 겁니까?" 이틀 날 아침 만난 한라산 생태사진가 김남규(63) 씨는 이 질문에 "허허"하고 웃어넘겼다. 김 씨는 한라산에서 20여 년간 생태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현재 제주지역에는 1만3000여 마리의 노루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루는 이동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노루는 좋아하는 먹이인 송악(잎이 연한 사철나무)이나 엉겅퀴, 난초과 식물이 많은 곳, 연한 풀이 풍부한 초원지대와 목장 근처에 주로 산다. 또 노루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초저녁부터 아침 해 뜨기 전까지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터라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시간에 노루를 찾아 헤맨 꼴이었다.

■가까이 하기 힘든 노루들

   
노루는 눈이 많이 내리면 숨어 있는 어린 나뭇잎을 찾아 먹으며 먹이가 풍성한 봄을 기다린다.
과연 해질 무렵이 되자 한라산 어리목 공터에 2~3마리씩 노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야생동물과 인간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노루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김 씨가 노루 8~10 마리가 가까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노루는 원래 숲에서 사는데 먹이를 찾아서 이곳까지 내려온 것 같다고 추측했다. 머리에 뿔이 난 녀석이 수컷이다. 뿔이 크고 길수록 힘도 세고 암컷을 거느리고 다닌다고 한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나 야생에서 자란 동물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같다. 배가 고팠는지 인기척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노루들이 모여들어 먹이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롱초롱 맑은 눈망울에 귀는 쫑긋하고, 온몸이 회갈색 털에 뒤덮여 엉덩이만 하얗게 빛났다. 한 녀석은 암놈으로 보였고, 다른 녀석은 머리에는 봉긋하게 뿔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숫놈으로 보였다. 좀 더 가까이 녀석들을 보기 위해 다가가자 녀석들은 순식간에 숲으로 줄행랑을 쳤다.

■한 폭의 그림같은 녀석들의 질주

한라산에 도착한 셋째 날. 제주시 해안동 목장에서 노루 떼를 만났다. 눈이 많이 내려 산 속에서 먹잇감을 찾지 못한 한라산 노루들이 떼를 지어 저산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고산지대에 살던 노루 가족들도 이동을 시작했다.

구름 장막이 걷히자 신비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넓게 펼쳐진 은빛 설원은 노루 가족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언뜻 보아도 50여 마리가 넘게 불어나 있었다. 눈 위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서 겨울 속 망중한이 느껴진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며 경계를 늦추지 않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길다란 뒷다리를 이용해 점프력을 과시하며 내달리는 모습은 겨울 눈 쌓인 들판이 연출해내는 또 다른 장관이다. 마치 하얀 눈을 뿌려놓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노루 무리 중 한마리가 갑자기 개가 짓는 것처럼 "커엉, 커엉" 하는 소리를 낸다. 아마 녀석들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싶다. 그러자 주변에서 조용히 먹이를 먹고 있는 노루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우고 두리번거리다가 도망을 친다. 우두머리의 울음은 경고 사이렌 같은 것이다. 자기가족이나 주변의 다른 노루가족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경계를 하라는 신호 체계다. 아마 취재팀을 보고 침략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제주는 노루들의 천국

노루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야생동물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까지는 밀렵이 심했고 폭설 등으로 인해 제주도에서도 노루의 개체수가 100여 마리 정도까지 감소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동물보호에 관심을 가진 지역 시민들과 지자체, 환경보호단체가 노루 먹이주기운동을 펼쳐 개체수가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현재 제주도에는 중산간지대 뿐만 아니라 저산지대까지 노루가 분포하고 있다. 한라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제주도에는 노루가 1만3000여 마리 까지 불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한라산 명물이 된 노루가 이제는 농작물 피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산림자원에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급기야 노루를 유해 조수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는 중이다.

겨울철 한라산에서 노루를 보려면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어리목이 가장 좋은 곳이다. 봄에는 정산 부근 진달래밭 인근에서 노루를 만날 수 있다. 노루생태공원을 찾으면 언제든 녀석들과 얼굴을 맞대는 것이 가능하다. 문의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64)713-9950~2, 한라산연구소 (064)744-9953. 취재 협조=한라산 생태사진가 김남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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