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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네 남자 주인공. 왼쪽으로부터 이종혁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 |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2009)에서 이 시대의 완벽 엄친남 주환(이범수 분)이 그의 약혼녀 제나(정애연 분)를 만나는 자리에서 한 장면. 자유분방한 포토그래퍼인 제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담배를 피우고자 하지만 종업원은 금연이라며 제재한다. 사는 게 점점 재미없어져 간다며 푸념하는 그녀를 보며 주환은 종업원에게 재떨이를 가져다 달란다. 황당해 하는 종업원을 주환은 단 한마디로 제압한다. "담뱃불 끄게." 군소리 없이 종업원이 가져다 준 재떨이를 두고 주환은 제나에게 말한다. "피세요."
신사로서 갖춰야할 매너와 에티켓을 잘 드러낸 사례인 동시에 매너와 에티켓의 차이를 제대로 보여 준다. 공공장소에서 금연은 에티켓에 속하고 자신의 여성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은 점은 매너다. 에티켓은 반드시 그렇게 지켜야만 하는 규범에 속한다면, 매너는 상황에 따라서는 에티켓을 버릴 수도 있는 점에서 에티켓보다 포괄적이며 따라서 더 상위의 개념인 것이다.
요즘 TV안방극장은 드라마 풍년이다. 그것도 평소에 보기 힘든 남자 배우들의. 미숙한 꽃미남이 아니라 이젠 중견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중후한 멋을 더해가는 남자 배우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총출동한 느낌이다. 월·화요일에 공유가 '빅'으로 출사표를 던졌고, 수·목엔 '유령'에 소지섭이 출연하며, 주말에는 '닥터 진'으로 송승헌을, 그리고 '신사의 품격'에선 장동건과 김민종, 이종혁, 김수로를 단체로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관심을 끄는 제목은 역시 '신사의 품격'. 왜 제목이 '신사의 품격'인가? 장동건은 '신사'일까? 장동건이 보여주는 김도진은 언뜻 '신사'가 아닌 것 같다. 까칠하고 냉정하다 못해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여자 면박주기 일쑤다.
서양에서 비롯된 신사의 고전적 개념으로 신사의 자격을 따져보자. 서양 기준의 신사 중 재미난 하나는 신사의 조건으로 '귀족의 차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중·근세에 전쟁이 나면 자신의 성과 가문을 대표하고 책임져 전장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장남에게 있는 반면,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차남이야말로 신사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부모를 모셔야 하는 장남과 결혼을 꺼리는 것과 같은 셈이다. 이 밖에 신사의 조건으로 라틴어와 기초과학을 알아야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영어와 제2 외국어를 구사하며 IT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정도가 될까? 그리고 의전과 의식을 중시하고 예술을 이해하고 멋과 맛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장면은 풍류를 즐겨 시와 서화를 가까이 하던 우리 조상의 모습이 겹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사의 자격은 매너다. 그것도 여성에 대한 매너.
'신사의 품격'을 보다가 현실에서 저런 멘트를 날릴 남자가 어디있냔 혼잣말에 지인은 저런 남자를 바라서이겠지라 신소리로 응수한다. 장동건과 또 다른 출연진의 칼로 잰 듯한 깨알 같은 대사를 들어보노라면 '나쁜 남자'와 '신사'를 오가는, '여심'이 바라는 남성상이 그려진다. 현대에 신사가 되기 참 어렵단 생각이 든다. 나쁜 남자인 동시에 신사여야 한다니. 그러나 그 역시 여성이 바라서라면 그런 남성이 되어보는 것도 여성을 배려하는 신사의 매너여야 하는가 보다.
김윤석 영화 남성패션 칼럼니스트 bsnbo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