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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미트리스'의 한 장면. 주인공(오른쪽)은 높은 밴드의 셔츠와 노타이로 등장한다. |
킬링타임용 또는 작은 영화로 알고 보러 갔다가, 흐뭇하게 상영관을 나올 수 있었던 영화가 있다. 기대 없이 본 영화에 의외의 묘미랄까. '리미트리스(Limitless, 2011)'다. 아무 생각 없이 봤기에 집으로 돌아와 홍보자료를 다시 찾아봤다. 2011년 영화인데 미국 개봉 당시,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월드인베이젼'을 밀어내고 '랭고'를 제치며 (비록 1주간이지만)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게 홍보사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찾아보니 각본이 대단하다. '미세스 다웃 파이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타워 하이스트' 등의 작가. 더 재미난 건 우리나라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원작이 이사람 레슬리 딕슨 거라는 것. (드라마 '빅'으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있는 홍자매는 각색을 한 거란다.) 감독은 CF 출신이라는데, 익숙지 않은 영상이지만 결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고, 영화 성수기 풍요 속 빈곤에 보석 같은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수려한 외모의 브래들리 쿠퍼. 그러나 영화 초입, 대학을 나와 작가라지만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백수에다 노숙자와 마찬가지인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후반 성공한 모습을 생각하면 사람 입성과 차리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받쳐주는 인물로는 바로 로버트 드 니로. 요즘 명배우들의 낚시용 영화가 많은데, 최소한 이 영화만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이 재계의 거물,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패션. 로버트 드 니로는 그의 역할과 또 그의 연배에 맞게 클래식 슈트 차림. 반면 떠오르는 별로 자신만만한 주인공은 고급 슈트지만 높은 밴드의 셔츠에 노타이다. 미팅 결과에 따라 주인공 자신은 물론, 소개자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자리에 노타이 차림은 파격에 가깝고, 그 만큼 주인공의 대단한 자신감을 대변한다. 실용으로 돌아온다면, 노타이 차림은 자리의 성격과 상대에 따라 충분히 무례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자제해야 할 차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철에 자유직 종사자 정도라면 고려해 볼 만하다.
아울러 높은 밴드의 셔츠. 언젠가부터 소리 소문 없이 한국에도 유행이 불었는데, 주인공과 같이 기린에 견줄 만한 긴 목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자중을 권한다. 목 밴드는 그 사람의 목의 길이에 따른다. 긴 목일 경우 높은 밴드를, 대부분의 한국 사람처럼 짧은 목이라면 낮은 밴드가 맞다. 아울러 셔츠 깃은 목길이와 함께 그 사람의 목둘레에 비례한다. 길고 가느린 목이라면 높은 밴드에다 다소 긴 깃으로 커버할 필요가 있으며, 반대로 짧고 굵은 목이라면 낮은 밴드에 길지 않은 깃으로 밸런스를 맞춰 입으면 된다.
그러나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클래식과 캐주얼의 또다른 이면을 보게 된다. 바로 나이다. 참 젊음이 좋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나이가 들어가며 갖춰입는 것이 필요조건이라면, 젊음은 꼭 그렇지 않다. 정제되지 않은 틀로 여러 가지로 시도하며 입다가도 자신이 원할 때 정장을 차려입으면 그 뿐일 수 있으니까. 물론 아직 제대로를 모르기에 다소 많이 부족할 지라도. 그러나 제대로 된 격을 알고 또 그렇게 입을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를 알지 못했던 과거로 돌아갈 순 없는 모순. 어쩌면 옷 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러할 터이다.
영화 종반 주인공은 정치계로 입문한다. 다소 자유분방하던 그의 스타일도 원숙미를 더해간다. 그의 여친이 지금의 너의 스타일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말할 정도로.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하였던가. 옷입기에서도 마찬가지일 게다.
김윤석 영화 남성패션 칼럼니스트 bsnbo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