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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건축가 까막딱따구리…멸종위기종·천연기념물 242호

  • 백한기 기자 baekhk@kookje.co.kr
  •  |   입력 : 2012-08-01 18:54:43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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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 암컷은 뒷머리에만 약간의 붉은 깃털이 있다.
- 딱따구리종 중 덩치 가장 크며
- 46㎝ 가량 검은 몸체에 머리는 붉어

- 강원도 화천 만산동 계곡 인근
- 아름다운 은사시나무에 둥지 파
- 파랑새·원앙 등 천적 동물들
- 호시탐탐 멋진 둥지 탐나 공격

- 둥지 짓기·알 품기·먹이 공수 등
- 3시간 간격으로 하루 4번 씩
- 암수교대로 치밀하게 역할 분담

만산동 계곡에는 아름다운 은사시나무 숲이 있다. 이곳에 까막딱따구리가 찾아와 둥지를 파고 알을 낳았다. 새끼가 태어나자 아빠는 고단한 줄도 모르고 정성껏 키운다. 하지만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는 너무나 크고 훌륭해서 숲에는 이 집을 노리고 침략을 일삼는 부모 새들이 많았다. 아빠는 이들과 싸워가며 꿋꿋이 둥지를 지켜냈다.

■은사시나무 숲에 둥지 튼 까막딱따구리 부부

   
어린 까막딱따구리가 아빠 새의 부리를 삼킬 듯 달려들어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은사시나무 숲의 주인공인 까막딱따구리는 아주 특별하다. 녀석은 산림이 잘 발달한 곳에만 서식하며 현재는 적은 수가 살아가고 있는 멸종위기종이다. 전국에 사는 딱따구리 친구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몸 전체가 검은색이며 머리 위에만 붉은색 깃털을 가지고 있다. 검은색 정장을 잘 차려입고 붉은색 모자를 쓴 키가 크고 늘씬한 멋쟁이이다. 이러한 검은 정장 차림의 희귀한 멋쟁이는 이웃의 여러 동물과 경쟁하고 때론 한데 어울리며 번식한다.

강원도 화천군 만산동 계곡 권혁철 노부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은사시나무 숲에 6~7년 전부터 해마다 까막딱따구리가 둥지를 튼다고 했다.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강원도로 향했다.

목적지인 강원도 화천군 38선으로 들어섰다. 무척 먼 길이었다. 부산에서 6시간 30분이 걸렸다. 남쪽 지방 부산에서는 까막딱따구리를 만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은사시나무 숲의 외딴집에는 노부부가 외롭게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이곳 은사시나무 숲에서 살았고 외로움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매년 봄마다 멸종위기종인 까막딱따구리 한 쌍이 찾아온다고 했다.

   
어린 새끼가 둥지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바깥 구경을 하고 있다.
숲 속 작은 집에서 5분 정도를 걸어 들어갔다. 안내를 도운 노부부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주시하자 까막딱따구리 둥지인 나무에 큰 구멍이 보였다. 20년 된 은사시나무의 높이는 30m 정도이며, 둥지는 15m 정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딱따구리들이 둥지를 틀기에 좋은 환경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또 은사시나무 숲에는 많은 딱따구리 둥지가 있지만, 그 중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를 품은 은사시나무는 단 한 그루였다.

노부부는 까막딱따구리와 동행하는 셈이다. 할아버지는 까막딱따구리를 관찰할 수 있도록 위장막을 설치해 전국 조류 전문가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부부는 까막딱따구리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까막딱따구리. 우리나라 딱따구리과 중에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가 멸종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까막딱따구리는 천연기념물 제242호로 지정,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까막딱따구리가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몸길이는 46㎝ 정도로 온몸이 검다. 수컷은 머리 꼭대기에 붉은색의 깃털이 관(冠)처럼 나 있고, 암컷은 뒷머리에만 약간의 붉은 깃털이 있다.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귀한 존재다. 긴 혀와 뾰족한 부리를 구멍 속에 넣어 나무를 파먹는 해충들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숲의 외과의사다. 녀석들이 나무를 잘 타는 건 갈고리 구조로 생긴 강한 발톱 덕분이다. 일부 중부, 경기 지방과 강원도 지방에서만 몇 개체가 활동하고 남부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까막딱따구리 부부의 구멍 속 둥지는 자신들의 몸길이와 비슷한 약 45㎝ 깊이에 V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암컷도 이번엔 집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다. 사랑의 춤으로 마음을 확인하고, 정을 나누는 부부. 짝짓기는 산란 틈틈이 계속된다.

■포란 교대식은 아주 치밀하다

   
까막딱따구리 수컷이 은사시나무의 구멍 속에 있는 보금자리 주변을 살피고 있다.
은사시나무 숲 둥지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위장막 속에서 잠복해 2시간쯤 흘렀을까. 위장막 주변에서 어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둥지에서 수컷이 잠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딱따구리 종류의 수컷은 어떠한 형태로든 모두 머리에 붉은색이 있다. 까막딱따구리 수컷은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은색이다. 딱따구리 종류의 암컷은 머리에 붉은색이 없다. 그런데 까막딱따구리 암컷은 예외다. 머리 뒷부분에 붉은 깃털이 조금 있다.

수컷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이번에는 고개를 계속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꼭 누구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딱따구리 종류가 번식 일정을 치러내는 기본 전략은 교대이다.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먹이를 나르는 일정을 수컷과 암컷이 교대하며 수행한다. 그러나 번식 둥지의 밤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수컷이었다.

수컷은 해가 지면 둥지로 들어와 밤새 알을 품으며 보낸다. 암컷은 둥지 주변에 추가로 파놓은 다른 나무구멍에 들어가 수컷의 배려로 편한 잠을 잔다. 다른 딱따구리들이 모두 그러하다. 이 같은 일상이 한 달 정도 지나면 둥지 속에서 알이 부화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까막딱따구리 암컷이 둥지로 와 밤새 둥지를 지킨 수컷과 첫 번째 교대를 하고 있다.
포란 교대식은 아주 치밀하다. 숲 속을 다니며 충분한 휴식을 한 녀석이 둥지 가까이 다가와 소리를 낸다. 둥지 안에 있던 녀석은 머리를 내밀어 확인하고 다시 쏙 들어간다. 이때 밖에서 소리 내던 녀석이 둥지의 나무에 날아 붙고서야 둥지 속 녀석은 얼굴을 내밀어 잠시 마주 보고는 밖으로 날아간다. 이처럼 둥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파랑새, 원앙과 같은 다른 새들로부터 둥지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까막딱따구리 알 품기는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3시간 간격으로 교대하고 있었다. 알을 품는 동안 교대하는 간격은 딱따구리 종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큰오색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는 평균 2시간 간격으로 6번 교대를 하지만, 덩치가 큰 까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는 평균 3시간 간격으로 4번 교대한다.

그런데 올해는 1차 번식에 실패했다. 파랑새로부터 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까막딱따구리보다 늦게 번식하는 파랑새 녀석들이 둥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까막딱따구리 어미들이 짝짓기하기 위해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까막딱따구리 둥지를 습격해 새끼들을 쪼아 죽이고 만 것이다.

둥지로 돌아온 까막딱따구리 어미는 숨진 새끼들 시체를 물고 날아가 어딘가에 버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2차 번식을 하기 위해 둥지를 정리했다. 파랑새도 주변에서 호시탐탐 둥지를 노렸지만, 까막딱따구리의 분노에 다시는 접근하지 못했다.

■까막딱따구리 2차 번식 성공

   
까막딱따구리는 하루에 네 번 교대하며 알을 품는다. 오늘의 두 번째 교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드디어 2차 번식, 까막딱따구리 둥지에 새끼가 깨어났다. 육아는 원칙적으로 부부가 교대로 하지만 때에 따라 암컷은 새끼를 키우는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래서일까. 까막딱따구리의 부성애는 눈물겹게 뜨겁다. 마음 놓고 편히 식사도 못 하는 아빠. 누군가 자신의 집을 노리고 침입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 태산이다. 서둘러 돌아온 아빠가 교대신호를 보낸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엄마가 이웃 둥지로 날아가 편히 잠을 청할 때 밤새 집을 지키며 새끼를 돌보는 건 바로 아빠다.

까막딱따구리 부부는 본격적으로 새끼 키우기에 들어간다. 부부는 5분이 멀다 하고 먹이를 물고 구멍 속을 들락거린다. 부리 속에는 크고 작은 곤충의 애벌레가 가득 차 있다. 어미는 먹이를 물고 구멍 속의 둥지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주변을 살핀다. 일단 나뭇가지나 나무의 위쪽 부분에 앉았다가 서서히 내려온다. 내려올 때도 둥지 방향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둥지 뒤편이나 옆으로 내려와서는 눈치를 살피다가 주변이 조용해지면 돌아서 둥지로 들어간다.

그러나 새끼들의 배설물을 물고 나갈 때는 구멍에서 잽싸게 뛰쳐나간다. 천적들에게 보금자리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동물적 본성 때문이다. 먹이는 동물성만 고집하지 않는다. 주로 곤충의 애벌레를 잡아다 주지만 버찌 같은 나무열매도 섞어서 먹인다. 애벌레가 없는 겨울철에 나무열매로 연명하는 방법을 어린 새끼 때부터 인지시키는 것 같다.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수컷이 네 번째 교대를 위해 둥지로 다가가고 있다. 알을 품을 때 네 번째 교대는 하루의 마지막 교대로, 저녁에 이루어진다.
새끼들은 둥지를 떠나기 약 7일 전까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다만 구멍 속에서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러다가 둥지를 떠날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어미가 먹이를 잡아서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둥지 밖으로 얼굴을 내밀곤 한다. 그 모습은 깃털 색이 엷고 머리에 붉은빛이 많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어미와 비슷하다.

새끼들은 둥지를 떠날 정도로 커서 어깨가 밖으로 나올 만큼 자랐다. 그러나 막내는 먹이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육 상태가 더뎌 보인다. 막내의 발육 부진으로 아빠는 고민에 빠졌다. 이소 시기에 대한 고민이다. 모든 새끼를 함께 둥지 밖으로 이소시켜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서둘러 이소를 결정해야 한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는 둥지 주변 숲에서 "끼이야" "끼이야" 하고 새끼들을 부른다. 새끼들이 둥지에서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 둥지 밖 낯선 곳으로 나가기가 겁나는 모양이다. 숲에서 둥지로 날아든 아빠는 나무를 "뚜드둑" "뚜드둑" 두드리며 둥지를 떠날 것을 재촉하고 있다. 드디어 새끼들이 아빠가 날아간 숲 방향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아빠가 있는 숲으로 들어가자 새끼들은 더는 볼 수 없었다. 새끼들은 어설픈 날갯짓으로 아비의 뒤를 따라갔다. 이 숲의 주인으로 당당히 나서는 첫걸음이다.

까막딱따구리는 다행스럽게도 개체 수가 다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까막딱따구리의 개체 수가 조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크낙새는 왜 멸종의 길로 내몰렸으며, 까막딱따구리는 왜 그 수가 조금이라도 증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까막딱따구리마저 이 땅의 크낙새가 걸었던 비운의 길을 이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취재 협조= 조류사진가 도연스님, 박용수 이길용 씨. 동영상 www.birdvide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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