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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의 습격

"프리즈?(Freeze·꼼짝마) 플리즈!(Please·제발)"…통영, 생선도둑과 전쟁

  • 백한기 기자 baekhk@kookje.co.kr
  •  |   입력 : 2013-04-11 19:14:2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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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 용남면 한 선착장 주변에서 서식하는 수달(천연기념물 제330호)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박 중인 어선에서 물고기를 도둑질하다 인기척에 놀라 경계하고 있다.
늦은 밤 물살을 가르는 녀석이 있다.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수달. 천연기념물 수달도 이제 어민에게는 불청객이다. 선착장에 정박 중인 어선, 횟집 수족관, 가두리 양식장 등은 수달의 주 공격 대상이다. 횟집 수족관에서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를 물고 가는 수달. 이 수달이 경남 통영, 거제 일대에 많이 서식한다.

통영 작은 어촌 선착장에 수달이 자주 나타난다는 주민의 제보를 받고 취재팀은 야간 탐사에 나섰다. 야행성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낮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취재팀이 수달 촬영에 들어간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수달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지만, 촬영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후 여섯 차례(3월 1일부터 4월 5일까지)의 밤샘 끝에 어선 안에서, 횟집 수족관에서, 그리고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슬쩍'하는 것과 짝짓기하는 모습 등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식육목 족제빗과인 수달은 일본에서는 1982년 멸종된 것으로 보고됐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수달이 더 많이 살았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수달이 소수 개체만 관찰될 정도였는데, 이 때문에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0호,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 보호, 관리해 오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내륙이나 해안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수달은 통영 거제 일대 어촌에 많은 무리가 있다.

수달의 활동 범위는 10㎞ 정도 된다. 수놈 한 마리가 암놈 2, 3마리 정도를 거느리며 무리를 지어 산다. 같은 활동 범위 내에서 두 마리의 우두머리는 용납하지 않아 실제로는 주민이 말하는 개체 수보다는 적다.

수달은 무게가 30㎏ 정도이며, 몸의 모양은 어뢰처럼 생겨 물속에서 날렵하게 헤엄칠 수 있다. 뒷발에는 큰 물갈퀴가 있고 앞발의 발가락에는 물갈퀴가 반 정도 있으나 헤엄쳐 나갈 때는 앞발을 배에 붙인다. 꼬리는 수평으로 넓적해 위, 아래로 움직여 빠른 속력을 내는가 하면 방향을 잡기도 하고 수면을 꼬리로 때려 수달끼리 의사소통도 한다.

   
정박 중인 어선에서 물고기를 훔쳐 먹고 있는 수달.
수달은 물에 들어갈 때 코와 귀를 막아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데, 눈에는 투명한 막이 덮여 있다. 물속에서 나무나 먹이를 물고 갈 때 숨이 막히지 않게 하려고 혀 뒤쪽으로 목구멍을 막을 수 있다. 다른 설치류처럼 수달의 앞니는 빨리 자라고, 이 앞니로 큰 나무를 갉아 쓰러뜨려 댐을 만든다.

수달은 일반적으로 육지 쪽 수계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한 남해안, 특히 거제 통영의 갯바위는 물고기의 좋은 은신처여서, 수달로서도 최고의 서식지다. 우리나라 수달의 절반 정도가 이 일대에 산다.

조수간만의 차가 작아 일찍이 양식업이 발달한 통영 거제는 계속되는 수달의 침탈로 몸살을 앓을 정도다. 취재팀의 관찰 결과 수달들은 하룻밤에도 2, 3마리씩 무리를 지어 양식장 내 물고기를 노렸다.


■ 범행 현장- 선착장

- 평온하던 통영 어촌마을, 매일 비밀스럽게 출몰하는 '생선털이범'에 발칵 뒤집혀

   
위에서부터 우두머리 수달이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리저리 헤엄치면서 선착장을 한 바퀴 순찰하고 있다. 물에 흠뻑 젖은 수달 두 마리가 도둑질한 물고기를 서로 뺏으려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는 수달.
경남 통영의 한 선착장. 이곳에 과연 수달이 올까? 수달을 기다린 지 두 시간 남짓, 마침내 해질 무렵에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달이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영역 순찰. 우두머리 수달은 매일 해질 무렵에 선착장에 나타나 한 바퀴 순찰했다. 선착장에 자신을 해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피러 나오는 것이었다. 우두머리 수달은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리저리 유유히 헤엄치면서 선착장을 한 바퀴 돌며 주위를 살핀 뒤 사라졌다.

그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각 방파제 쪽에서 어둠 속으로 꿈틀대는 동물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유선형의 매끄러운 몸매의 수달이 고개를 내밀면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어촌 선착장에 정박한 어선들은 수달의 공격 대상이다. 선착장에 정박한 어선 주변을 탐색하던 수달이 올라타기를 시도했다. 수달들은 어선 선체 보호용으로 달아놓은 폐타이어나 스티로폼을 잡고 뒤뚱뒤뚱 기어 올랐다. 어선 위에 가장 먼저 오른 수달은 선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는 일등 항해사처럼 어선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이어 물고기를 보관하는 배 안의 창고 문 두건을 앞발로 직접 열고 들어갔다. 이때부터 녀석은 해적으로 돌변한다. 값비싼 도미 같은 활어를 도둑질하는 것이었다.

   
정박 중인 어선서 물고기를 훔쳐 위풍당당하게 물고 있는 수달.
수달은 이미 도미 한 마리를 물고 있었다. 녀석은 물과 육지를 오가는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다. 수달이 물고기를 물고 뗏목 위에 올랐다. 뗏목은 어민이 어선과 육지를 연결하고 어선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공간. 이곳에서 머리부터 내장까지 10분에 걸쳐 남김 없이 만찬으로 즐겼다.

수달은 하룻밤에 평균 3~4㎏ 이상을 먹는 대식가다. 배불리 배를 채운 녀석은 목욕했다. 어부들이 작업용으로 쓰는 큰 이불이 '목욕 수건'이다. 수달이 이불에 몸을 비비는 것은 털을 말려 몸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앞발은 짧지만, 기생충을 제거하고 몸의 가려움을 해결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한참 목욕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달이 하룻밤 어선 위에서 머무는 시간은 약 40분 정도. 어촌 선착장 내 어선은 수달의 먹이 창고이자 놀이터다.

   
정박 중인 어선서 물고기를 도둑질하다 인기척에 놀라 경계하고 있는 수달.
수달은 물고기를 능숙하게 선별하는 감별사이기도 하다. 녀석은 유독 고급 어종과 크고 신선한 물고기를 골라 먹는다. 일반적으로 죽은 물고기는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흔치 않은 행동이지만 대낮에도 어선 순찰에 나서기도 한다. 어선에서 사용하는 작업 도구를 보관하는 앞쪽 창고로 들어가는 수달이 돌연 배설을 한다. 자신의 영역임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어선을 더럽히는 녀석이 어민으로서는 반갑지 않다. 수달은 어선 안 화장실에도 배설물을 남겼다.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수달의 배설물 때문에 어민들은 어선 내부 물청소로 일과를 시작한다


■ 범행 현장- 횟집 수족관

- 밤마다 비싼 횟감만 쏙쏙 훔쳐
- 천연기념물이라 포획 못해
- 궁여지책으로 전기울타리 설치

   
횟집 주인은 계속 피해를 주는 수달을 쫓아내기 위해 수족관에 전기 울타리를 설치했다.(위) 수족관 안에서 물고기를 도둑질해 물고 나오고 있다.(영상캡쳐)
횟집 수족관 물고기는 밤에는 수달이 주인이다. 횟집 주인은 낮에만 해당된다.

매일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는 한 횟집 수족관. 아침에 수족관을 살피다 보면, 물고기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한 게 벌써 몇 달 째. 그것도 유독 고급 어종들만 없어졌다.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 걸까. 범인을 찾기 위해 급기야 횟집 주인이 CC(폐쇄회로)TV까지 동원했다.

그날 밤, 뭔가가 화면에 잡혔다. 사람이 없는 횟집 수족관에 슬며시 나타난 시커먼 물체는 주위를 연신 경계하다가 수족관으로 입수했다.약 1분 정도 수족관을 헤집고 다니다가 물고기를 덥석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 CCTV 화면에 포착된 물고기 도둑의 정체는 바로 천연기념물 수달이었다.

하룻밤에 수달이 물고 간 물고기는 보통 6~8마리. 그런데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다. 확인 결과, 2~3마리의 수달 무리가 매일 밤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를 훔쳐간다. 이 녀석들은 비싼 횟감만 쏙쏙 골라간다. 횟집 주인은 그동안 입은 피해액만 수천만 원이에 달한다고 했다. 하지만 수달이 천연기념물이어서 잡거나 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횟집 주인은 계속 피해를 주는 수달을 막기 위해 수족관에 전기 울타리를 설치했고, 그 후에야 수달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조그만 대안을 찾은 것이다.

수달은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움직였다. 우두머리 수달은 매일 해질 무렵인 오후 6시30분께 선착장을 순찰했다. 또 매일 밤, 0시20분께에는 횟집 수족관 물고기를 훔치기 위해 정확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새벽 4시께 어선이 모여들고, 경매가 시작할 무렵에도 수달이 나타났다. 물론 시계도 없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 범행 현장- 가두리 양식장

- 공격받은 고기 죽어 '둥둥'…개 풀어 지켜

   
양식장에서 밤새 물고기를 포식한 수달이 고깃배 어망 위를 뒹굴며 젖은 털을 말리고 있다.
아침에 나가보면 가두리 양식장 물고기들이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죽어 있었다. 하룻밤 평균 30여 마리가 그렇게 피해를 입었다. 장본인은 짙은 갈색 털에 짧은 다리, 바로 수달이다. 수달은 왜 양식장의 무법자가 됐을까. 양식장보다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또 물고기를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안정적인 먹이 공급처가 양식장이다. '바다 양식장의 은밀한 습격자' 수달의 '범행 현장'을 잡았다.

해가 지면 어김없이 양식장에 나타난다는 녀석이다. 하루 양식장 일을 마무리하는 어민들은 손놀림이 바빴다. 어민들이 양식장을 빠져나간 빈자리에 녀석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어민의 말대로 정말 녀석은 매일 밤 이곳에 나타났다. 조용해진 바다 양식장엔 다양한 생명이 떠다녔다. 바다의 먹잇감을 탐내는 녀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왜가리. 왜가리는 양식장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수달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녀석은 쏜살같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두운 바다에서 녀석을 쫓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고 여기는 사이, 잠시 후 바닷물에 잠수했다가 헤엄치는 녀석을 만났다. 마치 바다에 사는 생명체인 양 녀석의 잠수 실력은 뛰어났다. 또다시 시야에서 벗어난 녀석. 숨바꼭질이 계속됐다.

이번엔 양식장 위에서 녀석을 찾았다. 바닷가에 줄지어 있는 양식장을 제집처럼 헤집고 다녔다. 영리한 수달은 어민이 양식장에 좋은 물고기를 보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연신 물에 떠 있는 물고기에 관심을 보였다. 일부 물고기는 살기 위해 양식장을 뛰쳐 나갔다. 물속에선 수달이 물고기보다 빨랐다. 가두리 양식장 물고기들이 혼비백산. 수달은 족히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귀여운 생김새와는 달리 뾰족한 송곳니로 매섭게 물고기를 뜯어먹었다. 특히 좋아하는 물고기 부위는 내장이다. 부드러워 먹기도 편하고 소화도 쉽다.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자유로이 이리저리 양식장을 헤집고 다니던 녀석이 양식장 속으로 '풍덩' 하며 들어갔다. 잠시 후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올라왔다. 제법 컸다. 물고기 한 마리 정도는 순식간에 먹어치운 녀석인데 이번에는 먹는 데 오랜 시간 씨름을 했다. 수달이 하루에 먹는 물고기는 15~20마리. 이 모든 게 양식장에서 조달하는 것은 뻔한 이치. 수달은 물고기의 머리만 남긴 채 뼈와 지느러미까지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인기척 소리에 놀란 수달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선착장 뗏목 위에서 수달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하는 모습.
계속되는 피해에 어민도 자구책을 마련했다. 먼저 양식장에 그물을 쳤다. 적은 비용으로 피해를 막는 방법이다. 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어민이 일을 마치고 떠난 텅 빈 양식장에 개를 풀어 놓으면 수달과 왜가리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숨바꼭질 속에서도 수달의 먹잇감이 풍부한 통영 바다는 여전히 우리의 크나큰 자산이다. 통영 바다는 수달을 하천에서 바다로 불러들였다. 멸종 위기종을 품은 바다다. 통영에는 수달이 많이 산다. 물고기가 많다면 그만큼 바다가 건강하다는 것이고, 결국 수달이 사는 곳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인 셈이다. 우리나라 수달은 비록 서식 개체 수와 서식처가 줄고 있지만,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보호활동에 앞장선다면, 세계에서손꼽히는 수달 보호국이 될 수 있다.

취재 협조= 조류사진가 박용수 씨. 피해 횟집 신인조 대표. 가두리 양식장 장재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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