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치첸이트사의 매머드급 피라미드인 카스티요 신전. 사면의 계단이 모두 91개씩 있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1개 있어 모두 합치면 365개로 1년에 해당한다.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적도시 '욱스말'
- 서기 600년께 주민 5만 번성했다 사라져
- 살기힘든 밀림 한가운데 세워져 호기심
- 치첸이트사의 25m높이 카스티요 신전
- 1100년전 만든 2400만평 석조 피라미드
- 365개 계단, 당시 천문학 수준 알수 있어
- 매년 1명의 심장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 독특한 풍습·건축기술 모두 사라져
멕시코는 '태양의 대륙' 라틴(Latin)의 정열이 살아 숨 쉬는 곳이자 기원전 2000년 미스터리 문명 '마야'의 중심지였던 땅이다. 유카탄반도를 따라 거대한 신전과 현재도 불가해한 건축술과 천문학을 자랑하던 마야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문명이 되었다. 인류문명의 한 기원으로서 1000년 전까지만 해도 면면히 존재했던 마야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스페인 등 외부 세력의 학살이 그 원인이라는 설과 마야 내의 무분별한 개간이 '흑사병'에 맞먹는 병충해를 불러 급작스럽게 소멸했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심지어 미확인 비행물체(UFO)에 의해 우주인에 끌려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추측도 있다.
■사라진 문명의 흔적, 욱스말
유카탄 반도의 끝, 마야문명의 출발지 메리다를 거쳐 내륙 밀림으로 들어서면 유적도시 '욱스말'이 나타난다. 욱스말은 마야 말로 '풍성한 추수'라는 뜻이다. 서기 600년쯤 동서 600m, 남북 1㎞에 걸쳐 조성된, 주민이 5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큰 도시였다.
도시 내부엔 이례적으로 타원형으로 돌축을 쌓은 마법사 신전과 지평선 위로 금성이 내려앉은 지점을 정확히 직선으로 바라보며 만든 총독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욱스말은 뭔가 알지 못할 이유로 300년 만에 홀연히 사라졌다. 돌무더기와 울창한 정글만 남긴 채 종언을 고했다. 유네스코는 욱스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미국에서 황량한 사막을 건너 멕시코로 들어가기보다는 과테말라에서 멕시코로 가는 길이 훨씬 운치가 있다. 멀리 자그마한 집들이 보이고 가로로 길게 늘어선 산을 따라 중턱쯤 광산 갱도가 군데군데 뚫린 것이 전형적인 중앙아메리카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엘도라도를 꿈꾸던 정복자가 원주민을 착취해 금맥을 캐던 역사의 아픔이 서린 정경이다. 그렇게 세계사에 간섭하며 닿은 멕시코의 첫 국경 마을이 치아파스 어꼬신고였다.
사람들 소리에, 마이크 소음에 마을은 초입부터 시끌벅적했다. 이 소리를 쫓아 들어가니 한 초등학교에 다다랐다. 맨발의 아이들이 할아버지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다소 어설프지만 귀여운 학예회가 열리고 있었다. 1년에 두 번, 학기가 끝날 때면 열린다고 한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 학예회가 곧 마을 축제였다. 이날은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생활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이 물씬 풍기는 웃음이었다. 달리기며 릴레이, 오자미 던지기로 온 가족이 한껏 신 났던 우리네 1970~80년대 그 시절 가을 운동회처럼.
■신의 선물, 천혜의 해변
| |  |
| 칸쿤의 아름다운 바다. 칸쿤은 해변의 모래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
치아파스 어꼬신고를 벗어나면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태평양을 따라 신이 멕시코에 내린 선물인 천혜의 해변들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아카풀코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휴양을 위해 찾아든다. 최근엔 캄페체주가 유명하다. 과거 스페인 요새가 있던 곳으로 아름다운 풍광과 풍부한 바다 자원 때문에 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특히 휴양지로 유명한 칸쿤은 해변의 모래가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행운의 모래'라고 소문이 나 수많은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다. 40여 년 전 칸쿤은 주민이 채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어촌이었다. 1960년대 말 멕시코 정부가 공사를 시작해 새로운 휴양지로 조성했다. 그 덕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방문객도 급증하면서 지금은 최고의 리조트 해변으로 변모했다.
여기서 의문 하나. 왜 마야는 뜨거운 태양과 따뜻한 해수(海水)가 있는 해변을 놔두고 사람이 살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밀림 한가운데에 욱스말이란 도시를 만들었을까? 작물을 기르기 어렵고 우기면 몇 달간 끊임없이 비가 내리며 웅덩이의 벌레가 전염병을 퍼뜨리는데다 맹수와 독충마저 우글거리는 위험천만의 정글에다 왜 삶의 터전을 만든 것일까?
■치첸이트사에 남은 인신공양 유적
밀림 속 욱스말의 마야가 사라질 무렵 유카탄반도의 중앙 석회암지대엔 새로운 유적지 '치첸이트사'가 세워졌다. 약 8000만㎡(2400만 평) 면적에 종교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대표적인 유적은 높이 25m의 매머드급 피라미드인 '카스티요 신전'. 건축 연대를 추정해보면 서기 900년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 돌을 쌓아 그렇게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게 기이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지구의 공전주기에 맞추어 전체 계단의 숫자를 365개로 한 것에 다시금 놀란다. 당시 천문학이 현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치첸이트사는 이전의 마야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새겼다. 해마다 한 사람씩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의 해골을 판에 찍어 유적 벽면에 붙인 것이다.
제물로 바칠 인물은 지금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통해 결정했다. 유적의 한쪽 벽면에 축구 골대 넓이로 구멍을 뚫고 길이 165m 경기장에서 팀당 7명씩 선수를 편성해 작은 고무공을 이리저리 패스하며 골대에 집어넣는 '펠로타'라는 공놀이가 그것이다. 선수들은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마치 전사처럼 경기에 임했고 이긴 팀원 중 가장 건강한 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
당시 사람들은 제물이 되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해서 경기에 이기려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치첸이트사의 유적들은 골대를 걸었던 구멍과 맞은편 벽면에 새겨진 경기 장면을 통해 당시 모습을 제법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무분별한 식민지 개척과 금광전쟁, 나아가 일부 국가의 제국주의 야망이 수천 년을 이어온 마야를 송두리째 없애버린 건 인류의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마추픽추의 잉카와 더불어 인류는 그렇게 두 개의 문명을 잃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