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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야, 진짜 몰라? 네 새끼 아닌 거

포토 스토리 - 뻐꾸기의 탁란

  • 백한기 기자 baekhk@kookje.co.kr
  •  |   입력 : 2013-09-12 19:00:09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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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뻐꾸기가 어미 뱁새에게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정말 나쁜 뻐꾸기 엄마다. 자식 키우기 싫다며 뱁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도망'친다. 그 새끼 역시 나쁘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둥지 안 뱁새 알과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인다. '얌체 부모'일까, 아니면 '고도의 번식 기법'일까. 뻐꾸기 '탁란'의 비극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지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뱁새 둥지에서 뻐꾸기 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 한 주택의 사철나무에 자리 잡은 뱁새 둥지다.

뻐꾸기는 스스로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기 새끼를 키우도록 한다. 이런 습성을 '탁란(brood parasitism)'이라고 한다. 탁란하는 새를 탁란조, 탁란 대상이 되는 새를 가짜 어미 또는 숙주라고 부른다. 그중 뻐꾸기와 같이 둥지를 짓지 않고, 알 품기와 새끼 기르기를 일절 하지 않은 채 남에게 위탁하는 예는 진성 탁란조라고 한다. 여름 철새인 뻐꾸기 몸길이는 36㎝이지만, 알은 3.5g이다. 텃새인 뱁새는 몸길이가 13㎝의 아주 작은 새, 알은 평균 2.0g이다.

탁란 12일째, 부화한 지 1일째(8월 2일). 새벽에 현장을 찾았다. '뻐~꾹, 뻐~꾹' 하고 정겨운 울음소리가 정관신도시에 울려 퍼졌다. 뱁새 둥지는 한 가정집 앞마당 사철나무 속에 있었다.

뱁새 둥지에서 알이 부화하기까지는 정확히 12일 걸렸다. 역시 뻐꾸기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게 뱁새보다 빨랐다. 뱁새 둥지 속 이상한 놈은 눈도 못 뜨고 깃털도 나지 않은 검붉은 빛의 새끼 뻐꾸기다. 새끼 뻐꾸기의 탄생을 지켜보는 어미 뱁새. 제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를 받아들이는 건 어미 새의 본능이다.

새끼 뻐꾸기가 뱁새 알, 새끼를 밀어내는 모습을 관찰해보기로 했다. 둥지 속에는 뱁새 알이 4개 있고, 새끼 뻐꾸기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입을 계속 벌린다. 새끼 뻐꾸기가 아직 깨어나지 않는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지만, 저녁까지 별다른 행동은 없었다.

탁란 13일째, 부화한 지 2일째(8월 3일). 다음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갔다. 오전 5시께 뱁새 새끼 한 마리가 알에서 깨어났다. 알에서 부화하기까지 13일이 소요됐다. 새끼 뻐꾸기는 부화한 지 만 하루 동안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먹이를 받아먹은 새끼 뻐꾸기는 뱁새의 새끼를 모두 밀어내 버릴 기세다.

드디어 새끼 뻐꾸기가 행동에 들어갔다. 금방 알에서 깨어난 새끼 뱁새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미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았다. 계속 새끼 뻐꾸기는 새끼 뱁새를 등에 업고 둥지 밖으로 밀어냈다. 둥지가 턱이 높은 데다 먹이를 받아먹느라 새끼 뱁새 밀어내기에 실패하자 10분간 둥지에 엎드려 휴식을 취했다. 다시 밀어내기를 시작했는데 나뭇가지가 얽힌 둥지 벽에 걸쳐지고 말았다. 둥지에 걸쳐 있던 새끼 뱁새는 겨우 움직이는 어미 새의 진동 탓에 둥지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눈도 못 뜨고 있지만 양 날개 중간 등 뒤에 민감한 곳이 있어 접촉되기만 하면 그 본능은 어김없이 작동했다. 새끼를 들어 올리기 쉽게 등도 굽어 있다.

새끼 뱁새 한 마리가 또 알에서 깨어나자 새끼 뻐꾸기의 밀어내기는 계속됐다. 어미는 새끼 3마리와 알 2개를 계속 품었다. 새끼 뻐꾸기는 어미 품속에서 새끼 뱁새들을 떠밀기 시작했다. 어미는 다시 새끼 뻐꾸기를 품어준다. 새끼 뻐꾸기의 밀어내기 본능은 필사적이다. 밀려 나오는 새끼는 곁에 두고 어미는 제 할 일을 찾아 나선다. 먹이를 물고 돌아온 어미는 여전히 새끼 뻐꾸기에게 먹이를 건네준다. 새끼 뻐꾸기는 일찍 부화했고 몸집도 크므로 새끼 뱁새를 밀고, 짓밟고 해서 진을 빼기도 했다. 결국, 몇 번 시행착오를 겪더니 마침내 새끼 뱁새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았다. 사람도 50분 일하고 10분간 휴식을 취하듯 새끼 뻐꾸기도 10분 쉬고 난 뒤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뻐꾸기의 본능은 단 한 마리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새끼마저 밀어내고 어미의 먹이를 받아먹었다. 어미는 자기 새끼인지 아닌지 구별하지도 않고, 단지 자기 곁에서 큰 입을 벌리고 있는 새끼에게 먹이를 집어넣는다. 어미는 먹이를 주고 난 뒤 주위를 맴돌다 새끼 뻐꾸기의 배설물을 부리로 빼내고 있다. 참으로 지극한 정성이다. 남의 자식, 그것도 자신의 자식을 죽인 원수에게 베푸는 뱁새의 사랑이 눈물겹다.

이어 어미 뻐꾸기는 둥지 주변 나무 꼭대기에서 자신의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성장하는 과정을 멀리 지켜보면서 자신의 울음소리를 새끼에게 들려준다. 이것은 자신의 새끼에게 '너는 뱁새가 아니고 나의 자식이니 내 소리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는 듯하다. 대개 새들은 봄에 짝을 찾기 위해 열심히 우는데, 뻐꾸기는 태어난 자식에서 자신의 뿌리를 알려주고 완전한 뻐꾸기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가르친다. 한여름에 뻐꾸기 울음소리가 잦은 이유다.

이번에는 부화 되지 않는 알 2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새끼 뻐꾸기는 날개와 등을 이용해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데, 나뭇가지에 막힌 알이 굴러떨어지지 못하다 다시 둥지로 굴러 들어갔다. 새끼 뻐꾸기는 잠시 후 이 알을 정확하게 밖으로 떨어뜨리도록 나뭇가지 없는 쪽으로 알을 밀어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시행착오 끝에 결국, 알 2개가 둥지 밖으로 떨어졌다. 돌 위에 떨어진 알은 그 자리에서 깨져버렸다. 어느덧 새의 모습을 갖춘 알 속의 새끼 뱁새를 향해 파리떼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어미 뱁새는 새끼 뻐꾸기의 이런 행동을 그저 멍하게 바라볼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수컷 어미가 어느새 날아와 그 새끼 뻐꾸기에게 먹이까지 건네줬다.

일반적으로 새끼 뻐꾸기는 부화한 지 3일 안에 둥지 안 다른 새끼와 알을 모두 밀쳐내 버린다고 한다. 이놈은 새끼 뱁새와 알을 제거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뱁새 둥지의 5% 이상이 이렇게 뻐꾸기에게 희생당한다고 한다.


◇STEP1. 뻐꾸기, 뱁새 둥지에 슬쩍 알 낳다
   
뱁새 둥지에 있는 알 중 제일 큰 것이 뻐꾸기 알이다.

◇STEP2. 눈치없는 뱁새는 그대로 품다
   
사철나무 가지 사이에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있는 뱁새.

◇STEP3. 뱁새 알 처리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새끼 뻐꾸기.

◇STEP4. 뱁새 새끼도 처리
   
새끼 뻐꾸기가 새끼 뱁새를 등에 업고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STEP5. 멀뚱멀뚱
   
새끼 뻐꾸기가 새끼 뱁새를 밀어내는 동안 어미 뱁새는 보고만 있다.

◇한편. 승자의 여유
   
새끼의 성장 과정을 멀리서 지켜보는 어미 뻐꾸기.

취재 협조=박용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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