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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칼럼] 그 남자들의 낯선 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1-20 18:43:0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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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를 겸해 평소 안면 있는 다른 회사의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자연스럽게 간부층과 젊은 직원들이 나뉘어 앉게 되었는데 올 한해 힘들었던 나라 살림살이며 새해 세상이 어찌 돌아갈런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마칠 무렵이 되었다. 서비스로 내어주는 매실차 한 잔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들의 이야기에 귀가 열렸다.

"그럼, 건조기는 A사 제품이 더 낫다는 건가요?" "예, 옷에 보푸라기가 일지 않더라구요. 아이들이 어려서 빨래거리가 정말 많거든요. 잘못 말리면 냄새 나는데 빨리 말라서 좋구요.. 빨래가 많으니까 일일이 너는 거, 그거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 저도 A사 제품으로 하나 사야겠어요. 저도 빨래 너는 게 제일 힘들거든요. 옷감은 안 상해요? 빨래 갤 때 보면 옷이 줄기도 하던데…. 청소는 어떤 걸로 하세요?" "옷감, 안 줄어요. 청소기는, 저는 그냥 직접 미는 청소기요. 로봇청소기가 좋다고들 하는데, 저는 직접 미는 게 더 맘에 들게 청소가 되더라구요."

키들키들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건 내게 너무나 익숙한 주부들의 대화 아닌가?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30대 초·중반의 평범한 직장 남성들. 그들이 나누는 자연스럽고 야무진 살림 이야기에, 순간 이 낯선 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살림의 여왕으로, 주부 9단의 이름으로 '집안 일은 나의 것'이라고 살아온 과거가 떠올라 갑자기 할 말이 많아졌던 것이다.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며 그래도 살림과 육아는 당연한 내 몫이라고 여겼던 지난 시절이 젊은 남성들의 대화에 왠지 모르게 억울해졌다.

며칠 후 양성평등 강사로 일하는 선배님과 우연히 차를 나누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 장가 간 큰 아들 이야기로 속을 내비치신다. "나는 내가 좀 다른 시어머니일 줄 알았거든. 명색이 양성평등 강사잖아. 그런데, 그게 또 현실이 되니까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구! 우리 며느리 집에서 살림만 하거든. 그런데 아침 차려다가 바치는 우리 아들 보니까… 에휴, 명색이 양성평등 강사인 시어머니가 티 낼 수도 없고, 맛있게 먹어라! 하고 한마디 건넸는데, 솔직히 기분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구." 함께 차를 마시던 딸만 가진 엄마가 밉지 않은 볼멘소리로 서글서글 맞받아친다. "선배님, 직장 안나가도 살림하는 건 엄청난 일이잖아요. 당연히 나눠야죠!"

아들만 가진 나는 누구 편도 들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웃고 말았다. 세상에서 제일 치사하고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 '나도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유치짬뽕식 보복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아들만 가진 나는 훗날 억울함을 못이긴 유치한 보복극을 펼칠까 싶어 이렇게 미리미리 주위의 이야기로 예방주사를 맞는다. 달라진 세상, 결코 달라질 수 없는 남편과의 동거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달라져도 아주 달라질 아들의 미래를 견뎌내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으며 면역을 키울 수밖에.

유정임 FM 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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