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잔인할 수 있을지도 모를 난처한 질문을 우리는 지금도 재미 삼아 되풀이하곤 한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예전 같으면 선택할 수 없는 이 잔인한 질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물만 그렁그렁 맺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지만, 눈치 빠른 요즘 아이들은 피해가는 대답을 제대로 알고 있다. "둘 다!" 하고 단번에 말문을 막아버리니 말이다.
세월이 흘러 흘러 그 부모가 노인이 되고 나니 자식들 사이에 이 난처했던 질문이 모습을 바꿔 다시 등장하고 있는 듯 하다. "집에 모실까? 요양원에 모실까?". 얼마 전 휴일 아침. 아침밥을 준비하다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프로그램에 우연히 채널이 돌아갔다. 자신의 생활이라고는 전혀 챙길 틈 없이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해 왔던 예전 어르신들. 그러나 이즘의 어르신들은 배움의 끈이 더 길어지고 사는 형편이 나아져서 그런지 참 세련되셨다. 재치 있는 유머와 함께 인생의 진지함도 배울 수 있어 종종 눈을 돌리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 아침의 대화는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한 어르신께서 마이크를 잡고 울먹인다.
"90세 되신 친정어머니께 치매가 왔어요. 한참을 모시던 며느리도 이제는 힘들다고 손을 들어서 딸인 제가 요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치료도 더 전문적으로 잘해 주고 새로운 친구도 많을 거라며 좋다고 하셨는데, 모셔다드리고 막상 제가 오려고 하니 입구에서 절 잡고 그러세요. 나, 말 잘 들을게. 너희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여기 두지 말고 데리고 가면 안될까? 자주 올게요, 하고 돌아서는데… 눈물 흘리던 친정엄마가 눈에 밟혀서 마음이 어찌나 아리던지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마는 나이 든 딸의 이야기에 밥상을 차리다 말고 덩달아 식탁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큰아이가 19개월이 되었을 때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연년생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하려니 삶이 너무 버거웠다. 돌아서면 쏟아지는 일거리와 살림살이. 연년생 두 아이를 한꺼번에 돌보는 건 아이를 키워주시던 아주머니께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만 두 살도 되지 않은 생후 19개월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던 큰아이는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안들어가겠다고 떼라도 쓰면 야단이라도 쳐서 마음의 부담을 덜었을 텐데 말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리고는 "눈물 좀 닦아주세요!"하고는 들어가는 일을 반복했다. 아주머니도 남편도 아침마다 더 이상 가슴이 아파 못할 짓이라고 도리질을 쳤다. 새벽방송을 하느라 그 광경을 직접 겪지 못했던 나는 에미니까 그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에는 듯했다. 다행히 19개월 큰아이는 그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이제는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나름 즐겁게 회상한다. 하지만 에미인 나는 아이의 그 아픈 눈물이 지금도 가슴에 파편처럼 박혀 있다.
모실 상황이 쉽지 않은 가족들보다는 보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요양원이 노모에게는 한결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음에도 자식들은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로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서 항상 결론은 쉽지 않다. 90세 노모와 19개월 아이의 눈물. 눈물은 다르지만 가족이기에 눈물은 같다. 가족이기에 눈물은 더 아프다.
유정임 FM 90. 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