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2005)’의 극장판은 반쪽짜리 영화였다. ‘로보캅(1987)’의 폴 버호벤이 준비하다 그의 손을 떠난 십자군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리들리 스콧은 소년 시절부터 오랜 숙원으로 삼고 있었던 자신만의 중세 기사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것은 감독 본인이 ‘글래디에이터(2000)’로 포문을 열었던 21세기 대형 서사극의 최종적인 발전형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폭스는 상영 회차를 늘리기 위해 장면들을 덜어낼 것을 지시했고, 스튜디오의 요구를 받아들인 리들리 스콧은 자신의 의도대로 완성된 194분 감독판에서 50분 가량의 분량을 들어냈다. 영화 전체에서 장장 4분의 1을 잘라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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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 |
145분의 극장판은 인과 관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서사구조의 부실함을 지적받으며 혹평을 면치 못했다. 1억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가 거둔 전체 수익 또한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는 2억1000만 달러 남짓에 그쳤다. 그러나 2005년 12월 23일, 제한 상영의 형태로나마 감독판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원형을 되찾은 영화는 걸작으로 재평가되어 명예를 회복했고, 이듬해 디스크 네 장 분량의 감독판 DVD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15년 만에 다시 극장에 걸린 ‘킹덤 오브 헤븐’은 바로 이 감독판이다.
‘벤허(1959)’나 ‘스팔타커스(1960)’ 등이 그래왔듯, 전형적인 할리우드 서사극은 명확한 흑백, 선악의 대비와 그에 따르는 갈등, 대결의 구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십자군을 소재로 다룸에 있어 전통적인 서사극의 내러티브 방식을 취하는 순간, 영화는 반기독교 아니면 반이슬람 한쪽에 기우는 일방적이고 편향된 가치관을 담은 작품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에서 1184년에서 1187년까지의 기간을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자 한 리들리 스콧의 결정은 대담한 도전이었다.
예루살렘 공성전, 그리고 살라딘과의 협상으로 이어지는 이 역사적 배경에는 분명 대규모 상업영화가 필요로 하는 스펙터클의 순간들은 있지만, 명쾌한 승리가 아닌 불완전한 타협과 일시적 평화로 맺어진다는 점에서 장르의 규칙을 전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었다.
섣불리 어느 한 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역사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 흥망성쇠를 바라보는 이 ‘가치중립성’은 명쾌한 기승전결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킹덤 오브 헤븐’이 지닌 약점이지만 동시에 의도된 핵심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리들리 스콧은 “야만적인 전쟁보다는 떳떳한 타협이야말로 진정 명예로운 것”이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거대 자본의 블록버스터 속에 관철코자 한다.
‘킹덤 오브 헤븐’의 엔딩에서 관객은 3차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리처드 1세의 출병을 보게 된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은 원정에서 돌아오던 리처드 1세의 전사로 ‘로빈 후드(2010)’를 시작한다. 전자가 이라크전에 대한 역사적 대응물이라면, 후자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망가져 버린 서구 사회의 내적 모순에 관한 현실적 메타포로서 작동한다. 역사의 공간을 재창조하면서 리들리 스콧은 그 안에 변해가는 세계의 양상을 투영하고 증언하고자 해왔다. 증오와 폭력, 불관용의 불길이 곳곳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는 지금, 다시 돌아온 이 현대의 클래식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