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달라. 주제가 있다고.”
‘맹크(2020)’는 데이비드 핀처에게 있어 오랜 숙원이었다. 본래 이것은 그의 아버지 잭 핀처의 구상이었다. ‘라이프’의 기자로 샌프란시스코 지부장까지 역임했던 잭 핀처는 프리랜서 작가로 전업한 후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각본을 집필했고, 아버지의 복안을 받아든 데이비드 핀처는 ‘더 게임(1997)’의 연출을 마무리 짓고 다음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한다. 그러나 케빈 스페이시와 조디 포스터를 배역에 내정해두었던 이 프로젝트는 흑백영화라는 점 때문에 난항을 거듭했고, 2003년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잭 핀처는 세상을 떠난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1951)’의 리메이크와 ‘월드 워 Z(2013)’의 속편이 모두 엎어진 후, 핀처는 넷플릭스의 지원에 힘입어 아버지의 유작을 영화화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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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크’ 스틸컷 |
시나리오 작가 허먼 맨키비츠(Herman Mankiewicz ·1897~1953)의 생애를 다룬 이 전기영화는 선형적인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교차편집으로 두 개의 시간대를 번갈아 오간다. 영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민 케인(1941)’의 각본을 쓰는 과정을 따라가던 영화는 도중에 맨키비츠의 과거사를 포갠다. 우리는 그의 시점과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MGM의 창업주 루이 B 메이어와 프로듀서 어빙 솔버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를 제작한 데이비드 셀즈닉, 주인공의 동생이자 뒷날 ‘이브의 모든 것(1950)’과 ‘클레오파트라(1963)’를 만드는 명감독 조셉 맨키비츠, 그리고 오슨 웰즈에 이르기까지 고전기 할리우드를 움직인 거물들의 뒷이야기를 목격하게 된다.
레드 계열의 카메라로 작업(8K 촬영·6K DI)한 디지털 영화임에도 ‘맹크’의 영상에는 클래식 영화의 고색창연함이 넘친다. 핀처는 일부러 없었던 필름그레인과 잡티를 화면에 흩뿌리고 산광 필터 효과와 담배빵 구멍까지 입혀가며 옛 필름 영화의 질감과 분위기를 오늘날에 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에는 어딘가 현재의 상황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감돈다. 극 중 맨키비츠는 말한다. “‘오즈의 마법사(1939)’가 스튜디오를 망가뜨릴거야.” “요즘 영화들이 어떤가? 갱스터 아니면 코미디지.”
맨키비츠가 영화계까지 좌지우지하는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풍자하고자 ‘시민 케인’을 집필한 것처럼, 핀처는 ‘맹크’를 통해 블록버스터에만 몰두한 채 작가의 창의성을 추방하고, 무성의한 장르의 반복재생산을 거듭하는 할리우드의 현재를 과거의 스튜디오에 빗대면서 우회적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어쩌면 핀처는 더이상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비전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넷플릭스로 걸음을 옮긴 자신의 처지를 맨키비츠에게 투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앵글의 다양성과 컷의 속도감을 잃지 않으면서 이미지너리 라인(Imaginary Line)을 정교히 짜 맞추는 핀처 특유의 솜씨는 ‘시민 케인’에서 선보인 오슨 웰즈의 영화적 테크닉과 조화로이 만나고, 열연하는 게리 올드먼의 입에서 쏟아지는 대사들은 현대에 떨어진 셰익스피어가 휘갈긴 것과 같은 문학적인 기교를 자랑한다. ‘맹크’는 현대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걸작 ‘시민 케인’에 바치기에 부끄럽지 않은 주석을 달고 싶었던 또 다른 거장 데이비드 핀처의 헌정사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