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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청년실업 등 사회 문제 다뤘지만 공감대 사라져 아쉬운 리메이크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0-12-16 19:14:34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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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2020)’는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세 가닥의 실이 뒤엉킨 실뭉치 같다. ‘조제, 물고기 그리고 호랑이(2003)’의 기본적인 줄거리를 따라가지만 두 주인공의 연령대를 동년배가 아닌 연상연하 커플로 바꾼 이 리메이크 작은 ‘최악의 하루(2016)’와 ‘더 테이블(2016)’을 만든 김종관 감독의 연출이 맞물리면서 사뭇 다른 정감을 갖게 되었다. 이누도 잇신의 원작 영화가 지녔던 만화적인 과장과 감성은 한국 사회의 실제에 맞춰 청년 실업과 지방대 차별, 노인 빈곤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소환하면서 음울하고 현실적인 톤으로 각색되었다.
   
영화 ‘조제’ 스틸컷.
장애인 여성과 대학생 청년의 로맨스라는 기본적인 스토리라인, 일정한 길이를 요구하는 장편영화의 구조를 갖추기보다는 짧은 상황 속에서 서사를 함축하고 사물과 공간의 정취, 인물 간에 흐르는 미묘한 심리의 밀도에 치중하는 감독의 연출성향, 그리고 한국사회의 현실에 맞물리도록 바꿔야 한다는 리얼리즘에 대한 요청. 서로 다른 세 가지 방향성을 한 편의 영화 안에 포개면서 가지런히 통합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조제’는 짊어진 과제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만다.

‘조제, 물고기 그리고 호랑이’는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은 조제의 성장담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성년이 마주쳐야 할 일본 사회의 문제들을 굳이 파고들진 않았다. 일본의 멜로드라마에서 대개 현실이란 카메라의 피사체일 뿐 일말의 역사성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떨어진 환상의 공간이며, 청춘 남녀는 ‘노(能)’의 배우들처럼 무대 안에 머문 채 일상과 연애라는 역할극에 충실할 뿐이다. 이것은 정치적 발화를 회피하며 현실을 봉합하는 일본 영화 특유의 시치미 떼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로부터 도피한 현실의 진공이기에 서사의 비약과 감정의 과장, 로맨스의 순수함과 환상성이 허용되게 한다.

리메이크된 ‘조제’는 풍경과 사물을 쓰다듬듯이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 정물화를 방불케 하는 단정한 프레임으로 사라진 것들의 시간성, 버려지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애상(哀想)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감독 김종관의 인장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인상적인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는 공감대를 자아내지 못한다. 조제와 영석, 영석과 대학 후배 수경의 관계는 진전되는 과정, 필요한 이야기와 감정선의 일부를 설명하지 않고 생략해버리는데, 이러한 서사적 유기성의 결여는 결말에 이르면 중요한 시퀀스가 편집과정에서 2, 3개 잘려나간 것처럼 급하게 마무리 짓는 인상을 준다.

청년 실업과 지방대 차별의 현실은 후배 수경의 고시원 살이, 취업 문제로 교수들과 엮이는 영석의 모습을 통해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재현은 플롯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한 채 파편화된 조각으로만 던져져 있다.

만약 한국적인 상황 안에서 현실성 있는 로맨스를 그리고 싶었다면, 원작의 러닝타임 117분에 대한 오마주를 포기하더라도, 교수와의 만남과 취업이 조제와 영석의 헤어짐, 수경과의 결혼에 어떻게 이어지고 작용했는가를 설명하는 추가적인 이야기 단락들이 더해져야 했다. ‘조제’는 마치 세 개의 실을 정성스레 바느질했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한 태피리스트 같다.

   
이 리메이크에 필요했던 건 보다 과감한 각색과 한국적 리얼리즘, 그리고 서사적 유기성이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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