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2020)은 중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는 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음악 교실에서 밴드 수업을 진행하던 조 가드너는 자신의 연주에 몰입해 친구들의 비웃음을 산 학생 코니를 칭찬한다. 수업을 마무리한 조는 학교에서 정규직 교사 자리를 제안받는데, 그는 이 날 유명 재즈 뮤지션 도로시 윌리엄스의 밴드에 피아니스트로 공연할 것을 요청받은 상태다. 한쪽에는 안정된 직장 생활이 보장되어있고, 다른 한 편에는 불안정하지만 인정받는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화려한 꿈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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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울’ 스틸컷. |
꿈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역경과 성취, 극의 균형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제시되는 유머와 슬랩스틱 등. 익히 보았던 픽사 애니메이션의 관습적인 캐릭터와 콘셉트를 답습하며, 중반까지를 지리하게 끌고 가던 이 작품은 후반부에 철학적 충격의 한 발을 약실에 장전해둔다.
맨홀에 빠져 의식을 잃은 조의 영혼은 저승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 앞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다, 태어나기 이전인 영혼들이 지상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는 ‘유세미나’라는 곳으로 떨어진다.(‘신곡’에서 묘사되는 저승의 여러 영역에서 착안한 듯한 이 저승 세계의 관리자들은 시각적 디자인의 측면에서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를 연상시킨다.) 이때부터 영화는 다시 이승의 몸으로 돌아오려는 조와 탄생을 거부하고 유세미나에 머물러있는 냉소적인 꼬마 영혼 22 간의 버디무비로 전개된다.
지상에 내려와 조의 몸에 방의한 22는 피자의 맛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나뭇가지 사이로 명멸하는 햇살을 응시하는 등, 삶의 실제를 경험하면서 급격한 의식의 변화를 맞는다. 이발소에서 청중을 사로잡을 만큼 능숙한 언변, 세계사에 명멸하는 명사들의 가르침을 농락할 만큼의 지성을 지니긴 했지만, 정작 22에게는 지식이 아닌 감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직관은 없었던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파스칼은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팡세’)을 말한 바 있다. 기하학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면 세상은 얼마든지 숫자로 환산될 수 있고 계량 가능한 물질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거기에만 의존해서는 실제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안, 기쁨과 절망, 사랑과 고독의 감정으로 점철될 내면의 결을 섬세히 읽어낼 지혜와 성찰이 결여되고 만다. 조 역시 22와 비슷한 함정에 빠져있다. 멋지게 공연을 마치고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직업적 성공이란 목적을 이루었지만 정작 그는 공허함을 느낀다. 22가 남기고 간 것들을 짚어보고 나서야 조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는다.
보통 우리는 인생에 반드시 꿈과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목적론적 사유를 강요받곤 한다. 그러나 목적에 매인 삶, 자명한 성과의 실현에 매이는 순간, 우리의 존재와 삶은 자유를 잃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맞는다. 이러한 궁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건 때로는 바깥 세상에 몰두하던 눈을 잠시 감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판단중지(epoche)의 순간일 것이다. 조가 연주를 통해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지고, 22가 사소한 일상의 한순간에 설레이며 영혼이 충만해짐을 느끼듯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