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K-무비서 사라져가는 영상 문법들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2-24 19:45:34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한국 영화 산업이 코로나 상황으로 존폐의 궁지에 몰려있는 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위기는 팬데믹 국면이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진행돼왔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둘러싼 언어들에서부터 문제는 일찌감치 감지되어왔다. ‘승리호’(2021)에 관한 다양한 반응 중 당혹스러웠던 건 넷플릭스로 간 영화가 거둔 수치상의 성공과 스타성에 대한 말들은 넘쳐났을지언정, 그 안에 ‘영화적 만듦새’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할 것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다. K-신파도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각광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논지는 실상 흥행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망가진 상품도 잘 팔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몰지각한 시장 논리를 답습할 뿐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승리호’ 스틸컷.
분명 “영화는 산업인 동시에 예술”(조지 루카스)이지만, 이 말이 영화의 예술적 측면을 도외시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오독돼서는 안된다. 영화가 시간과의 싸움에서 버티게 하는 건 결국 영화가 갖는 영상 언어의 고유성과 아이디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살인의 추억’(2003), ‘장화, 홍련’(2003), ‘올드보이’(2003) ‘지구를 지켜라’(2003)를 쏟아냈던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의 성취를 영화사에서 지워내야 한다.

‘라쇼몽’(1950)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나뭇짐을 하러 간 농부가 도적에게 피살당한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하는 시퀀스를 꼽곤 한다. 구로사와는 보통 각본에 문장 한 줄로 처리됐을 법한 순간을 공들여 치밀하게 묘사한다. 농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포착하는 수평 트래킹, 인물의 시점에서 보일 법한 숲의 풍광 등 여러 개의 숏을 축적해가며 장면에 음악적인 리듬감을 부여하는 구로사와의 연출은 숲에 버려진 삿갓과 모자를 보여주며 불길한 사건의 전조를 드러내다가 풀숲에 버려진 시신에 이르러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기에 이른다. 이 시퀀스의 구성과 템포는 이후 스필버그가 ‘E.T.’(1982)에서 엘리엇이 처음 그의 외계인 친구와 조우하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따라한다. 우아한 고전 문법의 계승과 재창조의 위대한 사례.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전개될 때 인물의 동선과 위치, 감정과 심리에 관객이 온전히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건 숏의 호흡과 유기적 연결, 시각적 다양성와 일체감을 고려한 프레이밍이다. 이처럼 영화 매체의 테크닉을 유려하게 살려낸 사례를 수년간 한국 상업영화에서 본 일이 극히 적다. 평론의 입장에서 ‘기생충’(2019)에 환호했던 것도 감독의 작가주의가 시대의 폐부를 겨냥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주제를 형상화하는 영화적 형식미의 세련됨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밀정’(2016) ‘공작’(2018) ‘엑시트’(2019)와 같은 몇몇 기억나는 사례를 제외하면 한국 상업영화 대부분의 영상 문법은 TV 드라마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 양상을 보여왔다. 세트 공간을 잠시 비추는 관습적인 마스터 숏, 배우의 얼굴과 대사를 전달하기 위한 클로즈업 숏들의 무성의한 파상공세. 과정을 대거 누락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시나리오에 써진 상황을 설명적으로만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영화가 담아내는 세계와 그에 처한 인물의 심리, 대사만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이미지의 감정적 파괴력을 자아내지 못한다. 영화적 교양의 결여. 아마도 이것이 코로나가 진정되더라도 계속될 한국영화 위기의 정체일 것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도청도설] if, 손아섭
  4. 4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5. 5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6. 6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7. 7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8. 8[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10. 10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1. 1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4. 4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5. 5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6. 6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7. 7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8. 8이 대통령 "중수청 지휘감독 포기하는건 탄핵사유" 野 "국무회의 참석하면 밀실지휘 없어지나"
  9. 9[뭐라노]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10. 10김여정 "국경선 새 대응수단 임무대기…확성기도 수일 내 가동"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6. 6[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7. 7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8. 8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9. 9흑백요리사 셰프, 국내산 수산물 해외 홍보 나섰다
  10. 10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6. 6구조하다 놓친 익수자 숨진 채 발견
  7. 7취임하자마자…도시철 파업 막기 숙제
  8. 8특검팀, 마산합포구선관위 등 투표자수 허위 입력 6곳 추가 확인
  9. 9부산 다문화 고교생 5년새 2배…정작 한국어학급 ‘0’
  10. 10부산청년 취업 등 여전히 팍팍하네 “맞춤형 정보 절실”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5. 5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6. 6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7. 7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8. 8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9. 9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10. 10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