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산업이 코로나 상황으로 존폐의 궁지에 몰려있는 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위기는 팬데믹 국면이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진행돼왔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둘러싼 언어들에서부터 문제는 일찌감치 감지되어왔다. ‘승리호’(2021)에 관한 다양한 반응 중 당혹스러웠던 건 넷플릭스로 간 영화가 거둔 수치상의 성공과 스타성에 대한 말들은 넘쳐났을지언정, 그 안에 ‘영화적 만듦새’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할 것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다. K-신파도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각광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논지는 실상 흥행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망가진 상품도 잘 팔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몰지각한 시장 논리를 답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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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개봉한 영화 ‘승리호’ 스틸컷. |
분명 “영화는 산업인 동시에 예술”(조지 루카스)이지만, 이 말이 영화의 예술적 측면을 도외시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오독돼서는 안된다. 영화가 시간과의 싸움에서 버티게 하는 건 결국 영화가 갖는 영상 언어의 고유성과 아이디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살인의 추억’(2003), ‘장화, 홍련’(2003), ‘올드보이’(2003) ‘지구를 지켜라’(2003)를 쏟아냈던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의 성취를 영화사에서 지워내야 한다.
‘라쇼몽’(1950)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나뭇짐을 하러 간 농부가 도적에게 피살당한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하는 시퀀스를 꼽곤 한다. 구로사와는 보통 각본에 문장 한 줄로 처리됐을 법한 순간을 공들여 치밀하게 묘사한다. 농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포착하는 수평 트래킹, 인물의 시점에서 보일 법한 숲의 풍광 등 여러 개의 숏을 축적해가며 장면에 음악적인 리듬감을 부여하는 구로사와의 연출은 숲에 버려진 삿갓과 모자를 보여주며 불길한 사건의 전조를 드러내다가 풀숲에 버려진 시신에 이르러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기에 이른다. 이 시퀀스의 구성과 템포는 이후 스필버그가 ‘E.T.’(1982)에서 엘리엇이 처음 그의 외계인 친구와 조우하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따라한다. 우아한 고전 문법의 계승과 재창조의 위대한 사례.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전개될 때 인물의 동선과 위치, 감정과 심리에 관객이 온전히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건 숏의 호흡과 유기적 연결, 시각적 다양성와 일체감을 고려한 프레이밍이다. 이처럼 영화 매체의 테크닉을 유려하게 살려낸 사례를 수년간 한국 상업영화에서 본 일이 극히 적다. 평론의 입장에서 ‘기생충’(2019)에 환호했던 것도 감독의 작가주의가 시대의 폐부를 겨냥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주제를 형상화하는 영화적 형식미의 세련됨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밀정’(2016) ‘공작’(2018) ‘엑시트’(2019)와 같은 몇몇 기억나는 사례를 제외하면 한국 상업영화 대부분의 영상 문법은 TV 드라마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 양상을 보여왔다. 세트 공간을 잠시 비추는 관습적인 마스터 숏, 배우의 얼굴과 대사를 전달하기 위한 클로즈업 숏들의 무성의한 파상공세. 과정을 대거 누락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시나리오에 써진 상황을 설명적으로만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영화가 담아내는 세계와 그에 처한 인물의 심리, 대사만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이미지의 감정적 파괴력을 자아내지 못한다. 영화적 교양의 결여. 아마도 이것이 코로나가 진정되더라도 계속될 한국영화 위기의 정체일 것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