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미나리: 그렇게 삶은 살아진다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3-10 19:33:03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여기 어디야?” “집이야.”

‘미나리’(2020)는 아칸소로 이민 온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사로 막을 연다. 교외전원으로 온 일가족을 맞이하는 건 허허벌판 한 가운데 놓인, 언제라도 집째로 떠날 수 있도록 바퀴가 달린 협소한 이동식 가옥뿐이다. 정주와 유목 사이에 애매하게 놓인 공간의 모순된 세팅은 앞의 대사와 맞물리며 스리슬쩍 영화의 줄거리와 주제를 관객에게 흘려놓는다.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에서 머물 장소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 관한 영화이며, 낯설고 불편한 곳을 또 다른 고향으로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다독여야만 하는 적응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감독은 오프닝에서 단번에 함축시켜 보여준다.
   
윤여정, 스티븐 연, 한예리가 출연하고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나리 스틸컷.
제이콥(스티븐 연)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한 편으로는 새 터전에서 농장을 가꾸려 한다.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그런 남편의 꿈을 기대보다는 불안에 찬 심정으로 바라보며 자식들을 위한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그런 가운데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가 찾아오지만 손주인 앤과 데이빗은 할머니를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에는 3대에 걸친 세대의 연대기가 있다. 할머니 순자는 한 평생을 한국인으로 살아온 사람이고, 제이콥은 미국 사회에 발을 디디긴 했지만 몸에 배인 가부장적 습속을 버리지 못하며, 모니카는 여전히 영어를 힘들어한다. 손주 세대인 앤과 데이빗은 그들의 부모보다는 손쉽게 동화하며 금세 미국인 친구를 만든다.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는 집 주변을 에워싸며 반복되는 식물의 이미지에서 발견된다. 제이콥은 이국땅에 와서 한인을 잠재적인 고객 삼아 한국 채소를 재배해 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는 한국을 떠났음에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타지에서 살아가려는 가족에 대한 자기 반영이자 은유처럼 보인다. 새 땅에 적응해가려는 인물과 다른 장소에 뿌리내리려는 식물 간의 이러한 동일시(同一視)는 제이콥의 농사가 난관에 부딪치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물이 끊기면 작물이 시들듯, 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족은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다.

광각렌즈로 포착한 자연과 사물, 풍경을 통해 인물의 내적 심리를 외적으로 드러내는 ‘미나리’의 영화적 화술은 은연중 테렌스 맬릭의 초기작인 ‘황무지’(1973)와 ‘천국의 나날들’(1978)에서 받았을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가족의 장래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 간의 고조되던 긴장은 순자의 실수로 헛간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순식간에 정리되는데, 이 장면은 영락없이, 삼각관계의 불안과 의심이 극도로 치달은 순간 화재를 맞은 농장의 혼란을 보여주며 지주의 분노를 시각화한 ‘천국의 나날들’에 바치는 헌사처럼 보인다. 한 차례 재난이 모든 근심을 휩쓸고 나서야 가족은 오랜만에 평화를 되찾는다.

   
결말에 이르러 가족은 할머니 순자가 물가에 심어두었던 미나리와 동일체다. 어디서든 잘 자라는 생존력의 미나리처럼, 그 모든 파란과 고통을 겪고서도 가족은 살아갈 것이고, 부모 세대가 실수하고 방황하며 쌓아온 토대를 바탕으로 아이들은 미국 땅에 뿌리내릴 것이다. 현실은 냉엄하나, 그렇게 일상은 지속되고 삶은 계속된다. 어떠한 희망도, 기적도 손쉽게 상정하지 않는 이러한 담담함이야말로 역설적인 위안이자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3. 3[사설] 외국인 400만 시대, 부산은 이제 체류형 관광이다
  4. 4‘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5. 5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6. 6‘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7. 7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8. 8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9. 9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10. 10매표소 오픈런…레드카펫 ★ 보려 외국인 새벽부터 달려왔다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송곳검증 벼르더니…교통·시설公도 싱거웠던 시의회 청문회
  3. 3조희대 “국회·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종합)
  4. 4여야, 국감서 알래스카 LNG 사업 집중 추궁
  5. 5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6. 6이 대통령 "북극항로 시범운항 선박 귀항 부산의 미래 깃발, 신경써달라"
  7. 7‘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8. 8[속보]조희대 작심 발언 “국회·대통령은 대법원장 제청에 관여 못 해”
  9. 9부산 민주당 "주진우, 암살자(들) 부산영상위 시사회 사실왜곡 비판"
  10. 10검찰개혁, 중수청장 임명 두고 커지는 집안싸움
  1. 1‘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2. 2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3. 3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4. 4롯데백화점, 업계 첫 외국인 매출 1조 ‘포문’
  5. 5금감원 “AI 해킹 시도 IP 28개 확인”
  6. 6부산 극지해양 전문강사 “현장 능력 키워요”
  7. 7주가지수- 2026년 10월 6일
  8. 8부산 청년기업 ‘DPP(디지털제품여권)’ 국내 첫 상용화
  9. 9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10. 10부산지역 농지 41%, 외지인이 소유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3. 3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4. 4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5. 5전기車 높아진 인기에 예산 동나…부산시, 하반기 1520대 더 지원
  6. 6“침묵하는 대주주, 대화 자리 나서라”
  7. 7전재수 시장, 소통 행보…사흘 연속 생중계 회의(종합)
  8. 8부산중수청장 “정치 중립성·수사 독립성 엄격히 지키겠다”
  9. 9박완수 경남도지사 “행정통합 위해 부울 시장 설득”
  10. 10양산시보건소 일반진료 줄인다
  1. 1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2. 2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3. 3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4. 4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5. 5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6. 6“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7. 7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8. 8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9. 9‘손흥민 A매치 한국인 최다 골’ 우즈베키스탄에 2-0 완승
  10. 10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