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더 파더’가 묻는다 “너희가 늙음을 아느냐”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5-19 19:35:21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노인과 바다’의 말미에서 헤밍웨이는 호기롭게 ‘사람은 파괴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고 썼다. 청새치와의 싸움이 비록 육신을 망가뜨리고 피폐하게 했을지언정, 정신만큼은 결코 무너뜨리지 못했음을 웅변하는, 산티아고 노인의 이 말 한마디에는 역사 현실의 질곡에 처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불굴의 인간 정신을 긍정하고자 했던 헤밍웨이 문학의 휴머니즘이 응축돼 있다. 그러나 문학적 수사를 떠나서 현실의 노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동명의 원작 연극을 쓴 극작가 플로리안 젤러의 영화 데뷔작 ‘더 파더’(2021)는 이제까지 정형화되고 도구화돼 왔던 노년의 이미지를 파괴하며 외면해온 현실의 조각을 스크린에 펼쳐내보인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영화는 아버지를 만나러 집으로 향하는 딸 앤과 음악을 듣고 있는 아버지 안소니의 모습으로 막을 연다(이때 안소니가 듣고있는 곡은 헨리 퍼셀의 오페라 ‘킹 아더’의 ‘너는 무슨 힘으로(What power art thou)’로 메인 테마곡처럼 자주 활용된다). 자신이 잃어버린 시계를 두고 간병인이 훔쳤다며 남탓을 하는 아버지에게 딸은 애인이 거주하는 프랑스 파리로 떠날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신원불명의 남자가 자신을 앤의 남편이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파리로 떠난다는 딸은 집에 돌아와 있고, 요양사는 사고로 잃은 둘째 딸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종국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안소니를 당혹스럽게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허상인지 구별되지 않는 혼란 속으로 끌어들이는 영화의 진실은 종국에 가서야 밝혀진다. 안소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었고, 요양원 생활을 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딸은 애인과 함께 파리로 떠나 주말이 되면 면회하러 오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치매 증상이 심해짐과 동시에 딸에 대한 그리움 또한 깊어진 안소니는 요양원 간호사를 딸과 사위로 혼동하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 전체가 실은 치매 증상을 겪는 안소니의 주관적 시점에서 보이는 심상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던 것. 남은 건 ’대부‘(1972)의 위엄에 찬 신화적 가부장도, ’일 포스티노‘(1994)의 자애로운 멘토도 아닌, 잎사귀가 떨어져 말라가는 나무처럼 무너져가는 노인의 초라함 뿐이다. 심리 스릴러의 장르적 화술로 밀도 있는 긴장감을 유지하던 영화의 결말은 착잡한 상념에 사로잡히게 한다.

   
고대 로마의 극작가 테렌티우스는 희곡 ‘포르미오’에서 “늙음은 그 자체로 병이다(Senectus ipsa est morbus)”고 한 바 있다. 의학의 발전은 노년기의 연장일 뿐, 신체가 허약해지고 기억력이 쇠퇴하는 늙음의 현실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환상을 보고, 본래 살던 집에 집착을 보이는 안소니의 모습처럼, 노인들은 살아온 삶의 터전과 주변의 인간관계를 떠나고 싶지 않아 한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필연이며, 노인을 요양원으로 보내는 식으로 삶의 영역에서 몰아내는 게 당연시 돼선 안된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사회에 ‘더 파더’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늙음의 불가역(不可逆)성을 인정하면서 세대 간 ‘섞임’의 삶을 지향하는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 진정 어려운 일인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2. 2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3. 31243회 로또 복권 1등 12명…당첨금 각 25억 9252만 원씩
  4. 4비 와도 ‘부캉이’ 보러 북항 북적…추석 연휴 23만명 몰려
  5. 5[속보] 한국, 아시안게임 e스포츠 대전격투 첫 금메달
  6. 6[속보] 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에 “원칙 따라 대응”
  7. 7트럼프, 이란 ‘7일 계획’ 제안 거부…선거 후 폭격 가능성
  8. 8“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의심 신고 3년 새 46배 증가”
  9. 9[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10. 10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1. 1[속보] 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에 “원칙 따라 대응”
  2. 2“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의심 신고 3년 새 46배 증가”
  3. 3군·유엔사 ‘DMZ 지뢰 추정 폭발’ 현장 조사 절차 시작
  4. 4조희대 대법원장 '재제청 거부' 여진…여야 공방 계속
  5. 5李대통령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조속 재개해야”
  6. 6국힘, DMZ 지뢰사고 공세 지속…“증거유실 기다리나”
  7. 7[속보] 이 대통령, 유시민 겨냥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하다 독소조항 삭제 못해"
  8. 8조국 "조희대, 이 대통령 인정 안해" 장동혁 "조희대 탄핵하면 李 탄핵"
  9. 9[속보] 靑, DMZ 지뢰 사고 조사 “철저히 규명할 것”
  10. 10우크라 “북한군 포로 한국행, 韓과 직접 대화…비밀이송은 이상했을 것”
  1. 1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2. 21243회 로또 복권 1등 12명…당첨금 각 25억 9252만 원씩
  3. 3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4. 4집세 받는 미성년 집주인?…올해 20세 미만이 산 주택 115건
  5. 5세금 안 낸 '억대 유튜버' 작년만 총 17명…당국, 239억원 추징
  6. 6[차호중의 재테크 칼럼] 통화량과 물가
  7. 7다대소각장 개발 다시 원점…부산시, 부지매각 해지 결정
  8. 8HJ重 올해 8척 ‘릴레이 수주’…대형선 경쟁력 입증
  9. 9가덕신공항 부지공사 기본설계 정부심의 통과
  10. 10북항 핫플만든 인싸 상어 '부캉이', "인기 덕 좀 봅시다" 마케팅 열풍
  1. 1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2. 2비 와도 ‘부캉이’ 보러 북항 북적…추석 연휴 23만명 몰려
  3. 3[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4. 4부울경 오후까지 흐리고 비…낮 최고 22∼24도
  5. 5부하 직원 상습 성추행한 60대 임원 징역형 집유
  6. 6추석 연휴 셋째날 부산→서울 7시간…귀성길 정체 풀려
  7. 7남양주서 70대 여성 흉기 피습…50대 운전기사 체포
  8. 8부산 부암고가교서 차량 4중 충돌, 5명 부상…한때 양방향 통행 통제
  9. 9추석 연휴 셋째 날 귀경길 정체 완화…부산→서울 5시간40분
  10. 10부산 울산 경남 흐리고 밤부터 가끔 비
  1. 1[속보] 한국, 아시안게임 e스포츠 대전격투 첫 금메달
  2. 2남자 사브르, 일본에 45-44 역전승…아시안게임 단체전 4연패
  3. 3한국 남자핸드볼, 중국 꺾고 8년 만에 아시안게임 4강
  4. 4[속보] 여자농구, 일본 꺾고 12년 만에 금메달…남녀 동반 우승
  5. 5한국 야구, 중국 꺾고 결승 진출…27일 일본과 금메달 결정전
  6. 6[속보] ‘평균대 유망주’ 황서현,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금메달
  7. 7한국 여자 축구, 우즈벡에 6-3 승리로 준결승행
  8. 8류지현호, 일본에 0-5 영봉패
  9. 9이민성호, 베트남 4-0 완파하고 준결승 진출
  10. 10[속보] 한국 3대3 남자 농구,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부산 야구장 미래는
비오면 그라운드·관중석 물난리…구단 시설 보강도 한계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