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영호(신석호)는 한의사인 아버지(김영호)를 만나기 위해 한의원을 찾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환자를 진찰하고 유명한 연극배우(기주봉)인 지인의 방문을 맞느라 아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한다. 2부. 주원(박미소)은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어머니(서영화)는 딸의 숙소를 마련해주기 위해 베를린 현지에 머물고 있는 친구(김민희)를 찾아간다. 3부. 영호는 어머니(조윤희)의 부름으로 친구 정수(하성국)와 함께 동해안에 간다. 영호는 횟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연극배우를 만나 한소리를 들은 후 해변으로 나온다. 그곳에서 영호는 독일에서 돌아온 주원과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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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트로덕션’ 스틸컷. |
‘인트로덕션’(2020)의 서사는 단순하다. 영화의 세 단락은 청년이 사람을 찾아가고 소개받는 상황의 중첩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일반적인 극 영화의 기승전결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깊이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홍상수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처하는 상황의 결을 통해서 슬며시 드러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친절히 설명하기보다 도리어 일정부분을 쳐내고, 대신 상황 안에 파편적인 단서를 던져놓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의 나머지 퍼즐 조각을 짜맞추게 한다.
전날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찾아왔지만 아버지는 영호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평소 친근감이 없는 사이였음은 상황에서 유추된다. 1부에서 영호는 주원과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지만, 2부에서는 영호가 독일까지 비행기를 타고 주원과 재회하면서 관객은 둘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 알게 된다.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재회하는 3부에 이르면 주원은 영호와 헤어져 독일 현지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병을 앓은 채 귀국했음이 밝혀진다. 영화의 세 단락은 사실 동시기의 일상적 상황이 아닌, 세월의 간극을 둔 긴 인생사의 일부분이었던 셈이다.
65분 남짓한 분량이지만 ‘인트로덕션’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관객은 얼핏 연결되지 않는 듯한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면서,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서사의 여백을 머릿 속에서 상상한 대안의 서사들로 채워 넣게 된다. 제 7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에게 각본상을 안긴 것도 큰 폭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이러한 서사의 미니멀리즘 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론 보여주지 않는 것이 보여주는 것보다 강한 여운을 줄 수 있다. 홍상수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이다.
횟집에서 연극배우가 영호를 다그칠 때, 풀샷으로 고정되어 있던 영화의 프레임은 영호와 연극배우의 얼굴을 옆에서 잡는 클로즈업으로 넘어가면서 화자와 청자를 분리하고 차단시킨다. ‘인트로덕션’은 세대 간의 단절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호가 아버지와 소원하고, 사랑에 관한 연극배우의 가치관을 못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자신의 세대와 다음 세대, 영화 속 우주와 현실 사이에 벌어져가는 간극을 응시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친다. 실제와 동떨어진 대사의 톤처럼, 극 중 청년은 기성세대가 된 감독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가깝다. ‘강변호텔’(2019)에서처럼 홍상수의 영화 세계는 차츰 현실의 반영을 떠나, 자족(自足)하는 자신만의 우주로 침잠해가는 중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