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근작 ‘모가디슈’(2021)에 관한 평들을 살펴보면 공통되게 신파의 절제를 지적하곤 한다. 이 걸작은 지난 수년간 한국의 대중상업영화가 (마치 들인 자본의 크기에 반비례하듯) 얼마나 나태하고 빈곤한 창작 태도로 일관하며 관객의 지성을 폄하해왔는가에 대한 반증(反證)이다. 감독은 감정의 과잉을 강요하지 않는, 때로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담담하고 건조함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이 도리어 이야기가 남기는 감정적 여진을 더욱 묵직하고 깊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고 각본과 연출에 임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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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
한반도를 벗어난 이국땅에서 재현되는 남북 분단의 상황을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의 기본적 구도는 ‘베를린’(2013)과 연이 닿아있다. 그러나 베를린이라는 공간을 첩보 장르의 배경을 넘어서 정치적 은유로까지 연결시키지는 못했던 과거와 달리, ‘모가디슈’는 실화를 다루면서 전반부에선 남북 대사관의 외교전을 분단 상황의 대응물로 제시하고, 중반을 넘어서는 탈출과 생존이라는 현실적 목표로 대립하는 양측 진영을 한 덩어리로 묶는데 적절한 핍진성을 부여한다. 민족주의의 도덕적 당위를 벗어 던진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성숙함은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현실적 관점으로 남북 관계라는 소재에 접근했던 윤종빈의 ‘공작’(2018)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을 서사에서만 찾는 건 영화 매체가 갖는 ‘활동사진’으로서의 근본적인 매력을 간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모가디슈’를 보면서 얻은 건, 이 영화의 시각적 연출이 감독의 전작인 ‘군함도’(2018)에서 시작된 변화와 발전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는 확신이었다. 비록 ‘군함도’는 인물과 사건을 창작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역사의 실재를 비틀어버려선 안 된다는 시대극의 규칙을 위반했지만, 매 프레임 속에 흘러넘쳤던 운동하는 군중 이미지의 굉장한 활력, 재창조된 공간의 실재감은 ‘베테랑’(2015)에서 필모그래피의 결산을 이룬 이후, 연출가로서 류승완의 새로운 변모를 예감케 하는 놀라운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대사관에서 벌어지는 실내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모가디슈’에는 활동하는 군중의 집단적 운동 이미지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단지 영화의 제작 규모를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우연이나 부산물이 아니다. 낯선 이국에서 처한 인물들의 위기는 때때로 시가지 전경을 훑는 부감의 앵글,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수평과 수직을 꽉 채우며 움직이는 현지 군중 한가운데에 포위된 모습으로 일찍 전조를 드러낸다. 소말리아 내전이 본격화되고 남북 대사관 인원들이 힘을 합쳐 탈출을 결정했을 때, 구획진 골목과 겹겹이 놓인 반군의 틈새를 돌파하는 카체이싱 스펙터클의 감각적 위력과 절박한 심리는 군중 이미지를 점층적으로 축적하는 연출의 설계를 통해서 강화될 수 있었다.
‘액션 키드’를 자칭했던 시절, 류승완의 방점은 액션 영화에 대한 장르적 매혹에 찍혀있었다. 그리고 ‘모가디슈’에 이르러 류승완은 영화의 공간과 구도, 그 안에서 운동하는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지휘하며 ‘액션’ 영화가 아닌 ‘영화’의 액션을 추구하는 연출의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이건 어쩌면 ‘스팔타커스’(1960)나 ‘닥터 지바고’(1965) 등에서 보았던, 지금보다 훨씬 큰 그림을 펼칠 줄 알았던 고전기 대가의 경지에 근접한 것인지 모른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