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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을 가다

전남 신안 ‘기점&소악도’

  •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   입력 : 2021-12-01 19:21:04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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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빠진 갯벌에 돌 던져 만든 노둣길
- 대기점도~기점도~소악도~진섬 연결

- 순례길 12㎞ 곳곳 작은 예배당 12개
- 국내외 건축가·미술작가 건립 동참
- 사랑 인연 등 12사도 이름 따 지어

- 하루 두 번 만조 때 3시간 길 사라져
- 포토타임 통해 불편한 즐거움 안겨
- 병풍도 맨드라미 같은 붉은지붕 이색

푸른 동해를 품고 사는 부산 사람에게 물 빠진 갯벌은 낯설고 신비롭다. 밀물 때 차 오른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수평선은 어느 새 지평선이 된다. 섬 사람들은 여기 돌을 던져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노둣길’을 만들었다.
전남 신안 병풍도에는 10월마다 맨드라미 축제가 열린다. 신안군은 섬마다 고유색상을 지정하는 색채 경관을 실시하는데, 병풍도는 맨드라미 색인 빨간색을 지붕 색상으로 정했다. 맨드라미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다. 사진은 맨드라미 공원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전남 신안군 증도면 ‘기점&소악도’는 넓은 갯벌과 낮은 언덕·야산으로 이루어진 섬 4곳(대기점도-기점도-소악도-진섬)을 노둣길로 연결해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이름은 ‘순례자의 길’이다. 스페인 산티아고에 빗대어 ‘섬티아고’라고도 불린다. ‘섬 선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12㎞ 길 주변엔 바다와 갯벌, 야트막한 언덕뿐이라 싸목싸목 걷다 보면 어느 새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자연스럽게 순례자가 된다. 순례길 곳곳엔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세웠는데, 국내외 건축·미술작가가 참여해 종교와 상관 없이 작품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11월 늦가을, 기적의 순례길을 다녀왔다.

■12사도 집 따라… 방랑자에서 순례자로

전남 신안군 압해읍 송공 선착장에서 40분동안 배를 타고 소악도 선착장(진섬)에 도착하면 뾰죽지붕이 앙증맞은 칭찬의 집(유다 타대오)이 반긴다. 이곳에서 12㎞ 순례길을 시작한다. 갯벌과 언덕 사이 춤추듯 굽은 길을 따라가면 사랑의 집(시몬)이 나온다. 개선문처럼 앞뒤로 문이 개방된 이곳은 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집의 일부이자 작품을 완성한다.

딴섬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름처럼 작고 외딴 섬이다. 바닷물이 빠진 모래 해변을 건너가면 단단한 붉은 벽돌의 지혜의 집(가롯 유다)이 서있다.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는 지혜의 집은 마치 프랑스 ‘몽쉘미셀’ 성당을 떼놓은 듯 이국적이다. 성경을 아는 이라면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왜 12사도에 들어가냐’고 반박할 수 있다. 작가는 “유다는 배신을 했지만 이후 잘못을 뉘우치는 제자”라며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반성의 아이콘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한다. 반성의 의미로 외딴 섬에 ‘유배’ 보낸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다시 진섬으로 돌아와 유다 타대오의 집까지 거슬러오면 소악도로 연결되는 노둣길이 보인다. 순례길은 순환길이 아니라서 종종 걷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소악도에선 스탠드 글라스가 눈에 띄는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을, 소기점도에선 구슬바닥의 인연의 집(토마스), 호수 위 색유리로 지은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을 찾을 수 있다. 그 사이 노둣길 갯벌 위엔 황금빛 양파지붕의 러시아 정교회를 연상시키는 기쁨의 집(마태오)이 발길을 끈다.

이름처럼 4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대기점도에는 5개의 집이 있다. 행복의 집(필립) 생명평화의 집(요한) 그리움의 집(야고보)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건강의 집(베드로)이 제각각 건축미를 뽐낸다. 마지막 건강의 집은 대기점도 선착장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송공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배(50분)를 타면 된다. 반대로 대기점도에서 순례길을 시작해 소악도 선착장에서 나가는 방법도 있다. 순례길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걸음 속도에 따라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12㎞ 장거리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자전거투어도 가능하다. 대기점도 선착장 근처에 전기자전거 대여소를 찾을 수 있다. 이용료는 무료이다.

■불편해도 괜찮아… 렌즈 닿는 곳마다 작품

순례자의 길 콘셉트는 ‘자발적 가난, 즐거운 불편’이다. 잘 정비된 길이 아니라는 얘기다. 노둣길도 하루 두 번 만조 때면 3시간가량 완전히 사라져 주변을 산책하며 기다려야 한다. ‘바다타임’ 앱에서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소악도를 찾으면 물때를 알 수 있다. 섬을 드나드는 배는 송공선착장의 경우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3시10분까지 하루 4번 운행하고 있어 시간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계절마다 운행 시간은 바뀌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해진해운 061-279-4222)

순례길은 ‘걷는 즐거움’ 못지 않게 ‘찍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12사도의 집이 국내외 건축·미술 작가의 손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제법 추워진 날씨에도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집을 들를 때마다 인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녀와 가족여행을 왔다는 김미선(43) 씨는 “12㎞가 짧은 거리는 아니라서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사진 찍는 재미에 나보다 더 즐거워하고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건강의 집은 흰 벽과 파란 지붕이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고, 기쁨의 집은 긴 계단과 러시아 정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미로 ‘사진 맛집’이다. 앞뒤로 문이 개방된 형태의 사랑의 집에는 벤치가 있는데, 문 너머 보이는 바다와 함께 찍으면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색다른 프레임을 찾는다면 내부 예배당에 들어가 창문에 카메라를 대고 촬영하길 추천한다. 작가들이 예배당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고려해 창문을 냈다고 한다.

대기점도와 노둣길로 연결된 병풍도 방문도 강추한다. 이곳에선 10월마다 맨드라미 축제가 열리는데 여기서 착안해 지붕을 모두 빨간색으로 ‘깔맞춤’ 해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 국내 최장 목포해상케이블카, 다도해 금빛 낙조·야경 한눈에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전남 신안 순례자의 길을 다녀오는 건 무리다. 이동시간만 왕복 9~10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여유있게 1박2일 이상을 잡는 게 좋다. 기점&소악도 민박에 머물면서 순례자의 길과 섬을 찬찬히 둘러보거나 선착장에서 30~40분 거리에 있는 목포를 둘러보길 추천한다.

목포에선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과 국내 최장거리라는 목포해상케이블카(사진)가 가볼만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한의 화해·협력관계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 전 대통령이 유년시절부터 정계 입문하기까지 활동한 곳이 이곳이라 목포 삼학도에 기념관을 건립하게 됐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린 김 전 대통령의 생애를 볼 수 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유달산과 고하도를 잇는 국내 최장(3.23㎞) 국내 최고(155m) 해상케이블카이다. 대체로 북항 스테이션에서 출발해 유달산, 고하도 스테이션으로 이동한다. 북항~유달산은 도심을, 유달산~고하도는 바다 위를 지나간다. 각 스테이션마다 먹거리 볼거리 걷기 길도 잘 조성돼 있어 반나절 이상 즐길 수 있다. 다도해의 금빛 낙조와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에 타는 것을 추천한다.

1 건강의 집_베드로(작가 김윤환)-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둥글고 푸른 지붕의 이미지. 흰 회벽으로 거칠게 마감. 수채화가 그려진 내부가 단정하다. 순례길의 시작점을 알리는 작은 종이 있다.

2 생각하는 집_안드레아(작가 이원석)- 노둣길을 배경으로 마을 앞동산에 위치. 해와 달의 공간으로 나뉜 실내의 독특한 디자인이 아름답다.

3 그리움의 집_야고보(작가 김 강)- 논길을 따라 걷다보면 숲 입구에 보인다. 심플한 디자인에 붉은 기와, 나무기둥을 양쪽에 세워 안정감이 돋보임.
4 생명평화의 집_요한(작가 박영균)- 단정한 원형의 외곽, 긴 바람창이 외부와 소통한다. 천정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의 밝기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움.
5 행복의 집_빌립(작가 장미셀 후비오 등 3인)- 프랑스 남부의 건축형태를 띰. 적벽돌과 갯돌 적삼목 동판을 덧댄유려한 지붕 곡선과 꼭대기의 물고기 모형이 독특함.(왼쪽부터)

6 감사의 집_바르톨로메오(작가 장미셀·얄룩)- 호수 위의 교회로, 물 위에 꽃 송이처럼 떠 있다. 색유리와 스틸의 앙상블로 물에 비치는 모습이 압권.

7 인연의 집_토마스(작가 김강)- 단정한 사각형의 흰색 작품. 뒷모양이 아름답고, 별들이 내려와 박힌 듯 구슬 바닥과 푸른색 문이 인상적.(왼쪽)
8 기쁨의 집_마태오(작가 김윤환)- 노둣길 갯벌 위에 세운 건축미술 작품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연상시킨 다. 황금빛 양파지붕이 독특하다.

9 소원의 집_작은 야고보(작가 장미셀·파코)- 프로방스풍의 아름다운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작품, 고목재를 사용한 동양의 곡선과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화로움.

10 칭찬의 집_유다(작가 손민아)- 뾰죽지붕의 부드러운 곡선과 작고 푸른 창문이 앙증맞고 외부의 오리엔탈 타일이 잘 어우러진 작품.


11 사랑의 집_시몬(작가 강영민)- 자연을 안으로 받아들인 시원한 작품. 두터운 흰벽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커다란 조가비 문양의 부조가 솔숲 해변과 어우러져 아름답다.(왼쪽)
12 지혜의 집_가롯 유다(작가 손민아)- 모래 해변을 건너가는 작은 섬에 있다. ‘몽쉘미셀’의 성당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미술 작품으로 붉은 벽돌의 요철, 첨탑이 매력적이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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