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지옥’ 사회적 성찰엔 이르지 못 하는 K-콘텐츠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12-01 19:26:20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과거 필모그래피 면면을 돌이켜봤다. 데뷔작 ‘돼지의 왕’(2011)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에 대한 염세적인 재해석이다. 극단적인 상황과 캐릭터로 점철된 영화를 보는 일은 괴로웠으나 거기에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심화된 학교 폭력의 계급화와 그것이 한국 사회의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로까지 전이된 현실의 심연을 해부하는 심도가 있었다. ‘사이비’(2013)부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실에 있을 법한 공간과 현상을 그리지만, 의도된 폭력의 불편함과 과장된 공포 효과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본 듯한 착각을 빚어낸 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좀비 재난을 그린 ‘부산행’(2016)의 프리퀄 ‘서울역’(2016)으로 가면 이러한 흐름은 완연해진다. 이 영화는 노숙자 사회라는 현실의 배경을, 좀비 재앙으로 붕괴를 맞은 사회상이란 상상적 공포의 무대로 삼고는, 끊임없이 출구 없는 상황의 암담함을 전시하고 나열하길 거듭한다. 이쯤에서 나는 연상호식 스토리 작법의 공식을 알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옥’(2021)에서도 연상호는 한국사회의 시사적 이슈를 작중의 배경으로 끌어들이고, 공포스러운 현실의 선혈 낭자한 단면을 붙잡아 관객의 목전에 들이민다. 선역과 악역의 대립, 구원의 서사에 대한 기대는 일절 허락하지 않고, 극단적인 파국을 향해 달리는 스토리텔링은 통속의 규칙을 위배하고 관객의 심리적 긴장과 도덕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결기 내지 집요한 독기로 비쳐질 법하다. 이러한 ‘위악의 포즈’로 인해 일종의 환상이 만들어진다. 현실의 비참한 실상을 목도한 리얼리즘이라는 착시, 그리고 이것이 작가주의적 문제의식을 담은 결과물로 받아들여지는 착각.

분명 연상호는 한국 사회의 다양하고 어두운 면면들을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왔다. 하지만 현실의 일각을 끌어들여 극악한 캐릭터들이 활개 칠 수 있는 스릴러 또는 신파의 장르적 무대로 삼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는 시선의 깊이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근작에서 연상호의 인물들은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하기 위한 장르 스릴러의 도구로는 충실히 기능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당위로 깐 염세와 혐오의 포즈가 만화적인 톤으로 표현되고 장르적으로 소비될 뿐, ‘살인의 추억’(2003)과 ‘기생충’(2019)에서 봉준호가 보여주었던, 디스토피아가 되어가는 세상의 구조를 드러내보이고 원인과 전망을 진단하는 사회학적 성찰에는 이르지 못한 채 침묵한다. ‘염력’(2018)의 기업인 홍상무나 ‘반도’(2020)에서 631부대를 이끄는 서 대위처럼 작중의 세계상을 함축할 수 있는 중요한 배역이 피상적인 스테레오 악역으로 소모된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염세적이고 사회적인 걸 다루고, 뭔가 인간의 극악함과 현실의 비참을 조명한다는 식의 ‘위악의 포즈’를 취하면 고평가를 받는 기류가 조성되었다. 사회상의 한 조각을 장르 서사의 배경이자 소재로 변형하면, 관객은 피해자 서사를 투사하고 호응하는 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소비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회적 상상력의 실종과 부재, 그리고 전망 없음이 대중오락을 성립시키는 전제 조건이 된다는 건, ‘K-콘텐츠’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성과로 자축하는 걸로 덮기엔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2. 2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3. 3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4. 4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5. 5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6. 6‘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7. 7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8. 8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9. 9부산으로 이주하고, 먼 여행 떠나고…두 여자 그림이 달라졌다
  10. 10“한국 핵 잠수함·전작권 전환, 美 민주 승리로 제약 커질 듯”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3. 3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4. 4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5. 5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6. 6[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7. 7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8. 8'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9. 9곽규택 “산은, 대한항공이 통합 LCC 부산 설립 거부시 호반지원해야”
  10. 10양당 모두 400억 토해낼 위기..선거법 개정 화두로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4. 4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5. 5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6. 6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7. 7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8. 8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9. 9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10. 10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1. 1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2. 2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3. 3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7. 7[속보]혼자걷던 여성 5차례나 범죄대상 물색, 성폭행 혐의 30대 男 징역 4년 선고
  8. 8문 전 대통령 거제생가 복원, 진통 끝 시의회 통과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6일
  10. 10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