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과거 필모그래피 면면을 돌이켜봤다. 데뷔작 ‘돼지의 왕’(2011)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에 대한 염세적인 재해석이다. 극단적인 상황과 캐릭터로 점철된 영화를 보는 일은 괴로웠으나 거기에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심화된 학교 폭력의 계급화와 그것이 한국 사회의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로까지 전이된 현실의 심연을 해부하는 심도가 있었다. ‘사이비’(2013)부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실에 있을 법한 공간과 현상을 그리지만, 의도된 폭력의 불편함과 과장된 공포 효과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본 듯한 착각을 빚어낸 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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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
좀비 재난을 그린 ‘부산행’(2016)의 프리퀄 ‘서울역’(2016)으로 가면 이러한 흐름은 완연해진다. 이 영화는 노숙자 사회라는 현실의 배경을, 좀비 재앙으로 붕괴를 맞은 사회상이란 상상적 공포의 무대로 삼고는, 끊임없이 출구 없는 상황의 암담함을 전시하고 나열하길 거듭한다. 이쯤에서 나는 연상호식 스토리 작법의 공식을 알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옥’(2021)에서도 연상호는 한국사회의 시사적 이슈를 작중의 배경으로 끌어들이고, 공포스러운 현실의 선혈 낭자한 단면을 붙잡아 관객의 목전에 들이민다. 선역과 악역의 대립, 구원의 서사에 대한 기대는 일절 허락하지 않고, 극단적인 파국을 향해 달리는 스토리텔링은 통속의 규칙을 위배하고 관객의 심리적 긴장과 도덕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결기 내지 집요한 독기로 비쳐질 법하다. 이러한 ‘위악의 포즈’로 인해 일종의 환상이 만들어진다. 현실의 비참한 실상을 목도한 리얼리즘이라는 착시, 그리고 이것이 작가주의적 문제의식을 담은 결과물로 받아들여지는 착각.
분명 연상호는 한국 사회의 다양하고 어두운 면면들을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왔다. 하지만 현실의 일각을 끌어들여 극악한 캐릭터들이 활개 칠 수 있는 스릴러 또는 신파의 장르적 무대로 삼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는 시선의 깊이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근작에서 연상호의 인물들은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하기 위한 장르 스릴러의 도구로는 충실히 기능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당위로 깐 염세와 혐오의 포즈가 만화적인 톤으로 표현되고 장르적으로 소비될 뿐, ‘살인의 추억’(2003)과 ‘기생충’(2019)에서 봉준호가 보여주었던, 디스토피아가 되어가는 세상의 구조를 드러내보이고 원인과 전망을 진단하는 사회학적 성찰에는 이르지 못한 채 침묵한다. ‘염력’(2018)의 기업인 홍상무나 ‘반도’(2020)에서 631부대를 이끄는 서 대위처럼 작중의 세계상을 함축할 수 있는 중요한 배역이 피상적인 스테레오 악역으로 소모된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염세적이고 사회적인 걸 다루고, 뭔가 인간의 극악함과 현실의 비참을 조명한다는 식의 ‘위악의 포즈’를 취하면 고평가를 받는 기류가 조성되었다. 사회상의 한 조각을 장르 서사의 배경이자 소재로 변형하면, 관객은 피해자 서사를 투사하고 호응하는 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소비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회적 상상력의 실종과 부재, 그리고 전망 없음이 대중오락을 성립시키는 전제 조건이 된다는 건, ‘K-콘텐츠’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성과로 자축하는 걸로 덮기엔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