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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극장부터 ‘친구’ 속 거리까지…부산영화史 120년 시간여행

부산 삶 그리고 사람들- 영화도시 당일치기 답사 여정

  •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
  •  |   입력 : 2022-01-26 19:22:04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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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석으로 기억되는 최초 극장 ‘행좌’
- 부산데파트엔 ‘도둑들’의 발자취 남아
- ‘아저씨’ 촬영지 매축지마을은 사라져
- 거대한 영화 제작소 역할을 하는 부산
- 문화 자산 이용해 도시재생 고민해야

부산은 언제부터 ‘영화도시’가 됐을까. 120년을 거슬러 역사의 기원을 찾아 나섰다. 그곳에는 수많은 영화가 명멸하며 세월의 더께가 쌓였다. 최근에는 한해 140편에 달하는 영화·영상물이 부산에서 촬영될 정도로 부산 전체가 하나의 영화 제작소이자 명소로 탈바꿈했다. 영화의 기억이 서린 장소를 차례로 소개한다. ‘친구’ ‘아저씨’ ‘도둑들’ ‘나쁜놈들’이 누빈 부산 영화의 거리와 골목, 계단을 따라 걸었다.

■부산 첫 극장부터 韓 최초 제작사까지

중구 남포동에는 1903년 문을 연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幸座)’가 있었다. 남포역 7번 출구로 나와 400m쯤 올라가면 광복로 삼거리 한 켠에 2009년 부산시에서 세운 행좌의 표지석이 나온다. 실제 위치는 표지석이 바라보는 골목 안쪽의 ‘할매집회국수’ 부지. 식당 앞 바닥에 동판 표지를 박아놓았다. 일본인이 만든 이 극장은 1915년 활동사진 상설관인 ‘행관’으로 증축되는데, 오늘날 영화관의 효시다.

이곳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1925년 국내 최초의 영화 제작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동광동)도 만들어진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를 향해가는 길엔 40계단(중앙동)을 지나가게 된다. 어디선가 비지스(Bee Gees)의 ‘할리데이(Holiday)’가 들리는 것 같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명장면도 오버랩된다. 빗속에서 장두식(송영창 분)을 죽인 장성민(안성기 분)이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부산 영화촬영지 답사기’를 쓴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문관규 교수는 “40계단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와 영화인의 숙소였던 영남회관이 자리한 동광동, 영주동의 윗동네와 피란 온 문인들이 다방에서 시대의 우울을 읊조리던 광복동, 중앙동을 연결해주는 통로였다”고 본다.

복병산 자락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영화 관련 벽화와 함께 ‘조선키네마’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한적한 주택가 한 주차장 담벼락이다. 바닥에 ‘조선키네마주식회사’ 동판 표지가 있다. 바로 그 옆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주민은 주차장과 철물점 사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골목 끝의 파란 집을 가리키며 “저 파란 집이 원래 자리인데, 지금은 개인 주택”이라고 했다.

근대 영화인이 된 것처럼 퇴근하는 마음으로 영남여관을 찾아 걸었다. 10여 분쯤 걸었을 때 네이버 지도상 영남여관의 번지수(영주동 619번지)에 도착했다. 흔한 빌라촌이 있을 뿐, 영화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문 교수는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 영남여관에 이르는 길은 나운규와 초창기 영화인들이 출퇴근하며 꿈을 키웠던 곳이다. 춘사의 길, 나운규 길로 명명해 상징적으로 스토리텔링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도둑들’과 ‘나쁜놈들’의 거리

중앙동엔 ‘도둑들’(2012)이 누볐던 부산데파트가 있다. 부산 최초의 백화점 형태 상가주택 복합형 시장이다. 데파트는 백화점(Department Store)의 일본식 표현. 건물 인근에 ‘도둑들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고 건물 후문엔 촬영 당시 사진도 걸려있다. 주변 도로나 건물 내부는 다소 낡은 모습 그대로다. 데파트 관계자는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어 특별한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동엔 ‘나쁜놈들’도 있었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가 촬영된 중앙동 4가 거리를 일요일 오후 찾았다. 거의 모든 가게들은 영업하지 않고 인적도 드물어 텅 빈 느낌이다. 당시 로케이션 지원을 담당했던 부산영상위 이승의 경영지원팀장은 “사무실 밀집 지역이라 사람이 없는 주말에 촬영했다. 감독님이 이 장소가 마음에 드셨는지 포스터 촬영도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시대와 맞지 않는 간판은 일일이 미술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대로인 간판도 있으니 영화 속 간판과 실제 간판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친구’와 달리는 구름다리

범일역 7번 출구로 나와 현대백화점 부산점 뒷길로 걸어가면 범일동 구름다리 육교가 나온다. 계단 앞에 서자 20년만에 만난 얼굴들이 반갑다. “친구 아이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2001)’에서 고교 시절 네 친구가 웃으며 달렸던 곳이다. 가장 빛나던 시절 네 친구의 모습이 칸칸이 그려져 있어 계단 아래서 보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계단 한 칸에 그려진 명찰에 ‘이준석’이란 이름이 있다. 극 중 유오성의 이름이 이준석이었다는 게 새삼스러울 만큼 세월이 흘렀다. 이 길은 동구청이 호랭이 이바구길로 조성한 ‘친구의 거리’. 동구에서 찍은 다른 영화들을 알고 싶다면 육교를 건너 범일골목시장 입구로 가보자. ‘영화 이야기 담장’에 동구에서 찍은 영화의 장면과 위치도를 볼 수 있다. 영화 여행을 더 이어가고 싶다면 골목시장을 지나 15분쯤 올라가면 ‘극장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옛날 극장의 모습과 간단한 설명을 해놓은 자료들이 있다.

■‘아저씨’, 아파트숲 속으로

‘극장 이야기’를 보고도 아직 걸을 힘이 남았다. 가구거리 등을 구경하며 20분쯤 걸려 좌천역에 도착했다. 좌천역 4번 출구에서 굴다리를 지나면 좌천동 구름다리 육교를 만날 수 있다. 육교 계단엔 아마도 가장 잘생긴 아저씨 중 한 명이 분명한 원빈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영화 ‘아저씨(2010)’의 포스터다. 동구에서 찍은 ‘마더’ 등 다른 영화의 포스터도 층층이 그려놨다. 육교 위엔 영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빛바랜 원빈의 얼굴 뒤로 고층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아저씨’의 촬영지였던 매축지마을이다. 육교 아래서 만난 주민은 “경상도 말로 ‘똥굴마을’이었는데 이제 저렇게 됐다”며 아파트 공사현장을 가리켰다. 영원히 사라진 영화 촬영지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웹드라마 ‘좋좋소’의 IP를 OTT 플랫폼 ‘왓챠’에 팔면서 부산 제작사의 성공 모델을 만든 디테일 스튜디오의 이태동 대표는 “촬영지 로케이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일반적인 장소라는 뜻 외에 세월이라는 시간이 공간에 남아있다는 걸 말한다. 영도구 중구 서구 등에 부산의 옛 모습이 남아있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부산이 시대를, 시간을 담고 있는 곳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촬영지로서 큰 장점이다. 도시재생이 부산이 가진 장점을 살리면서 진행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삶 그리고 사람들] 이미지 크게 보기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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