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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면 ‘약자의 설움’ 치열한 기록…그의 판결은 분노와 눈물이다

부산, 삶 그리고 사람들-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판사

  •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
  •  |   입력 : 2022-05-18 19:17:39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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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간 변호사 생활 뒤 2006년 판사로
- 극단 시도 청년에 밥값 20만 원 건네고
- 산재 피해 현장 직접 찾아 실태 살펴봐
- 진정 어린 고민·성찰로 양형 이유 작성

“판사생활을 돌이켜보니 법원은 슬프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온 세상이 울고 있었다.”

-책 ‘어떤 양형 이유’ 중에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박주영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 서 있다. 여주연 기자 yeon@kookje.co.kr
판사는 동반자살에 실패해 자살방조미수 피고인이 된 두 청년에게 선고 뒤 “저희에게 선처를 호소했듯, 이젠 스스로 선처하고 아끼십시오. 잘 살아주십시오. 부디”라며 ‘피고인들께 드리는 당부’를 낭독한다. 자살도구를 마련하느라 휴대전화까지 처분한 스물아홉 청년에게는 차비하고 밥 사 먹고 조카 선물이라도 사가라고 20만 원을 끼워둔 책을 건넨다.

선박건조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연달아 숨진 사건을 다룰 때는 볕 좋은 어느 봄날 한 노동자가 잔인하게 마주쳤을 죽음의 공포를, 기록만 보고 상상해 판결문을 쓰고 싶지 않았다며 현장 검증에 나선다. 그리곤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하는 시대에 ‘삶이 있는 저녁’을 걱정하는 노동자와 가족이 존재하는 현실이 서글프기 그지없다며 ‘위험의 외주화’를 꼬집는 판결문을 써내려간다.

가출청소년 성매매 강요 사건을 다룰 때는 10대의 심리부터 파악하기 위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청소년 성매매 등을 연구한 논문을 공부하며 판결문을 쓴다. 두 박스 가득 담긴 소년재판 메모는 아이들의 비행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악행을 잊지 않기 위해서 10년째 버리지 못하고 인사철마다 짊어지고 다닌다. 아동학대사망 사건을 선고할 때는 반드시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꼭 부른다. 그 이름이 아동학대로,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사연이 명멸하는 법정에서 판사는 스스로를 판단자인 동시에 관찰하고 기록하는 자라고 명명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본 세상의 일부가 사라진다고 믿는 판사는 기록만이 고통과 절망의 시공을 건너가는 단하나의 길이라고 믿는다. 판결문 양형 이유에 마지막 물기 한 방울까지 짜내고 짜낸 메마른 문장 대신 은유와 상징, 시구에 눈물과 분노를 욱여넣는다. 산재사고의 비정한 실태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비참함, 성범죄의 잔혹함을 어떻게든 알리겠다며.

박주영 판사가 펴낸 두 권의 책.
판사는 판결문 이면의, 법정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묶어 두 권의 책을 냈다. ‘어떤 양형 이유’(2019)와 ‘법정의 얼굴들’(2021)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무표정하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판사가, 사실은 우리와 같이 눈물 흘리고 분노하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데 얼마간 안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판사가 부산에 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박주영(54) 부장판사다.

대구 영신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박 판사는 사법연수원 28기로, 1999년부터 7년간 부산 울산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6년 경력법관제도를 통해 부산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 울산 등지에서 주로 형사재판을 담당했다.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재판을 맡기도 했고 공보기획판사도 세 차례 역임했다.

2020년 법원의 날에는 대법원장 표창도 받았다. 대법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진정어린 고민과 치열한 성찰로 써내려간 양형이유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재판을 구현함으로써 법원과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증진에 이바지했다”고 표창 이유를 밝혔다.
# “내 감정 담아낸 양형이유 논란 있지만, 사회 문제 지적해야 미래 피해자 막아”

- “법원과 시민 간 오해 푸는 판사 되고파”

■“단 한 사람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면”

-현직 판사로 자신의 생각, 감정 등을 노출하는데 두려움은 없었나.

▶법조인은 사회적 난제에 직면해서 직접 취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검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모두 구체적으로 이미 벌어진 사건을 놓고 사후에 따지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건을 사후에 처리하는 것에만 몰두한다면 우린 정말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기왕에 벌어진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개입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기록과 공적 언명이 중요하다. 욕을 먹으면서도 양형의 이유를 길게 자극적으로 쓰고, 그것도 모자라 책까지 쓴 결정적 이유다.

재판을 마치거나 판결문을 다 쓴 뒤 야근을 하며 주로 사무실에서 글을 쓰는 박주영 판사. 여주연 기자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의 해결은 대부분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문제가 한 인간을 압박하는 상황은 다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누군가의 조력이 없으면 그 사람은 추락하고 만다. 쓸쓸히 홀로 심연으로 가라앉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고, 안타까웠다. 그들을 건져 올리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관심과 주목은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부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판사로서 이러한 태도가 맞는지 비판도 있고 저 역시 여전히 의문이지만, 저에 대한 비난을 떠나 단 한 사람의 추락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심정에서, 특별한 사건들을 선택해 주의를 환기할 의도에서 강하고, 감상적으로 썼다.

-2014년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건 재판에서 현장검증에 나섰다. 판사가 현장에 가는 건 드물다던데.

▶울산에는 검찰에 산재전담부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표가 산재사건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시 울산지검이 전, 현직 대표이사를 함께 기소해서 이 사건은 기소 당시부터 상당히 주목을 끌었다. 사안이 심각했음에도 재판을 거듭해도 잘 모르겠더라. 이런 대기업의 작업현장에서 왜 이렇게 사람들이 쉽게 죽어 나갈까 황당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현장을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화재가 났던 건조 중인 선박을 검증하는데 굉장히 좁고 컴컴하고 미로같은 통로를 안전모를 쓰고 기다시피 다녔다. 용접봉과 가스줄이 널려있고 용접불꽃이 여기저기서 튀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현실은 별반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계기로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011년 8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소년부 판사로 1500건 정도 소년 사건을 맡았다. 부산에 남자 6호 시설(6호 처분을 받은 소년범을 6개월간 격리시키는 민간 시설)이 없어 지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것은 아쉽다고 했는데.

10여 년 전 소년재판 당시 작성한 메모를 버리지 못하고 박스에 담아 인사철마다 갖고 다닌다. 여주연 기자
▶소년부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다. 특히 아이들의 변화를 보는 일은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가출해서 도망 다니는 아이들을 쉼터로 보냈는데, 한두 달 뒤에 가보면 외모도 태도도 영 다른 아이가 되어 있어 놀란 적이 많았다. 6호 시설 문제는 심각하다. 부산 남자아이들도 모두 대전으로 가는데 자리가 부족해 마음대로 보낼 수도 없다.

-수많은 사건과 인물에 천착해야 하는 재판이 일상인데, 어떻게 버티는지.

▶일과 생활을 분리해서 균형 있게 사는 게 제일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 일이라는 점도 굉장히 힘들다. 24시간 내내 사건이 떠나지 않더라. 대부분 시간을 법원에서 보내지만 잠깐 집에 가서도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처음에는 일에 몰입하고 당사자에게 120%를 쏟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몸에 크게 문제가 왔다. (박 판사는 재작년 연말 쓰러져서 지난해 휴직하고 지난해 10월 복직했는데 구체적인 병명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일반적인 직업처럼 칼퇴근하거나 일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다만 이제 일하는 동안 전력하되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최대한 업무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바쁜 가운데 글을 쓰는 비결은. 책, 영화, 음악 등도 풍부하게 인용하던데.

▶루틴으로 만들어 기계적으로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밤 9~10시 퇴근하면 러닝머신을 1시간 타면서 음성지원으로 이 북(e-book)을 듣는다. 평소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그때그때 대사나 인용문구, 그리고 생각나는 단상도 메모해 둔다. 즉시 하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많아서, 꼭 연필이나 핸드폰을 옆에 둔다. 장시간 운전하며 출퇴근할 때는 음성메모도 많이 했다. 재판 끝나고 그 자리에서 메모를 남기기도 한다.

-양형이유와 책의 문장이 문학적이다.

▶내성적 성격이고 선친이 책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책은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 문예부 활동을 하고 백일장 등에서 상을 받으며 우쭐해서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고2 겨울 무렵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대학도 가기 힘들겠더라. 서클 활동을 깨끗이 접고 입시준비만 했다. 집안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장학금을 많이 주는 학교로 골라 법학과로 지원했다. 치기 어리지만, 사법시험으로 제 능력만 보여주고 사법연수원에서 자퇴하고 글 쓰는 일을 하며 살려 했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글을 거의 안 썼다. 가보고 싶었는데 못갔던 길이란 생각에 20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2008년경 시인이기도 한 고종주 전 판사를 형사합의부 부장으로 모시면서 다시 책도 보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감하고 글 쓰는 판사로”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꼽는다면.

▶‘법정의 얼굴들’에 실었던 제게 편지(‘수많은 죄인 중에 저를 믿어주시며 저는 단약할 수 있다는 재판장님의 그 말이 저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했다’는 내용)를 보낸 마약사건 피고인과 동반자살미수 사건. 제가 돈을 줬던 피고인의 동생이 유튜브(박 판사와 관련 기사를 담은 언론사 유튜브 콘텐츠) 댓글로 잘 지낸다는 안부와 감사인사를 남겨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좋은 판사에 대한 생각은.

▶판사는 판단하는 사람이다. 판단이 가장 어려운 지점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 상반된 주장 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판단은 신의 영역에 가까운데 중요한 건 절대 편견 선입견 치우침 없이 듣는 것이다. 함부로 속단하거나 객관적인 증거 없이 판단하지 않는 것. 판사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반인이 잘못된 판단으로 빠지지 않고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모델로 확장할 수도 있다. 상반된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고 깨끗한 백지 상태에서 판단하는 것. 법정에서 선고할 때까지, 마지막까지 고민한다. 내 판단에 예단이 없을까, 잘못된 것은 아닐까, 놓치는 게 없을까 끊임없이 묻는다. 계속 자기를 의심하고 치우치지 않는 것, 그 자세가 없으면 옷 벗어야 한다.

-책에 자신을 ‘향판’ ‘승무판(승진과 무관한 판사)’이라고 했다. 어떤 판사로 기억되고 싶나.

▶우리나라 판사 중에 판결 쓰는 능력, 재판 처리 속도 등 여러 기준을 합해 랭킹을 매기면 저는 ‘중하(中下)’다. 그러나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할을 깨달았다. 공감하고 글로 쓰는 것이다. 법원과 국민의 중간에서 틈을 메워주고 오해를 풀어주는 판사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책을 내고 ‘법원이 이런 일을 하는 줄 몰랐다’ ‘판사도 감정이 있네’라는 반응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시민과 법원 간 괴리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결의 맥락을 제대로 전달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키자는 목적으로 책을 썼기에 ‘이제 판결 기사 한 줄 보고 함부로 이야기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구체적인 당사자에게 폐가 될 수도 있고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몰입하는 게 힘들기도 했다. 앞으로는 한국의 법 재판제도 형사제도 절차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책을 쓰면 어떨까 한다. 판사로서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직에 있는 동안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선례로서의 가치 있는 판결이나 법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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