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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애프터 양(2021)’…존재의 ‘없음’이 비로소 그 ‘있음’을 상기시킨다

  • 조재휘 영화 평론가
  •  |   입력 : 2022-06-22 19:21:5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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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없는 유(有)는 없어요.“
영화 ‘애프터 양’ 스틸컷.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망치의 비유를 든 바 있다. 망치는 도구로서 유용하지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동안은 의식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도구의 존재를 절실히 의식하는 건 자루가 빠지고 망가져 불편을 겪게 될 때의 일이다.

인간 관계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만나고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의 존재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는 건 가족이나 친구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지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등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이다. 그동안의 당연함이 낯섦으로 뒤바뀌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존재가치를 숙고하게 된다.

드라마 ‘파친코’(2022)를 연출한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2021)은 이러한 존재론적 사유에 관한 영화이다. 백인과 흑인 커플인 제이크와 카이라는 중국계 아이 미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부부는 자라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미카를 위해 중국 문화를 가르쳐주고 양육을 도울 안드로이드 양을 마련한다. 단란하던 이들의 일상은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 변화를 맞는다.

‘콜럼버스’(2017)에 이어 감독의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매혹, 정교하고 세심한 프레이밍 감각은 일관되게 관철된다. 촬영 스타일은 마치 ‘2046’(2004)의 크리스토퍼 도일이 참여해 오즈 야스지로의 방식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건물 밖에서 거리를 두고 안의 인물을 바라본다. 인물을 중앙에 놓은 채 좌우에 남겨진 여백을 강조하고, 때때로 중앙이나 그로부터 살짝 비켜나간 위치에 열린 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텅 빈 방을 걸치고 들여다보는 이러한 방식은 양의 부재로 가족이 느끼는 상실감과 공허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양의 기억을 탐색하는 제이크처럼, 관객 역시 극 중 인물을 엿보는 위치에 놓는 효과를 낳는다.

양의 기억은 그가 봉사해왔던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고장 나지 않는 한 시간을 초월하는 인조인간의 두뇌에 인간사의 다양한 면면이 선명히 각인된다. 이미지로 아로새겨진 시간의 비밀을 풀어헤치는 이 모티브는 영화 매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며, 물 한 방울에 온 세상을 비추어보듯 가족의 서사에 인간사의 보편을 함축해내는 시선의 깊이를 작품에 부여한다.

원상복구가 어려움을 받아들인 미카의 가족은 양을 떠나보낸다. 장례식은 없지만 이들은 양의 기능정지를 한 인간의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바이센테니얼 맨’(1999)의 앤드류처럼 인간으로 태어나진 않았어도, 양은 기계가 아닌 인간, 노예가 아닌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종(種)의 구분을 뛰어넘는 혼종적인 관계는 양이 서로 다른 식물의 접붙이를 보여주면서 서로 다른 것들끼리도 공존과 교감이 가능함을 가르쳐주려 했던 데서 암시되었던 것이다.

때로는 ‘없음’이 바로 그 존재의 ‘있음’을 상기시킨다. 비록 양은 사라졌지만 미카와 가족은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을 되새기고, 양의 ‘존재’를 간직한 채 남은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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