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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군함도 감독판' 길이가 아닌 완성도 높은 감독판을 허하라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9-14 18:49:0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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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군함도’(2017) 블루레이의 발매를 기념해 감독판을 상영하는 자리가 있었다. 5년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공개했을 때 볼 기회를 놓쳤던 터라 감독판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한 편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품고 자리에 앉았다.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군함도’는 괄목할만한 영화였다. 재창조한 역사의 공간에 실재감을 부여하고, 대규모 군중 신의 집단적 움직임을 통해 한국영화에 유례 없는 운동 이미지의 활력을 펼쳐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류승완이 훨씬 큰 그림을 다루는 연출가가 되었다는 발전상을 드러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 스틸컷. CJ ENM 제공
그럼에도 132분의 극장판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영화의 결말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대규모 탈출 시퀀스는 조선인 징용 피해자들의 울분이 임계점까지 차올라 폭발하는 감정의 클라이맥스여야 했지만, 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개별 인물들의 서사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고 보았다. 감독판의 151분이 지나고 극장에 불이 들어오면서 나는 ‘군함도’를 좋아하기로 했다. 적어도 극장판으로는 다신 이 영화를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주인공 부녀에 중점을 두고 쳐냈던 주변 인물들의 분량이 복원되어 군상극의 성격이 살아나고, 달라진 연출과 편집의 정밀한 면면이 드러나서야 비로소 영화에 설득될 수 있었던 것이다.

러닝타임은 가능한 한 두 시간 내에 끊어야 한다는 건 상업영화의 철칙이다. 여기에는 영화의 길이가 짧을수록 제한된 시간 안에 상영 회차를 늘릴 수 있고 그만큼 이윤을 늘릴 수 있다는 단순한 계산이 깔려있다. 때문에 인물의 동기와 감정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과정의 묘사, 연출의 기교가 불필요한 잉여인 마냥 생략되고, 단지 내용의 전모를 전달하는 기능만 간신히 해내는 선으로 편집에서 가위질을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선 다르다. 적절한 예비서사가 안배되지 않은 채, 망가진 시계태엽 장치처럼 삐걱거리는 이야기의 흐름에 억지로 집중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이다.

감독은 원래의 비전을 희생당한 영화를 내놓지만, 정작 의도했던 흥행은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한국영화에 잦다. 이러한 타협과 상처의 불우한 흔적은 사후 발매된 DVD나 Blu-ray에 부록으로 수록된 삭제 장면으로 발견되곤 한다. 급작스러운 후반부의 구멍을 보완할 수 있었던 임필성의 ‘마담 뺑덕’(2014), 근미래의 우울한 분위기를 살렸을 이미지와 설정의 디테일을 대거 생략해야 했던 김지운의 ‘인랑’(2018)은 제대로 마무리된 감독판의 존재를 상상케 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중반까지와는 달리 과정의 신들을 여럿 잘라낸 듯한 후반부를 가진 한재림의 ‘비상선언’(2022) 역시 어딘가 감독판이 따로 있으리란 짐작을 하게 된다.

만약 상업적 판단에 앞서 작품의 품위를, 감독의 통제권과 재량을 우선하여 두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면 실패로 묻힌 한국영화 근작들의 운명은 사뭇 달랐으리라고, 적어도 나은 평가를 받았으리라 생각해보는 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길이가 아니라 완성도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감독의 원래 의도가 오롯이 담긴 판본의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외치고 싶다. “감독판을 허(許)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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