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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인생 27년 만에 ‘나쁜 놈’ 변신…“이런 쾌감 처음이야”

영화 ‘자백’의 소지섭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2-11-02 19:36:1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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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作 ‘인비저블…’ 리메이크
- 정형화된 연기 지쳐 스릴러 도전
- 밀실살인 용의자 사업가役 맡아
- 자신의 무죄 밝히려는 과정 그려

- 잔혹장면 촬영 많아 툭하면 악몽
- 결혼하면 안정된다는 말 공감

소지섭은 데뷔 이후 27년간 ‘정의로운 이미지’를 구축해온 배우다. 주먹을 휘둘러도 정의의 주먹처럼 보였고, 누군가에게 화를 내도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개봉한 범죄 스릴러 영화 ‘자백’에서 소위 ‘나쁜 놈’으로 변신했다.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거짓말도 진실처럼 한다. 지금까지의 배역과는 달리 악역도 멋지게 소화했다는 평가다.

영화 ‘자백’에서 내연녀를 죽인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 유민호 역을 맡은 소지섭. 그는 데뷔 27년 만에 처음으로 스릴러 장르, 악역을 맡아 열연했다. 피프티원케이 제공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은 “시나리오를 받은 것이 2019년쯤이었는데, 당시 계속해오던 연기를 반복하는 것 같아서 좀 지쳐 있던 때였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며 ‘자백’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때를 회상했다. 당시 시나리오와 함께 윤종석 감독의 편지도 같이 받았다. 편지에는 소지섭이 왜 이 영화에 출연해야 하는지, 영화에서 해줬으면 하는 것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은 소지섭은 윤 감독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였고, 그렇게 ‘자백’에 출연하게 됐다.

소지섭의 첫 스릴러 장르 도전이자 악역을 맡은 영화 ‘자백’은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망한 사업가 유민호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가 숨겨진 사건의 조각을 맞춰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섬뜩한 반전이 매력적인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7)의 리메이크작으로, 원작에 또 한 번의 반전을 더해 다른 매력이 전한다.

소지섭은 유망한 IT기업의 대표지만 하루아침에 내연녀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 용의자로 몰린 유민호 역을 맡았다. 그가 연기한 유민호는 악역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와는 결이 다르다. 소지섭은 “유민호는 무조건 악인으로 시작하는 건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결과적으로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유민호의 성격이 변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처음 악역을 연기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일까. 그는 “촬영하면서 정말 해보지 못한 것을 하는 쾌감이 있었다. 실생활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니까 매력적인 것이 있더라”고 악역 연기의 매력을 짚었다. 그렇다고 악역 연기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소지섭은 “그것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촬영 기간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고, 쫓고 쫓기기도 했다”며 편치 않았던 심리 상태를 고백했다. 특히 렌치로 살해하는 장면은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본격적인 사이코 패스나 연쇄 살인마 역이 들어오면 출연을 고민할 것 같다. 촬영하는 몇 개월 동안 일상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고, 매력 있으면 또 하지 않을까”라며 여지를 남겨뒀다.

영화 ‘자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자백’의 매력은 진실을 두고 펼치는 유민호와 양신애 변호사의 밀당이다. 강원도 산장에서 서로를 떠보며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고도의 심리전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소지섭은 “원작 영화의 매력이 마지막 반전에 있다면 ‘자백’은 반전도 있지만 그 반전을 향해 달려가는 중간중간의 과정이 훨씬 더 매력적인 것 같다”면서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에 무게 중심을 뒀다.

여기에 양신애 변호사를 연기한 김윤진과 소지섭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그는 “리허설할 때 김윤진 선배님이 제 대사를 포함해서 시나리오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계신 것에 정말 놀랐다. 또 감정 컨트롤도 대단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요’ 하시더니 금세 감정을 잡더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잘 안된다. 신선한 자극이었다”며 “연기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뭔가 예전의 소지섭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몇 년 전에는 무뚝뚝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은 표정과 말투가 부드럽고 자상해졌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결혼이 아닐까 싶다. 2020년 4월 아나운서 조은정과 결혼을 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을 터다. 그는 “결혼으로 배우 소지섭의 생각이 크게 변한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선배들이 ‘결혼하면 안정감이 생겨’라는 말의 뜻을 이제 알겠더라. 정말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고, 조금 더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또 혼자 살 때의 책임감과 다른 책임감이 생기는데 기분 좋은 책임감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여유도 더 생기는 것 같다. 제가 신혼이라 그런가 보다”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스스로에 대해 “뭔가 주어지면 고민은 하되 결정을 하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잘하든 못하든 결정을 하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소지섭. 마음가짐은 편안해졌지만 27년 차 배우로 40대 후반으로 가고 있는 요즘 연기에 대한 욕심은 더 커졌다. 특히 ‘자백’을 하면서 느낀 바가 컸다. 그는 “‘(대중들이) 나한테 궁금한 게 새로운 게 있나?’라는 고민에 빠졌다가 ‘자백’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나 혼자 새로운 것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감독님이나 상대 배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싶다. 그래야만 될 것 같다. 스스로 하면 답을 못 찾겠더라”라며 솔직하게 말했다. 앞으로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무기를 갖고 소지섭이 만들어나갈 연기 세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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