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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슈퍼히어로 영화의 황혼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11-23 19:09:34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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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담’(2022)과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2022)를 보고 적잖은 피로감을 느꼈다. 막을 내릴 타이밍을 놓친 채 의무감으로 이어가는 프랜차이즈. 그리고 장르 관습의 무성의한 반복. ‘블랙 아담’은 배우와 옷만 바꿔 입은 채 슈퍼히어로의 등장과 활약이라는 틀을 답습하지만, 종국엔 인물과 드라마는 실종되고 불꽃놀이의 번쩍임만이 남는다.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핵심이 되어야 할 주인공 없이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세대교체로 합리화하면서 억지로나마 프랜차이즈를 연장하려는 상업적 판단의 산물이다.
영화 ‘블랙 아담’ 스틸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오늘날 나는 대중영화로서 슈퍼히어로 장르가 예전에 가졌던 몰입감과 흡입력이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다는데 놀라고 만다. 요컨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나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가 보여주었던 영화적 완성도와 주제의 심도를 돌이켜보자. 섣부른 만화의 실사화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으나, 그럼에도 놀란과 싱어는 만화의 캐릭터에게 생생한 실재감을 부여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현실의 일면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이 장르를 진지한 담론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슈퍼 히어로 영화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2000년대에 찾아왔다. 이는 몇 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겹친 우연의 결과였다. 디지털 기술이 만화책의 상상을 실사영상으로 구현하기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하던 그 시점에 공교롭게 9·11 테러가 터졌다. 테러리즘 시대를 맞은 대중의 집단적 무의식은 예측 불가능한 외부의 위험, 상상적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영웅의 등장을 요청했고,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진보한 기술력으로 이러한 대중의 심리적 흐름과 요구에 정확히 부응했다.

‘배트맨 비긴즈’(2005)와 ‘어벤저스’(2012)는 외부 세력에 의해 대도시 중앙부가 공격당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플롯을 공유하며, ‘아이언맨’(2008) 역시 테러리스트 집단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중요한 건 역설적이게도 ‘그럴듯함’(verisimilitude)이다. 냉전시대 헐리우드 B급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이 내부에 침투해있을지 모르는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투영한 메카시즘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슈퍼 히어로 영화의 유행은 9·11 테러 신드롬에 대한 반영이자 시대 맥락의 귀결이었던 셈이다.

지금 히어로 영화는 방향을 잃었다. 영웅들은 초능력을 휘두르고 가공의 적과 싸우며 유치찬란하리만치 세계를 구한다는 대사를 의무적으로 쏟아내지만, 극장 밖을 나서면 관객은 막막한 현실을 대면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되는 중이고, 경제 불황은 심화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삶이 무너지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영웅이 승리하고 악당이 쓰러져도 돌아보면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이 괴리 앞에서 일말의 현실감마저 잃은 설정 놀음은 공허해질 따름이다. 스필버그의 말을 옮겨본다.

“히어로물은 서부극의 길을 따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득실거리고 번영한다. 나는 단지 대중문화에 있어서 이 순환들은 시기가 한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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