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유랑의 달'…일본사회 ‘질서의식’ 바라보는 재일동포 감독의 시선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1-18 18:51:11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2022)은 일본 사회라는 조용한 강의 바닥에 흐르는 집단주의에 관한 반발과 비판 메시지를 숨긴 영화다. 집 밖에서 비를 맞고 있던 소녀에게 청년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흐린 날씨의 칙칙한 화면, 다리 아래 흐르는 흙탕물 격류를 포착하는 부감은 두 사람이 겪게 될 일이 녹록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암시를 남긴다. 15년이 지나, 소아성애 범죄의 가여운 피해자와 흉악한 가해자라는 낙인과 누명을 각각 뒤집어 쓴 사라사(히로세 스즈)와 후미(마츠자카 토리)는 우연한 계기로 재회하면서 또 다른 파국에 휩쓸린다.

감독의 의도에 철저히 헌신하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영화의 성격과 주제를 말없이 표현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라사의 주변에서 유괴사건을 언급하는 이들의 말이 들려올 때,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완만한 부감의 와이드 숏은 주변 시선에 포위되고 짓눌린 개인의 왜소함을 강조한다. 숨 막히고 답답함을 유발하는 프레이밍은 야외 장면에서도 약혼자 료의 아파트로 돌아올 때처럼 스카이라인을 낮게 잡고 다른 건물에 둘러싸여있음을 부각하는 구도나 배경에 깔리는 어둠을 통해 중첩되고 강화된다.

사라사와 후미는 각자 결혼을 희망하는 연인을 갖고 정상적인 커플 관계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모나지 않은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억눌린 개인의 정체성은 균열을 일으키며 이중으로 분열한다. 의무감에 짓눌린 개인의 비극은 주변 인물도 예외는 아니다. 약혼자 료는 결혼과 가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관습의 무게를 버거워하고, 사라사의 직장동료 안자이는 싱글맘으로서 살면서 받는 차별과 힘겨움을 토로하지만, 정작 의지할 애인이 생기자 어머니 역할을 내던지고 떠난다.

다시 후미를 만나는 걸 알게 된 료는 사라사에게 폭행을 저지르고는, 뒤에 돌아온 그녀에게 “용서해줄게”라 말한다. 왜곡된 후미의 과거사를 알게 된 동거인 아유미는 오열한 뒤 떠난다. 죄가 없음에도, 정상성의 규범을 벗어난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적 시선의 실체가 이 대목에서 소름끼치게 드러나고 만다.

사라사에겐 어린 시절 아동 학대를 받았다는 불길한 암시가 있고, 후미 또한 타고난 장애로 부모에게 경원시됐음이 뿌리 뽑힌 물푸레나무 일화로 제시된다. 결핍과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은 서로 어울려 생활하는 그들만의 밀실에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지만, 사회의 도덕적 통념에 포섭되지 않은 회색지대의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비정상으로 낙인찍힌다. 감독은 묻는다. 구성원의 사랑과 행복이라는 실질은 없이 틀과 형식만 지켜지면 된다는, 개인 감정과 사정 따위는 희생돼도 상관없다는 일본식 질서, ‘와(和)’의 의식은 환상이자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묵직한 회의를 재일한국인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던진다.

맑은 하늘과 평온히 흐르는 시냇물 이미지로 도입부와 수미상관을 이루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곤욕을 치렀지만 다시 합쳐진 두 사람은 예전처럼 둘만의 소박한 행복을 찾을 것이다. 비록 앞으로 펼쳐질 삶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무수한 억압과 차별을 감당해야 하는 투쟁의 연속일지라도.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3. 3“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4. 4“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5. 5[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6. 6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7. 7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8. 8"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9. 9[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10. 10“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1. 1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2. 2[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3. 3[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4. 4李대통령, 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에 “철저 조사 지시”
  5. 5'좌아하게'? 다시 논란 부른 이 대통령 SNS 정치
  6. 6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7. 7李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는 글에 “괴롭힌 거 아냐”
  8. 8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9. 9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10. 10靑, 北 탄도미사일 발사에 긴급회의…“안보리 위반, 즉각 중단 촉구”
  1. 1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2. 2“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3. 3"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4. 4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5. 5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급증… 재정 부담 가중될 듯
  6. 6미래대응기금, 국감 쟁점 부상…국회 "재원 지속가능 의문"
  7. 7카카오 월4900원 멤버십 출시…네이버 쿠팡과 3파전
  8. 8SK지주 최태원 지분율 3% 하락…최 회장 재산분할 자금 충당
  9. 9웰컴저축은행도 정보유출…법인고객 정보 2200건 추정
  10. 10"산업용 차등요금제, 기업의 지역이전 효과 극히 불투명"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3. 3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4. 4“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5. 5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6. 6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7. 7울산바위 배경으로 사진 찍다 추락한 70대 등산객 숨져
  8. 8“차량 흔들린다” 술 취해 소화기로 버스기사 폭행한 60대
  9. 9"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10. 10ADHD 치료제 처방 2년 새 38% 급증…“공부 잘하는 약 없어”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3. 3[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4. 4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5. 5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6. 6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7. 7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8. 8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9. 9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10. 10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