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할리우드 풍자,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

데이미언 셔젤 감독 '바빌론'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2-15 18:35:54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라 라 랜드’(2016)로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에 경의를 바쳤지만, 데이미언 셔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보다. ‘퍼스트 맨’(2018)으로 음악영화의 리듬감을 다른 장르에서도 발휘하는 비범함을 입증한, 그가 다음 작품으로 택한 건 다름 아닌 영화의 역사에 관한 영화. ‘바빌론’(2022)은 일종의 시대극인 동시에 미국 영화사의 텍스트가 되고자 하는 야심 찬 의욕의 산물이다. 감독은 ‘사랑은 비를 타고’(1952) 스타일을 복원하는 작업은 해보았으니, 이번엔 아예 ‘사랑은 비를 타고’의 배경을 다뤄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
‘사티리콘’(1969)과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의 후반부를 섞은 듯한 광란의 파티 시퀀스는 금지된 쾌락 탐닉과 성적 방종이 넘쳐나던 시대의 방자한 에너지를 재현하는 데 주력하며 제목이 뜨기까지 장장 30분을 끌고 간다. 스타 배우 존 콘래드(브래드 피트), 배우의 꿈을 안고 초대장 없이 막무가내로 파티장에 들어온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고용된 하인으로 서빙을 하고 있지만 영화계에 진입할 연줄을 잡으려 하는 매니(디에고 칼바). 영화는 세 인물의 걸음을 따라가며 당대 할리우드 풍속사를 재조명한다.

존 콘래드는 무성영화 시대 굴지의 스타였지만 차츰 입지를 잃고 몰락해 요절한 존 길버트를, 넬리 라로이는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섹스어필로 스캔들을 몰고 다닌 클라라 보를 각각 모델 삼은 걸로 보인다.

영화감독 루스 애들러는 초창기 할리우드의 유일한 여성 감독 도로시 아즈너를 연상시키는데, 고정된 마이크 위치 탓에 배우 동선이 제약돼 난리가 나는 등, 유성영화 발명으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세세히 묘사됨은 물론이다.(영화에 드러나진 않지만, 이 때문에 도로시 아즈너는 마이크를 낚시대에 달 것을 지시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붐 마이크.)

‘라스트 타이쿤’(1976)의 원형이 된 거물급 제작자 어빙 탈버그와 ‘시민 케인’(1941)에 영감을 준 언론재벌 랜돌프 허스트의 등장 등, 영화는 시대의 디테일을 나열하는 데 더없이 충실하다.

그러나 타락한 문명의 표상인 마냥 할리우드의 추잡한 이면을 들추고 비판적으로 풍자하려던 날 선 면모는 역사의 한 시절을 향수로 끌어안고자 하는 낭만주의와 모순되게 충돌하면서, 영화는 방향을 잃는다. 승승장구하던 넬리의 몰락과 잡부에 지나지 않던 매니가 영화사 간부로 부상하는 과정은 잦은 비약과 생략으로 인해 서사와 감정선의 구멍을 노출하고, 카지노 보스 맥케이를 따라 목격하게 되는 지하의 엽기적 광경은 삭제해도 플롯 전개에 지장 없는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의 결말. ‘시네마 천국’(1988)처럼 중년의 매니가 극장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회상신으로 189분의 대단원을 맺을 것 같았던 영화는 갑자기 그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영화들을 끌어오며 급발진하고 만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사 초기의 유산이 현대 영화의 마술을 낳는 토대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등장인물의 감정과 관점, 드라마에서 이탈한 자의식 과잉을 납득하긴 어렵다. ‘바빌론’은 거대한 비전을 펼쳐 보일 듯했지만, 과욕의 귀결은 용두사미였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상어 ‘부캉이’ 33일 만에 수로 벗어나…유도작업 종료
  2. 2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3. 3‘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4. 4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5. 5‘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6. 6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7. 7‘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8. 8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9. 9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10. 10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1. 1‘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2. 2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3. 3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4. 4부산교통공사 사장 임명, 시설공단은 보류… 협치 여지 남긴 전재수
  5. 5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6. 6'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7. 7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8. 8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9. 9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10. 10李 대통령, AI에 물었다…“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불가는 억지”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4. 4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5. 5"세무조사 때 금품·향응 수수"…국세청 직원 5년간 31명 징계
  6. 6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7. 7올해 부산 비정규직 58만명 '역대 최다'…1년새 2만5000명↑
  8. 8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9. 9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10. 10“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1. 1상어 ‘부캉이’ 33일 만에 수로 벗어나…유도작업 종료
  2. 2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3. 3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4. 4‘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5. 5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6. 6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7. 7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8. 8[속보]20일 부산서 70대 남성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사망
  9. 9‘부캉이’ 수로 출구 부근까지 유도…그물 주위 맴돌며 바다로 안 떠나
  10. 10“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3. 3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4. 4"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5. 5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6. 6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9. 9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10. 10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