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죄인임은 알지 못하나, 분명한 건 내가 장님이었다는 것과 이제는 앞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9장 25절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웨일’(2022)은 이해받지 못한 한 사람의 고독에 관한 영화이다. 대학 강사인 찰리는 동성 애인과의 삶을 위해 아내와 딸을 버렸으나 가정을 등지고 얻은 사랑은 파트너의 죽음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홀로 남겨진 그는 주변의 비난과 시선을 피해 은둔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림받은 처지로 살아가는 방외인(方外人)의 이야기.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는 272㎏의 육중한 살집에 파묻혀 사는 뚱보라는 것과,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한 나머지 일상의 대부분을 집안에서만 보낸다는 점이다.
아이다호에 도착한 선교사의 모습을 포착한 원경의 와이드숏으로 막을 연 영화는 이윽고 원격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찰리의 노트북 화면을 클로즈업한다. 학생들의 얼굴을 비추는 여러 개로 분할된 사각의 프레임 중, 강사인 찰리의 자리는 웹캠을 꺼놓은 탓에 비어있고 카메라는 줌으로 깜깜한 흑공(黑空)을 향해 들어간다. 쾌청하고 개방된 실외와 폐소공포증을 자아낼 듯 깜깜한 실내,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의 이분적 대비. 전혀 상반된 이미지를 충돌시키는 오프닝은 영화의 구도를 간결하게 압축한다.
‘더 웨일’에서도 아로노프스키는 종교적 모티브를 교묘히 변주해 배치한다. 무료하고 쓸쓸한 찰리의 일상이 방문객의 등장으로 변모해가는 일주일은 노아가 세상을 휩쓴 대홍수의 여파를 피해 방주 안에 갇혀있던 기간에 빗대어지고 있다. 올리브 가지를 물고 오는 대신 접시의 먹이를 먹고 가는 비둘기는 인물의 고립된 처지가 바뀌어갈 것이라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건강을 해칠 걸 알면서도 자행되는 찰리의 폭식은 죄의식에 시달리는 자신에 대한 자학적 응징에 가까워보인다. 온라인 강의 화면창의 프레임, 침침한 집과 비대한 육체로 감옥의 이미지를 중첩하고 유지하면서, 영화는 ‘짐승의 육신에 가두어진 순수한 영혼’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다.
딸 엘리는 문가에 서서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버지 찰리에게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 걸어와 보라며 매정하게 대한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스스로를 가둔 영혼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와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기도 하다. 틀어져있던 딸과의 관계 회복은 불화하던 세상과의 화해로 고스란히 등치되며, 노트북 화면 가운데의 어둠에서 출발한 타이틀백은 새하얀 빛으로 맺는 엔딩과 강렬한 시각적 대구를 이룬다. ‘더 웨일’은 상처입고 유폐된 영혼이 타자와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오는, 영혼의 문을 여는 개안(開眼)의 과정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는 아로노프스키 버전의 ‘성난 황소’(1980)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 최대의 성취는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일 것이다. ‘미이라’(1999) 같은 액션활극의 영웅이지만 불운을 겪고 오랜 침체기를 보냈던 그의 처지는 연기에 투영되어 깊이를 더한다. 쇠퇴한 육체와 분장에 파묻혔음에도 형형한 빛을 잃지 않은 푸른 눈은 영화의 핵심을 말없이 웅변해낸다. 이토록 진실성을 담은 연기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