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272㎏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더 웨일’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3-15 20:15:46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그가 죄인임은 알지 못하나, 분명한 건 내가 장님이었다는 것과 이제는 앞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9장 25절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웨일’(2022)은 이해받지 못한 한 사람의 고독에 관한 영화이다. 대학 강사인 찰리는 동성 애인과의 삶을 위해 아내와 딸을 버렸으나 가정을 등지고 얻은 사랑은 파트너의 죽음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홀로 남겨진 그는 주변의 비난과 시선을 피해 은둔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림받은 처지로 살아가는 방외인(方外人)의 이야기.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는 272㎏의 육중한 살집에 파묻혀 사는 뚱보라는 것과,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한 나머지 일상의 대부분을 집안에서만 보낸다는 점이다.

아이다호에 도착한 선교사의 모습을 포착한 원경의 와이드숏으로 막을 연 영화는 이윽고 원격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찰리의 노트북 화면을 클로즈업한다. 학생들의 얼굴을 비추는 여러 개로 분할된 사각의 프레임 중, 강사인 찰리의 자리는 웹캠을 꺼놓은 탓에 비어있고 카메라는 줌으로 깜깜한 흑공(黑空)을 향해 들어간다. 쾌청하고 개방된 실외와 폐소공포증을 자아낼 듯 깜깜한 실내,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의 이분적 대비. 전혀 상반된 이미지를 충돌시키는 오프닝은 영화의 구도를 간결하게 압축한다.

‘더 웨일’에서도 아로노프스키는 종교적 모티브를 교묘히 변주해 배치한다. 무료하고 쓸쓸한 찰리의 일상이 방문객의 등장으로 변모해가는 일주일은 노아가 세상을 휩쓴 대홍수의 여파를 피해 방주 안에 갇혀있던 기간에 빗대어지고 있다. 올리브 가지를 물고 오는 대신 접시의 먹이를 먹고 가는 비둘기는 인물의 고립된 처지가 바뀌어갈 것이라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건강을 해칠 걸 알면서도 자행되는 찰리의 폭식은 죄의식에 시달리는 자신에 대한 자학적 응징에 가까워보인다. 온라인 강의 화면창의 프레임, 침침한 집과 비대한 육체로 감옥의 이미지를 중첩하고 유지하면서, 영화는 ‘짐승의 육신에 가두어진 순수한 영혼’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다.

딸 엘리는 문가에 서서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버지 찰리에게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 걸어와 보라며 매정하게 대한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스스로를 가둔 영혼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와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기도 하다. 틀어져있던 딸과의 관계 회복은 불화하던 세상과의 화해로 고스란히 등치되며, 노트북 화면 가운데의 어둠에서 출발한 타이틀백은 새하얀 빛으로 맺는 엔딩과 강렬한 시각적 대구를 이룬다. ‘더 웨일’은 상처입고 유폐된 영혼이 타자와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오는, 영혼의 문을 여는 개안(開眼)의 과정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는 아로노프스키 버전의 ‘성난 황소’(1980)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 최대의 성취는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일 것이다. ‘미이라’(1999) 같은 액션활극의 영웅이지만 불운을 겪고 오랜 침체기를 보냈던 그의 처지는 연기에 투영되어 깊이를 더한다. 쇠퇴한 육체와 분장에 파묻혔음에도 형형한 빛을 잃지 않은 푸른 눈은 영화의 핵심을 말없이 웅변해낸다. 이토록 진실성을 담은 연기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4. 4[속보] 트럼프 “UFC 회장에 백악관 대변인 제안, 광기 어린 좌파로부터 우리 지켜야”
  5. 5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6. 6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7. 7'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8. 8[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9. 9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10. 10금관가야 왕도 김해, 내년 '고도' 지정 도전
  1. 1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2. 2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3. 3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4. 4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5. 5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6. 6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7. 7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8. 8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9. 9[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10. 10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 1'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2. 2'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3. 3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4. 4올해 3분기 상용직 증가분 75%는 60세 이상…20·30대는 감소
  5. 5녹색전환 핵심 ‘전기화’, 기업10곳 중 3곳만…“인센티브 필요”
  6. 6식품·외식 분야에서 ‘웰니스 소비’ 앞으로도 지속된다
  7. 7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9일 개막…"K-GX 전략 소개"
  8. 8“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9. 9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10. 10[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4. 4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5. 5[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6. 6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7. 7금관가야 왕도 김해, 내년 '고도' 지정 도전
  8. 8부산 영도구 주택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50대 남성 2명 화상
  9. 9세계적 위상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대망의 우승은 독일의 김정환
  10. 10신호대기 중 잠든 '음주 운전' 30대, 벌금 1300만 원
  1. 1‘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2. 2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3. 3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4. 4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5. 5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6. 6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7. 7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8. 8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9. 9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10. 10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