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민중의 짓밟힌 꿈…오늘날과 닮은꼴

‘자전거 도둑’(1948)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5-24 18:45:02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자전거 도둑’(1948) 재개봉을 맞아 영화의전당(부산 해운대구)에 들렀다. 35㎜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 필름을 다시 4K 스캔하고 디지털 복원한 새 판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세월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는 낡고 손상된 자국들, 뿌연 질감의 흑백화면 속 배경과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영화가 전쟁 이후 거리를 찍은 필름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위력적이다. 영화역사 한 시절을 풍미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사조는 시대의 뒤안길로 밀려났지만, ‘자전거 도둑’에는 여전히 시간을 넘어서는 몰입감과 설득력이 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의 한 장면.
공개된 당대부터 걸작으로 인정받았고 무수한 비평과 분석이 쏟아진 지금, ‘자전거 도둑’을 다시 말한다는 건 ‘침묵과 무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사무엘 베케트)을 더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다시 만난 영화가 오히려 지금 와서 더욱 생생하고 절절하게 다가오는 점에 놀라고 만다.

줄거리는 단출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직업소개소 근처에서 죽치던 안토니오는 영화광고 전단지를 붙이는 일을 얻는다. 그는 전당포에 저당 잡힌 자전거를 찾아와 일을 시작하지만, 잠시 눈을 파는 사이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경찰의 도움을 얻을 수 없던 그는 어린 아들 브루노와 함께 로마 시내 곳곳을 누비며 도둑의 행방을 찾는다. 기껏 찾아낸 도둑의 정체는 간질을 앓는 빈민가 청년이었고, 자전거는 찾을 수 없다. 절박함에 내몰린 안토니오는 독하게 마음먹고 자전거를 훔치기로 작정하고 만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데올로기적인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굳이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찾는다면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는 중산층 가족을 두고 “저들처럼 번듯하게 먹으려면 한 달에 100만 리라는 벌어야 해”하는 대사 정도일 것이다.

대신 영화는 생계수단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작은 여정에 관객을 동참시키며 필름에 기록된 세상 풍경을 펼쳐낼 따름이다.

안토니오가 일자리를 얻고 자전거를 찾았을 때 아내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이나 식당에서 아들에게 자전거가 있다면 벌어들일 수 있었던 수입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자. 그는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건실한 가정을 꾸리고자 한다. 하지만 자전거가 없으면 일할 수 없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상황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어려운 지경으로 내몬다. 노력과 선의(善意)에도, 비인격적인 세상의 벽에 부딪혀 절망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두고 공감하며 연민을 품지 않는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직업소개소 밖에 진을 친 사람들로 시작한 영화는 위기를 모면한 뒤 고개를 떨군 채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부자(父子)의 모습으로 끝난다. 수미상관으로 중첩되는 군중 이미지는 영화가 특정 주인공이 아닌, 부박한 현실의 중력에 짓눌린 민중 보편의 이야기임을 속삭인다. ‘자전거 도둑’은 행복하게 살고자 했지만, 그 꿈을 짓밟힌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75년 전 영화임에도, 난 이 작품이 너무나도 오늘날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눈물짓게 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4. 4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5. 5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6. 6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7. 7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8. 8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9. 9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10. 10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1. 1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2. 2‘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3. 3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4. 4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5. 5與, 초광역특구법안 발의 “주 52시간 특례 숙의”
  6. 6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7. 7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8. 8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9. 9[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10. 10[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4. 4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5. 5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6. 6“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7. 7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8. 8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9. 9동남아 접수하러 ‘부산표 게임’ 방콕행
  10. 10예탁원 나눔재단, 17년째 지역상생 실천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4. 4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5. 5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6. 6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7. 7APEC공원·금련산역 러너지원공간 문 열어
  8. 8“광안리 해변 보행공간 개선…구 차원 추가 캐시백 검토중”
  9. 9“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10. 10구·군 일손 적고 주인 자비부담 꺼려…슬레이트 철거 하세월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3. 3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4. 4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5. 5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6. 6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7. 7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8. 8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9. 9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10. 10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