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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이웃 간 적대적 이분법…그 잔혹한 차별의 세계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8-16 19:02:4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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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는 재난영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유실험에 가깝다. 일단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면 나옴직 한 불필요한 클리셰의 배제. 재해 발생을 예측한 과학자와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무능한 정치가, 상식 없는 행동으로 위기를 자초하거나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으며 플롯의 전개를 방해하는 인물, 극단적으로 도식화된 선악의 대립 따위가 설 자리를 주지 않은 건 큰 미덕이다. 엄태화 감독은 고립무원의 지경에 처한 아파트 단지라는 가공의 상황극 무대에 스탠포드 감옥 실험 마냥 인물들을 던져놓고는 인간군상의 변화를 포착하는 사회드라마에 집중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설정에는 구멍이 적지 않다. 아파트 주변의 인프라가 초토화되었는데도 소화전의 물로 화재를 진압하는가 하면, 식수를 배급받으며 물을 아끼는데 위생상태는 깔끔해 보인다. 그럼에도 근처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자 주민들이 기뻐하는 등, 따지고 보면 일관되지 못하고 사실감과 개연성을 해치는 구석들이 곳곳에서 노출된다. 배급에 불만을 품은 주민이 바깥 세력과 한 패가 되어 아파트로 끌어들이는데 어떤 식으로 감시를 피해 외부와 접촉하고 결탁했는지도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디테일에 결함이 있음에도 영화의 훌륭한 점은 비록 풀어내는 방식이 작위적일지언정, 분명한 메시지와 그에 헌신하는 연출의 밀도가 있기 때문이다. 투표에서 향방을 가르는 바둑돌의 흑백은 색출당해 죽음으로 내몰릴 외부인과 생존의 자격을 얻는 입주민을 가르는 적대적 이분법을 상징한다. 이러한 차별의 논리가 갖는 잔인성을 드러내는 연출의 예. 유랑민들 사이에 퍼지는 식인의 소문은 그림자가 기괴하게 일렁이며 카니발리즘을 방불케 하는 아파트 내부의 파티 장면과 겹쳐진다. 민성(박서준)이 밖에서 시체더미를 뚫고 케이크를 발견할 때, 안에서는 명화(박보영)가 김치냉장고에 처박힌 진짜 영탁의 시신을 목격하는 순간을 이어붙이는 교차편집은 타인의 죽음을 먹고 자기 삶을 연장하려는 집단이기주의의 섬뜩함을 말없이 웅변한다.

흑백에 따른 피아(彼我)의 구분은 얼핏 간단하고 편리하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주민대표로 방범대의 선봉에 서는 김영탁은 진짜를 살해하고 사칭했지만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대금을 다 치르고도 사기를 당한 사람이며, 때문에 아파트를 지키는데 강한 집착을 가진 그를 흑이라고도 백이라고도 할 수 없다. 20년을 근속해왔지만 추방당하는 경비원,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왔을 뿐인데도 외지인 취급을 당하는 혜원의 존재는 이러한 회색지대의 역설을 더욱 강화해준다.

콘크리트 더미의 칙칙한 회색에 질식할 듯 어둠에 잠식되어가던 영화의 화면은 전환의 국면을 맞은 후 동이 터오듯 밝아지고 따스해진다. 다른 생존자 집단이 머무는 옆으로 쓰러진 고층 아파트의 수평은 담벼락처럼 위압적인 인상이었던 황궁 아파트의 수직과 대비를 이루며, 폭력과 억압이 아닌 평등과 호혜, 연대의 관계가 싹틀 것임을 암시한다. 분명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현실 속 풍경의 잔혹한 지점을 겨냥하고 재현하는 ‘K-콘텐츠’의 관습에 기대는 한계가 있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과 세상의 전망을 바라보는 시선의 심도와 예술적 세공력의 조화를 이룩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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