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우상이 된 영웅…그 속에 감춰진 나약한 인간의 이면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12-13 19:27:22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2023)은 다급하다. 아벨 강스의 무성영화 ‘나폴레옹’(1927)이 장장 5시간32분을 들이고도 유년기에서 이탈리아 원정까지만 다룬 것과 대조적으로, 프랑스 혁명과 툴롱 포위전, 왕당파 반란 진압과 이집트 원정, 쿠데타, 황제 즉위와 아우스터리츠 전투, 러시아 원정 실패와 엘바섬 유배, 워털루 전투 패배와 쓸쓸한 말년에 걸치는 장대한 흐름을 담아내기엔 2시간38분 러닝타임은 턱없이 짧고 모자라다.
리들리 스콧 감독 ‘나폴레옹’의 한 장면.
여러 사건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다 보니, 플롯의 구멍이 노출되고 드라마의 감정은 수시로 끊기며,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실해 몰입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4시간10분의 감독판이 공개되더라도 영화는 불편할 것이다. 감독의 관심은 영웅 나폴레옹이 아닌, 사인(私人)으로서 그가 지닌 범속(凡俗)한 면모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분명 나폴레옹은 군사적 천재이고 정치가로서 능력과 야망도 대단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정욕구와 콤플렉스가 깊이 자리했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꼴사납게 당황하거나 초조해하며, 아내의 불륜 탓에 원정군을 내팽개치고 홀로 귀국하는 등 분별없고 충동적인 모습도 내비친다.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에게도 결핍과 나약함을 감추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의 얼굴이 있는 것이다.

사적인 감정과 동기에 휘둘리는 작은 인간이 어떻게 국가와 권력, 수백만의 인명 등 그토록 거대한 것을 휘두를 수 있었는가. 이러한 역사의 얄궂은 아이러니야말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나폴레옹’ 에서 리들리 스콧은 더는 ‘킹덤 오브 헤븐’(2005) ‘로빈 후드’(2010)에서와 같은 이상주의적 영웅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십계’(1956) ‘스팔타커스’(1960)와 같은 전형적인 대형서사극이 주인공에게 신적인 위엄을 부여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역사 인물을 ‘탈신화화’하는 이러한 방향성에는 흔히 ‘아버지-신’으로 표상되는 오이디푸스적 권력에 대한 불온한 전복의 함의가 깃들어있다.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미래사회를 지배하는 기업의 주인 타이렐 회장은 자신이 만든 인조인간을 죽음에서 구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아버지이고,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인류를 창조한 엔지니어들은 기대와 달리 자비롭지도 불멸이지도 않다. ‘올 더 머니’(2017)의 폴 게티는 거부이지만 실상은 돈의 군주가 아닌 돈의 노예이며, 손자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냉혈한이다.

조세핀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는 데 강박적으로 매달리지만 제대로 된 ‘아버지-되기’, 왕조 성립과 권력 승계에 실패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이처럼 오이디푸스적 표상과 권력에 냉소와 비판의 자세를 취해왔던 리들리 스콧 작가주의의 발전선상에 정확히 부합한다.

초인(超人)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우상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 현실 속 숱한 영웅과 위인의 실상이란 대개 그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거칠게 편집돼 앙상한 뼈대만 남긴 극장판에도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카운슬러’(2013)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장의 서늘한 시선은 인간주의적 이해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 현실의 차가운 공허(空虛), 근본적인 무의미성을 차분히 응시할 따름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2. 2부캉이 일단 외해 내보냈다(종합)
  3. 3“법기수원지 추가 개방, 양산시 손 놨나”
  4. 4부산 철마 한우 싸다 싸
  5. 5[포토에세이] 노랗게 물든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6. 6부산도시철 1회용 승차권 구매도 카드로
  7. 7한화오션, 부산 R&D 확대…설계·연구인력 채용도
  8. 8“우리가 알던 그 시절 SM 맛” 이수만표 흥행 공식 또 적중…돌풍 속 잡음도
  9. 9부산대·교대 통합 온도차…부실 보고 질타도
  10. 10데이터센터 몰리는 사하구…주민 갈등 줄일 조례 탄생
  1. 1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2. 2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3. 3우크라 공관원 추가 철수에 국힘 반발
  4. 4‘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5. 5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6. 6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7. 7부산교통공사 사장 임명, 시설공단은 보류… 협치 여지 남긴 전재수
  8. 8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9. 9'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10. 10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1. 1한화오션, 부산 R&D 확대…설계·연구인력 채용도
  2. 2SB선보, 대선조선 인수 마침표…‘SB대선’ 닻 올렸다
  3. 3집값 상승 이끈 ‘수영리버·비치벨트’…부산판 한강벨트 주목
  4. 4비정규직 58만명 역대 최대…부산 노동자의 42%(종합)
  5. 5市, 불꽃축제 앞둔 광안리서 바가지 근절 캠페인
  6. 6동남권 해양ICT 육성…해운AX·북극항로 개척 협력
  7. 7타 지역 줄어드는데 부산 5.9%↑…고령화 여파도
  8. 8‘모두의 창업’ 2기 가동…부울경 1135명 레이스
  9. 9선박 배기가스 저감·밸브제어로 두각…AI 관제 신사업으로 영토 확장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21일
  1. 1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2. 2부캉이 일단 외해 내보냈다(종합)
  3. 3“법기수원지 추가 개방, 양산시 손 놨나”
  4. 4부산대·교대 통합 온도차…부실 보고 질타도
  5. 5데이터센터 몰리는 사하구…주민 갈등 줄일 조례 탄생
  6. 6부산도시철 7년 만에 멈춰서나…22일 노사 최종교섭
  7. 7창원 병원 혈액투석실 C형 간염 14명 집단감염
  8. 8생곡소각장·퐁피두 등 전·현 시정 공방…울산 국힘 퇴장 파행
  9. 9부산시 신임 기획조정실장, 하민상 공수처 담당관 임용(종합)
  10. 1022일 출근길 기온 ‘뚝’…부울경 최저 2~9도
  1. 1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2. 2‘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3. 3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4. 4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5. 5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6. 6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7. 7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8. 8"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9. 9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10. 10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