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민주화운동 당시 열흘
- 중국음식점 문 연 가족 이야기
- 미소 잃지 않는 맏며느리 열연
- 소시민 눈으로 시대상 그려내
- “그 때 생각하니 눈물신 때 펑펑
- 목포 촬영 주민응원 큰 힘 됐죠”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1980’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1980’은 당시 광주의 한 소시민 가족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화장’ 이후 무려 9년 만에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김규리는 우리를 역사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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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0’에서 둘째를 임신한 채로 가족을 돌봐야 하지만 언제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맏며느리 철수 엄마 역을 맡은 김규리.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
1980년 5월 17일부터 27일까지 5·18 민주화운동 당시 10일간을 그린 ‘1980’은 당시 전남도청이 있던 광주에서 중국 음식점을 개업한 철수네 가족과 이웃 이야기를 다룬다. 김규리는 둘째를 임신한 채로 가족을 돌봐야 하지만 언제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맏며느리 철수 엄마 역을 맡았다. 이전에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했던 ‘택시 운전사’가 외부인의 시각을 가져왔다면 ‘1980’은 당시를 온몸으로 직접 겪은 광주 소시민의 이야기를 다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규리는 “2021년 ‘1980’의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당시 TBS 라디오에서 ‘퐁당퐁당’을 진행하고 있었다. 목포에서 올로케 촬영이라 해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읽지 않았다. 다음날 ‘1주일 뒤에 프로그램이 폐지된다’고 해서 끈끈했던 청취자들과 헤어질 마음에 펑펑 울었는데, 집에 오니 ‘1980’ 대본이 눈에 띄더라”며 허탈함을 달래고 읽은 ‘1980’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후일담이지만 ‘1980’을 연출한 강승용 감독은 매일 ‘퐁당퐁당’을 들으며 시나리오를 써 김규리 모습이 자연스럽게 철수 엄마 캐릭터에 녹아들었다고 한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큰 사건을 다루니 자칫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어 출연에 부담이 있었을 듯했지만 김규리는 “우리 영화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며 “우리 역사를 다룰 뿐 저한테는 다른 작품을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규리가 ‘1980’을 택하며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제가 맡은 철수 엄마는 영화에서 참 많이 운다.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진정하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 대신 많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위로가 되고 다시 걸어갈 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모두 다 그럴 것 같다.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인생을 힘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영화가 그런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고 ‘1980’은 당시의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는 영화임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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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17일 광주에서 중국 음식점을 개업한 철수네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1980’.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
‘1980’의 촬영은 적산가옥이 있는 목포 구도심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됐다. 영화 주무대인 중국 음식점 화평반점 세트도 그곳에 지어 몰입도를 높였다. 이전에 영화 ‘실미도’, ‘왕의 남자’, ‘사도’, ‘안시성’의 미술감독을 맡으며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강 감독이기에 ‘1980’의 미술은 당시를 완벽히 재연했다. 김규리는 “야외 세트장에 화평반점 건물을 만드셨는데, 미술 감독님이었기에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을 완벽하게 하려면 비용·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강 감독님이기 때문에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고 감탄했다.
더불어 “구도심에서 촬영할 수 있게 허가해주신 목포시와 촬영할 때 저희를 친근하게 대해주신 동네 주민들께 매우 감사드린다”는 마음을 전했다. 촬영 기간 동네 주민들이 수박화채를 만들어 와 촬영을 응원했다는 에피소드도 곁들였다.
철수 엄마는 화목했던 가족이 진압군의 폭력으로 여러 번 화를 당하면서 여러 번 눈물 흘린다. 특히 결혼을 앞둔 시동생의 약혼자가 죽는 사건이 벌어지자 오열한다. 김규리는 “일부러 감정을 잡지 않았다. 눈물을 억지로 내지 않아도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을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더라”고 떠올렸다. 또 만삭 임산부 역할이라 분장을 해야 했는데 “임산부 복장을 계속 하고 있으면 허리가 되게 아프다. 그런데 임산부의 감정을 알아야 하고, 불편한 몸 느낌을 익혀야 해서 일부러 빼지 않았다”며 과정을 전했다.
목포에서 촬영하면서 김규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된 배우는 화평반점 주방장이자 시아버지인 철수 할아버지 역의 강신일이었다. 그녀는 “선배님이 워낙 무게감이 있고, 중심을 잡아주셔서 감사했다. 촬영 중 제 생일이 있었는데 배우, 스태프와 화평반점 앞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그런데 그때 선배님이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게 기억에 남는다”며 바쁜 촬영 중에도 후배를 위해 노래한 강신일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한편 2008년 개봉한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연기하며 그림에 흥미를 느껴 그림을 배운 김규리는 “‘퐁당퐁당’ 진행을 그만두면서 그림 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올해에는 오는 12일 한국화 3세대 선생님들이랑 함께 하는 단체전에 두 작품 올리고, 5월 9일에는 서울 아트페어에서 제 개인 전시를 갖는다”고 화가로서 일정을 전했다. 이어 “새로운 작품을 추가해야 하는데, 영화 개봉을 맞아 홍보도 함께 해야 해서 정말 바쁘다”며 웃었다.
배우이자 그림 작가 김규리는 “그림으로 우리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우리나라 전통 장인들을 외국에 모시고 가는 게 목표”라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