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임진왜란기 임금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다시 만나 서로 칼 끝을 겨누는 이야기다.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 차에도 불구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던 그들은 혼란의 시기, 깊은 오해로 헤어진 뒤 적이 되어 다시 만난다.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양반과 몸종이 지기가 될 수 있다니. 영화는 “그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 선조 때 정치인이자 사상가 정여립(1546~1589)의 최후를 첫 장면으로 보여준다.
정여립. 한국사 수업 때 배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익숙지 않은 인물이다. 기축옥사의 빌미를 제공한 ‘정여립 모반사건’의 주인공인 그는 대동(大同)사상을 주장하다 역모죄인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저 흔한 단순 반란으로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후대의 평가다. 신분에 귀천이 없고 모든 이가 평등하며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민주공화’ 사상이 조선 후기도 아닌 중기, 견고한 왕정사회 당시 제기됐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조선이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선조는 그를 역도로 몰았고, 관군에 쫓긴 정여립은 주 활동지였던 전북 진안 죽도에서 자결한다. ‘죽도 선생’이라 불린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 대동사상을 전파하고 또 최후를 맞이하는 ‘전,란’의 첫 장면이 촬영된 진안 죽도를 지난 16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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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0년 전 ‘천하는 공공의 물건이며 누구나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를 외친 한국 최초 공화주의자로 평가받는 정여립의 주 무대였던 전북 진안 죽도(왼쪽). 노비와 양반의 우정을 그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첫 장면에 등장하는 곳이다. 이선정 기자 |
- 조선시대에 민주공화 외친 사상가
- 역모죄인 몰려 죽도에서 최후 맞아
- 깎아지른듯 높이 선 바위절벽 아찔
- 인근 천반산 지질명소 정상부에선
- 구불구불 물길 절경에 감탄사 절로
■정여립 흔적 가득한 죽도
진안 죽도는 우선 찾아가기 힘들다. 다른 사적지와 달리 제대로 된 기념시설도 없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이지만 내비게이션에는 ‘진안군 동향면 장전마을’을 목적지로 입력해야 한다. 장전마을 어귀에 차를 대고 죽도를 전망할 수 있는 가막리들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폭설 후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일부 빙판으로 변한 흙길을 따라 조심조심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도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그곳에서 바위절벽이 쪼개져 생긴 죽도의 장관이 펼쳐졌다.
정여립이 운영한 죽도서당이 있던 죽도는 육지 속 섬이다. 산대나무가 많고 바로 옆 천반산(해발고도 647m)이 죽순처럼 솟았다고 해서 죽도라 이름 지어졌다. 원래는 좁고 긴 바위절벽으로 육지와 이어져 섬 아닌 섬이었는데 1970년대 농경지로 개간하고자 산을 발파, 절개하는 바람에 진짜 섬이 되어 버렸다. 고운 모래톱이 형성된 가막리들에 서면 장수와 장계에서 내려오는 천천과 무주군 안성면에서 동향면을 거쳐 흘러오는 구량천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깎아지를 듯 높이 선 바위절벽의 죽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와 이어지는 오른쪽 바위절벽은 모양이 병풍처럼 생겼다고 해서 ‘병풍바위’로, 닭 볏을 닮았다 하여 베슬 바위로도 불린다. 가막리들 억새 풍경도 장관을 이룬다.
천반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반을 가막리들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정여립이 훈련 때마다 깃발을 꽂았다는 천반산 깃대봉까지 3.2㎞, 그가 군사를 조련했다는 전설이 있는 산성터까지는 2㎞ 거리다.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말을 타고 봉우리들을 건너뛰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뜀바위’,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도 있다.
가막리들에서는 죽도의 풍경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죽도를 위에서 조망하고 싶으면 ‘죽도길’로 가면 된다. 장전마을에서 나와 49호 지방도를 타고 북서 방향으로 차로 4분 정도 올라가면 갓길에 진안·무주국가지질공원 안내도가 보인다. 이 일대는 진안·무주국가지질공원의 대표적인 지질명소에 속한다. ‘천반산 지질명소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오솔길을 올라 정상부로 가면 죽도와 천반산, 감입곡류(구불구불한 형태)하천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천과 구량천 물길은 죽도를 끼고 Ω(오메가) 지형을 이룬다. 천반산을 둘러싸고 흐르는 U자형 감입곡류하천 풍경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선판 크롬웰’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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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김상만 감독, 강동원 박정민 주연 ‘전, 란’의 한 장면. 영화 스틸컷 |
“임금이나 노비나 대동하다.” ‘전,란’의 첫 장면에서 정여립은 관군과 대립한 죽도에서 스스로 목에 칼을 꽂으며 이렇게 외친다. 역모죄로 잡혀온 정여립의 아들을 추국하며 선조는 “천하는 모두의 것이며 누구든 왕이 될 수 있다. 백정도 기생도 노비도 저 자리(옥좌)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으냐”며 격노한다.
정여립은 원래 서인이었다. 서인의 대표적 인물인 율곡 이이가 그의 스승이다. 관직에 진출한 그는 동인인 이발과 친분을 쌓으면서 동인으로 전향했고, 심지어 스승인 이이까지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갖은 비난을 받았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싸움만 하는 조정에 신물이 난 정여립은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한다. 양반뿐만 아니라 무사 상민 노비 승려 산적 등 다양한 신분이 참여한 대동계는 매월 정기적으로 무예를 연마하고, 글을 배우며 정여립의 ‘천하공물 하사비군론(天下公物 何事非君論·천하는 공물이니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라도 군주로 섬길 수 있다는 이론)’이라는 파격적 개혁사상을 익혔다. 대동계는 민심을 얻으며 계원만 500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대동계가 조선 수군과 힘을 합쳐 정해왜변(1587년)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정여립의 명성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서인은 이를 동인까지 엮어 역모로 몰았다. 대동계원들이 관군에 쫓기며 죽임을 당하자 그들은 죄가 없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죄라면 자신이 죗값을 받겠다며 자결을 택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약 3년간 이발을 비롯, 1000여 명의 동인이 희생당하는 조선 최대 옥사(반역 등 중대범죄 사건)가 벌어진다. 기축옥사다. 선조의 명을 받아 이를 주도한 인물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으로 익숙한 송강 정철이다. 아름다운 문체와는 정반대로 ‘동인 백정’ 악평도 받은 인물이다. 기축옥사는 극단적 당파싸움이 국력을 약화시켜 1592년 임진왜란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엇보다 정여립은 ‘천하공물 하사비군’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공화주의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이 현대적 공화주의적 사상은 1649년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 첫 공화정을 이끈 잉글랜드공화국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보다 반세기는 더 앞선다. 정여립은 우리 역사는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안에 그를 기념하는 역사관 등 기념시설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 여행이었다.
# 진안 필수코스 ‘마이산’, 피로는 홍삼스파서 푼다
- 근처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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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진안 산약초타운 내 ‘진안홍삼스파’.
진안군 홈페이지 |
전북 진안은 ‘진안·무주국가지질공원’의 주요 지역인 만큼 도시 전체가 거대한 지질공원 같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산이다. 노령산맥 줄기인 진안고원과 소백산맥의 경계에 자리한 명승 12호 마이산은 서로 등지고 선 듯 솟아오른 두 봉우리(암마이봉과 숫마이봉)가 아주 독특한 형상을 이루며 진안을 상징한다. 흙이 없이 퇴적암(역암)으로만 된 두 봉우리가 말의 귀(馬耳)처럼 생겼다고 해서 산 이름이 유래됐다.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면 바위 중간중간에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구멍이 숭숭 나 있는데, 이는 풍화작용에 따른 풍화혈로 ‘타포니 지형’이다.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는 보통의 타포니 지형과 달리 이곳은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형성됐고, 이 정도로 큰 규모의 타포니 지형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한다.
이갑룡 처사가 30여 년 동안 직접 쌓아 올렸다는 80여 기 돌탑이 있는 ‘진안의 명물’ 마이산 탑사(전라북도 지방기념물 35호)를 지나 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 건국을 꿈꾸며 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로 향하면 거대한 두 바위봉이 나온다. 오른쪽이 숫마이봉, 왼쪽이 암마이봉이다. 은수사 왼쪽에 조성된 데크길을 따라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중턱의 갈림길까지 등반할 수 있다. 마이산 포토존은 또 있다. 마이산관광단지 쪽으로 가면 사양제가 나오는데, 저수지 물에 비친 두 봉우리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데크길이 조성돼 저수지를 가로질러 산책하면서 마이산의 절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홍삼이 유명한 진안에서 홍삼스파를 즐길 수도 있다. 산약초타운 내 진안홍삼스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홍삼한방을 테마로 했다. 스파가 부담스럽다면 가벼운 족욕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인근 진안고원관광정보센터 건물 내 홍삼족욕카페에서 30여 분 정도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싹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