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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에 필요한 것…고요 속 사색과 소박한 온천탕

겨울이라 더 좋은 일본 벳푸 ‘탕치’ 여행

湯治 탕치 : 온천 숙소에 머물며 질병을 치료하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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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벳푸 칸나와 지역의
- 전통 탕치숙 ‘후타바소’
- 95도 이르는 원탕 온도
- 옛 모습 간직하고 있어
- 현지 애호가 사이 유명

유명한 온천지에는 늘 ‘치유’에 관한 다양한 비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동래온천의 ‘백학 전설’이 대표적이다. 한 노파가 다리를 절던 학이 온천에 다리를 담근 뒤 낫는 것을 보고 본인도 아픈 다리를 담가 병을 고쳤다는 전설이다. 해운대온천에는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이 온천욕을 하며 천연두를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에는 온천이 가진 신비한 효험을 향한 옛사람들의 믿음이 담겨 있다. 오늘날처럼 온천이 관광지로 주목받은 것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1940년 개업한 일본 벳푸 칸나와 지역의 전통 탕치숙 ‘후타바소’의 전세탕.
옆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 관광지 ‘벳푸’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지옥 온천 순례’ 등 투어 코스로 유명하지만, 벳푸는 원래 ‘탕치(湯治)’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탕치란 질병을 고치기 위해 온천이 딸린 숙소에서 한 달 이상 머물며 요양하던 문화를 일컫는다. 당시 저렴하게 장기간 숙박할 수 있는 ‘탕치숙’ 영업이 성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며 탕치숙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경제 성장으로 단체 관광객이 늘며 고급 료칸과 호텔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벳푸 칸나와 지역에는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탕치숙이 일부 남아있다. 손님은 주로 나이 지긋한 탕치객들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젊은 여행객의 발길도 이어진다. 옛 탕치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유난히 춥고 시린 이번 겨울에는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뜨끈하게 위로해 주는 ‘탕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 85년 역사의 탕치숙

낡은 미닫이문을 열자, 삶은 달걀 냄새를 닮은 유황의 향이 퍼지면서 코끝에 은은하게 감돌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여주인이 반가운 얼굴로 좀처럼 보기 드문 한국인 손님을 맞아 주었다.

전통 탕치숙 ‘후타바소’의 객실.
벳푸시 칸나와 지역에 있는 ‘후타바소’는 1940년에 문을 연 전통 탕치숙이다. 85년의 역사에도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숙박비도 저렴해 1박에 2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인근 료칸의 4분의 1 정도 비용으로 묵을 수 있다. 전화로만 예약을 받아 외국인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현지 온천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미 이름난 곳이다. 온천을 주제로 한 일본 드라마 ‘오늘도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는가 하면, NHK의 ‘다큐멘터리 72시간’을 통해 탕치 문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숙박객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막 목욕을 마친 듯 젖은 머리를 한 채 수건을 목에 두른 모습이다. 며칠이나 머물렀는지 물어봤더니 짧게는 이틀부터 길게는 2주간 묵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짐을 푼 뒤 온천욕을 하러 나섰다. 이곳의 욕탕은 총 3곳으로, 독립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세탕과 남탕, 여탕이 각각 1곳씩 있다. 때마침 전세탕이 비어 있어 이용해 봤다. 입구 천막을 들추자 ‘박력’ 넘치는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목욕 시설은 세월을 얼마나 머금었는지 가늠조차 어려운 편백 욕조 하나뿐으로, 곳곳에 온천수가 응고돼 생긴 침전물이 잔뜩 피어있었다. 욕탕을 둘러싼 돌벽과 덩굴, 고이 모셔진 ‘약사여래’ 석상이 자아내는 풍경은 묘한 분위기를 더했다.

굴뚝을 통해 온천 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몸을 깨끗이 씻고 편백 욕조에 조심스레 몸을 담갔다.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뜨끈한 온도였다. 물을 찍어 맛봤더니 약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이곳 온천수는 나트륨 염화물천으로, 원천의 온도가 약 95도에 이른다. 주기적으로 목욕하면 근육과 관절 통증에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에 마련된 아담한 ‘무시유(むし湯·찜탕)’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무시유란 온천으로 뜨겁게 데운 방 안에 들어가 땀을 내는 우리네 찜질방과 닮은 목욕시설이다. 달궈진 바닥에 ‘석창포’라는 약초를 깔고 그 위에 10분 정도 누워 찜질을 즐긴다. 후타바소의 무시유에는 석창포가 깔려 있지 않아 아쉬웠지만 기분이 좋을 만큼 적당히 따뜻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피로를 풀기에는 제격이다. 욕조와도 가까이 자리 잡고 있어 찜질을 마친 뒤에는 흘린 땀을 씻어 내기에도 편리하다.

◇ 지옥에서 온 찜 요리 ‘지고쿠무시’

온천 증기로 재료를 찌는 벳푸의 전통요리 ‘지고쿠무시(지옥찜)’.
탕치숙은 숙박비가 저렴한 대신 식사를 별도로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후타바소의 공동 부엌에는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도록 솥이 여러 개 마련돼 있다. 솥에서는 늘 김이 피어오르지만, 불을 때는 아궁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지고쿠무시(地獄蒸し·지옥찜)’를 만들기 위한 솥이기 때문이다.

지고쿠무시는 에도 시대(1603~1867)부터 이어진 벳푸의 전통식이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준비한 재료를 씻어 끈을 매단 바구니에 담는다. 이어 온천 증기가 통하는 솥에 바구니째로 넣은 뒤 뚜껑을 덮어 쪄내면 완성이다. 증기 온도가 100도를 넘나들어 불 없이도 재료를 부드럽게 익힐 수 있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도보로 5분 떨어진 대형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채소 달걀 새우 조개 생선 고기 등 취향껏 재료를 익혀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먹만 한 고구마를 넣어봤더니 15분 만에 속까지 노랗게 잘 익었다.

재료에는 온천수가 품고 있던 소금기와 향이 배어들며 독특한 감칠맛이 난다. 원재료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아 건강식으로도 제격이다. 더욱 풍부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오이타현의 특산물인 ‘카보스 폰즈소스’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카보스는 일본산 감귤의 일종으로 강한 산미가 특징이다. 지고쿠무시를 폰즈소스에 찍어 먹으면 달콤함과 짭짤함, 상큼함까지 느낄 수 있다.

공동 부엌에는 파이프를 통해 원천도 흐르고 있어 깨끗한 온천수를 마실 수 있다. 한 국자 떠서 맛을 봤더니 짭짤한 맛과 함께 유황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적당량을 마시면 만성 소화기 질환과 변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 탕치숙 머물며 특색 있는 인근 온천 탐방도

일본 오이타시에 위치한 온천 ‘텐카이노유’의 노천탕. 텐카이노유 홈페이지
후타바소와 같이 옛 모습을 한 욕탕이 낯선 초심자들은 탕치숙에 머물면서 인근의 온천을 당일치기로 이용하기도 한다.

후타바소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효탄온천’은 벳푸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 중 한 곳이다. 1922년 개업했다고 하니 그 역사만 무려 100년을 넘긴다. ‘효탄(표주박)’이라는 이름은 온천을 처음 조성할 때 만들었던 바위탕의 모양이 표주박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매력 중 하나는 낙하하는 온천수를 맞으며 즐기는 ‘폭포탕’이다. 남탕에는 19줄기, 여탕에는 8줄기의 폭포가 설치돼 있다. 생각보다 떨어지는 폭포의 수압이 강해 마치 마사지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안뜰 정원에는 온천 증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가 설치돼 있다. 얼굴로 증기를 쐬기 위한 시설로, 특히 기관지와 피부 보습에 좋다. 그 옆으로는 원천수가 흘러나와 마셔볼 수도 있다. 변비나 만성 위장 질환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좀 더 특이한 온천을 찾는다면 차로 30분 떨어진 오이타시의 ‘텐카이노유’를 추천한다. 이곳의 온천수는 흑갈색을 띤 ‘몰 온천’이다. 석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온 식물성 유기질을 포함한 온천으로 ‘습지’를 의미하는 독일어 ‘몰(Moor)’에서 유래됐다. 천연 보습 성분을 품고 있어 온천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피부 미용에 좋다고 평판이 나 있다. 노천탕에서는 벳푸만이 탁 트여 있어 절경을 자랑한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이용하고 싶다면 50분 단위로 대실이 가능한 가족탕도 마련돼 있다. 가마솥탕과 다다미탕 등도 함께 있어 번갈아 이용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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