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포즈의 함정’에 빠진 봉준호

미키 17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5-03-05 19:12:13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봉준호의 ‘미키 17’(2025)에 대해선 적잖은 기대감이 있었다. ‘설국열차’(2013)는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나가며 최종 보스를 만나러 가는 게임의 규칙을 극에 대입하면서 열차 칸마다 계층과 기능별로 분리된 세계의 총체적 지형도를 그려내 보였고, ‘옥자’(2017)는 한갓 물질로 환원되어선 안 될 존재의 개성과 영혼마저 계량화하고 상품화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의 섬뜩한 살풍경을 겨냥한 우화였다.
영화 ‘미키 17’의 한 장면.
이 영화들에는 ‘살인의 추억’(2003)이나 ‘괴물’(2006)과 같이 한국 사회 풍경의 세부를 겨냥하고 펼쳐내는 솜씨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대신 지역과 당대성을 넘어 보편통시적인 역사 현실의 원리를 조망하려는 철학적 야심이 있었다.

회화에 비유한다면 한국 사회 풍경을 세밀한 터치로 소묘하는 구상(具象)에서 묘사의 디테일과 날카로움은 떨어지지만, 대신 큰 구도를 바라보게 하는 추상(抽象) 영역으로 나아가는 이행과 변모의 과정. 이러한 필모그래피의 결이 다른 두 흐름을 종합해 현실의 콘텍스트 안에서 인공적인 담론의 공간구조를 창조해 낸 일종의 결산이 ‘기생충’(2019)이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우주 공간으로 떠난 ‘미키 17’에선 봉준호의 사유에 어떤 관점의 변화와 깊이가 더해질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키 17’은 그로서는 아쉽게도 그리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경력 이래 최대 제작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야심 없고 안이한 소품. 다만 봉준호다운 영화이긴 하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폐쇄된 공간 속 계급사회나 시스템 유지를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얄궂은 운명은 ‘설국열차’를, 냄새에 의한 후각의 아비투스와 계급의 상하를 막론한 남녀 관계의 성적 뉘앙스는 ‘기생충’을, 생명체와의 교감과 대량 학살 위기와 과장된 연기 톤에 풍자적 블랙코미디는 ‘옥자’를 상기시킨다. 도중에 흐름을 깨는 ‘삑사리’의 엇박자가 웃음을 자아냄은 물론이다.

좋게 말하면 그답고, 나쁘게 말하자면 본인의 모티브를 재삼 우려먹는 매너리즘. 이제까지의 작품을 통해 확립되어 온 봉준호의 영화적 습관들이 현대 SF 장르의 (‘프로메테우스‘(2012) 이래 별반 달라진 바 없는) 유려하지만 표준화된 시각 디자인 속에서 무난하게만 발휘된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 요소들이 난립하면서 단편적으로 던져질 뿐, 이 작품만의 고유한 인상을 각인시킬 하나의 주제 의식으로 응집되지는 못한다는 데에 있다. 멍청하면서 고집불통인 리더의 출현은 갈수록 나빠져 가는 현대 정치의 상황을, 반복되는 미키의 죽음은 문자 그대로 갈려 나가는 노동자의 삶을 연상시킨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평면적인 캐릭터에 일차원적 풍자를 두고 작가주의 운운하기엔 좀 그렇지 않은가?

인종 다양성과 젠더 이슈를 의식한 면면도 보이지만, 편의적인 서사 전개 못지않게 계몽적 요소 역시 소모품으로 동원될 뿐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루벤 외스틀룬드가 각각 ‘가여운 것들’(2023)과 ‘슬픔의 삼각형’(2022)에서 저지른 과오와 마찬가지로 ‘미키 17’에서 봉준호는 ‘포즈의 함정’에 빠졌다. 다양한 이슈의 전시가 있을 뿐, 그에 걸맞은 심도와 본격적인 문제 제기는 이 영화엔 없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3. 3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4. 4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5. 5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6. 6‘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7. 7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8. 8부산으로 이주하고, 먼 여행 떠나고…두 작가 그림이 달라졌다
  9. 9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10. 10[기고]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3. 3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4. 4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5. 5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6. 6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7. 7[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8. 8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4. 4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5. 5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6. 6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7. 7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8. 8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9. 9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10. 10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1. 1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속보]혼자걷던 여성 5차례나 범죄대상 물색, 성폭행 혐의 30대 男 징역 4년 선고
  7. 7농어촌 기본소득 공모 탈락 거창군, 자체 조례 제정해 ‘거창형 기본소득’ 추진
  8. 8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9. 9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10. 10문 전 대통령 거제생가 복원, 진통 끝 시의회 통과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3. 3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