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관객 621만 명 동원하며
- ‘타이타닉’ 등 흥행기록 갈아치워
- 한국형 블록버스터 첫 성공 사례
- 와이드 릴리스와 러닝 개런티 등
- 국내에 본격 도입·확산시킨 작품
- 삼성 투자배급 뒤 영화산업 손떼
- 판권문제로 OTT서도 볼 수 없어
지난해 극장가를 주도했던 트렌드 중 하나인 ‘재개봉 열풍’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 열풍에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합류한다.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탄생해 13일 관객을 만난다. 1999년 개봉 이후 26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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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재개봉하는 강제규 감독의 1999년 영화 ‘쉬리’의 여러 장면. ‘쉬리’는 한국 영화의 틀을 바꿨고 새로운 스타가 등극하는 통로가 됐다. 왼쪽부터 각각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가 ‘쉬리’에서 열연하는 모습이다. |
■한국 영화의 체질을 바꾸다
‘쉬리’는 한국 영화 산업의 체질을 완전히 바꾼 영화로 평가받는다. “할리우드에 대적할 만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는 강제규 감독의 출사표와 함께 개봉한 ‘쉬리’는 놀라운 흥행세를 보이며 ‘서편제(서울 기준 103만)’가 지니고 있던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타이타닉’이 보유 중이던 국내 최고 흥행 기록(226만)도 넘어서며 외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쉬리’의 최종 스코어는 621만 명. 가히 신드롬에 가까웠던 ‘쉬리’의 흥행은 영화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실제로 ‘쉬리’ 이후 거대 자본이 본격적으로 영화 시장에 유입됐다. 와이드릴리스(wide release, 대규모 개봉) 개봉 방식이 확산되고, 영화 홍보마케팅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도 이때. 일본 프랑스 인도 등 해외 시장도 공략하며 한국 영화 수출의 활로를 열기도 했다. ‘쉬리’는 주연 배우와 감독이 흥행 성적에 따라 추가로 받는 출연료, 이른바 ‘러닝개런티’ 제도를 본격 도입한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 역사는 ‘쉬리’ 전과 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홀연히 사라진 삼성영상사업단
‘쉬리’ 제작비는 30억 원을 웃돌았다. 지금 눈높이로 보면 크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투자 배급을 맡은 삼성영상사업단이었다. 삼성영상사업단은 고(故) 이건희 삼상회장이 1995년 출범시킨 회사다. 삼성이 영화 산업에 뛰어든 데에는 이건희 회장의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작용했다는 후문. 당시 경쟁사였던 소니 때문이기도 했다. 소니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콜럼비아픽처스를 인수하자 삼성도 콘텐츠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은 기획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던 기존 영화 업계의 관행을 타파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흥미로운 건 그런 삼성영상사업단의 마지막 영화가 ‘쉬리’였다는 점이다. 가장 높이 튀어 올랐을 때 철수한 셈인데, 그 배경엔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라는 외환 위기가 있었다. IMF 여진으로 영상산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삼성의 결심은 ‘쉬리’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번복되지 않았다. IMF가 없었다면, 우린 자사가 만든 영화 콘텐츠를 갤럭시폰에 심는 삼성을 만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러 명성에도 불구하고 ‘쉬리’를 그동안 VOD나 OTT 등에서 볼 수 없었던 건 삼성영상산업의 철수와 함께, 판권이 묘연해져서였다. 이번 재개봉에는 판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강제규 감독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배급은 CJ ENM을 통해 이뤄진다.
■남북 소재 영화에 새로운 패러다임
‘쉬리’는 국가 비밀기관 특수요원 중원(한석규)과 남한으로 침투한 북한 특수요원 박무영(최민식), 그리고 이들 사이에 놓인 중원의 약혼녀 명헌(김윤진)이 얽힌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분단이라는 소재를 상업 영화 논리 안에서 ‘첩보전’으로 풀어낸 ‘쉬리’의 전략은 남북문제를 이념으로만 바라봐 왔던 기존 인식이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후 남북 분단은 충무로가 사랑하는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등의 영화가 ‘쉬리’ 자장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쉬리’는 연기파 배우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를 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 당시 한석규는 ‘접속’ ‘은행나무 침대’ ‘8월의 크리스마스’를 거치며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로 거듭난 톱스타였다. ‘쉬리’가 거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석규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무영 역할로 ‘쉬리’에서 카리스마 내뿜는 최민식은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한국의 게리 올드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한석규 최민식에 비해 존재감이 덜했던 송강호는 알다시피 이후 한국 영화의 든든한 허리로 자리매김했다. 세 배우를 한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쉬리’의 재개봉은 각별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