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일탈로 작품 사장 안타까워”
하나의 작품이 관객의 온전한 평가를 받는 과정엔 여러 변수가 끼어든다. 주연 배우의 도덕적 해이나 일탈은 오랜 시간 영화 산업을 흔든 변수 중 하나로 꼽혀왔다. 드라마 역시 ‘사전 제작’이 자리 잡으면서 ‘배우 리스크’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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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제작하는 드라마가 늘면서 배우 리스크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드라마 ‘찌질의 역사’의 한 장면. HB엔터테인먼트 제공 |
광고의 경우 기용한 스타가 물의를 일으키면 모델을 교체하거나 광고를 내리는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으나,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나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영화와 드라마는 수백 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작물이다. 여기엔 제작사뿐만 아니라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 배우 홍보사 등 무수히 많은 이의 시간과 커리어도 걸려있다. 큰 제작비를 쏟아 촬영을 마친 작품이 무기한 공개를 보류할 경우 업계에 도미노처럼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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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방관’(위) ‘하이파이브’의 한 장면. 바이포엠스튜디오, NEW 제공 |
과거 미성년자였던 배우 고(故) 김새론과 교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배우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김수현에 업계가 예의 주시하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 4월 공개 예정이었던 김수현 주연의 디즈니+ 드라마 ‘넉오프’가 직격탄을 맞았다. 디즈니+는 지난달 21일 “신중한 검토 끝에 ‘넉오프’ 공개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작비만 약 600억 원이 투입됐다고 알려진 이 작품은 ‘무빙(2023)’ 이후 흥행 가뭄에 시달리던 디즈니+의 갈증을 해소해 줄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뜻하지 않은 배우 리스크로 행보가 불투명해졌다.
김수현이 기자회견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선언한 만큼 ‘넉오프’ 행보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공개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배우 리스크로 시청자를 만나기까지 3~4년이 걸린 ‘찌질의 역사’와 ‘디어엠’이 가까운 예다. 웹툰작가 김풍의 드라마 도전기로 관심을 모았던 ‘찌질의 역사’는 주연배우 조병규, 송하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3년간 표류하다가 올해 2월에야 웨이브·왓챠를 통해 공개됐다. 박혜수의 학폭 논란으로 편성이 취소됐던 비운의 드라마 ‘디어엠’도 지난 14일 KBS Joy를 통해 공개됐다. 표류 4년 만이다.
의료용 마약류를 상습 투약한 혐의 등으로 2023년 충격을 안긴 유아인 리스크 역시 업계를 관통하는 중이다. 러브콜을 많이 받은 톱스타로서 찍어 둔 작품도 많아서다. 마약 스캔들이 터졌을 때, 유아인을 캐스팅했으나 촬영은 시작 전이었던 ‘지옥’ 시즌2는 유아인이 맡기로 했던 역할을 김성철로 교체했다.
문제는 촬영을 끝낸 3편(영화 ‘승부’ ‘하이파이브’ 드라마 ‘종말의 바보’)이었다. 배우를 향한 반감이 작품 거부로 이어질 수 있기에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던 상황. 먼저 총대를 멘 건 넷플릭스 12부작 ‘종말의 바보(2024)’였다. 유아인 스캔들 이후 6개월 만에 공개된 ‘종말의 바보’는 작품 내적인 한계와 유아인을 향한 반감으로 인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외면받았다.
유아인 리스크를 가까이에서 목격한 넷플릭스가 다시 또 유아인을 기용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자사에서 공개하기로 했던 ‘승부’ 카드를 버렸다. 넷플릭스 행(行)이 좌절된 ‘승부’는 결국 배급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바이포엠스튜디오에 판권을 넘기면서 지난달 극장에 공개됐다. 결과적으로 ‘승부’는 ‘종말의 바보’와 달리 작품 완성도로 배우 리스크를 어느 정도 극복한 사례가 됐다. 유아인의 극 중 분량을 살리되, 프로모션 과정에선 그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는 전략을 내세웠던 ‘승부’는 손익분기점(180만 명) 돌파와 함께 200만 관객을 바라보는 중이다. ‘승부’의 선전으로 당장 부담을 덜게 된 건 6월 개봉을 알린 ‘하이파이브’다. ‘하이파이브’가 ‘종말의 바보’ 길을 걸을지, ‘승부’와 같은 행보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배우 리스크 속에서 선전한 사례는 ‘승부’만이 아니다. 2022년 곽도원이 음주운전으로 입건되면서 창고 신세를 졌던 ‘소방관’ 역시 지난달 12월 개봉해서 385만 명을 동원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승부’와 ‘소방관’처럼 배우 리스크를 돌파한 사례가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한 개인의 일탈로 작품을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스타에 의존하는 ‘배우 중심’에서 벗어나 작품 자체로 승부를 거는 창작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의견 역시 커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