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패션이 된 계급담론, 깊이 잃은 리메이크

‘부고니아’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5-11-26 18:54:37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킬링 디어’(2017)는 무너져가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정면에서 지르고 들어간 현대의 그리스 비극이었고,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또한 사인화(私人化)한 권력의 비합리적인 속성을 풍자한 주의 깊은 관찰과 능동적 해석을 요구하는 지적인 설계의 우화였다. 그리고 이 두 편의 걸작으로 정점에 도달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경력은 꾸준히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가여운 것들’(2023)에서 극한에 달한 인공적 미장센의 탐미주의적 매혹은 굉장한 전시적 효과를 일으키지만, 정작 영화의 서사는 여성 주인공의 행적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쳤다. 과포화된 미적 정보에 반비례하듯 내적인 의미 정보는 빈곤해지는 이 문제는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2024)에 이어 ‘부고니아’(2025)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기의 저주받은 명작,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세부적인 설정의 변경은 있으나 대체로 원작의 얼개를 충실히 따라간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은 왕자, ‘부고니아’의 제약회사 CEO 미셸(엠마 스톤)은 황제이고 성별이 바뀌었으며, 물파스 고문은 항히스타민제 크림으로 대체되고, 원작의 결말에선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파괴된다면 리메이크에서는 인류만 멸종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병구와 마찬가지로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외계인에 의한 음모론에 심취해 기업의 CEO를 납치하고 고문하는 범행을 저지른다. 그의 의심대로 CEO는 외계인의 우두머리였고, 인류의 폭력성에 실망한 외계인의 결정으로 지구상의 인류는 가축이 살처분당하듯 멸망하고 만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지구를 지켜라’는 매혹적인 리메이크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장준환은 평범한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상식 외의 존재, 질서 바깥에 놓여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외계인을 자본가의 은유로 보고 동일시했다.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이 초래한 가난과 고통을 감내하며 분노에 휩싸인 하층민 노동자와 그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성공을 누리고 있음에도 일말의 책임감도 죄의식도 없으며, 그들의 분노를 남 탓만 하는 비겁함으로 몰아가는 상류층 자본가의 몰상식함. 양자 간의 소통 불가능과 대립을 그리는 이 계급론적 이분법의 우화는 양극화가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더 심화해 가는 전 세계적 추세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동시대적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부고니아’(소를 때려죽인 후 사체를 작은 공간에 집어넣어 방치하면 꿀벌이 생겨난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의 풍속 ‘부고니아’에서 따온 것)의 문제점은 플롯과 모티브는 가져왔지만, 주제에 걸맞은 설득력이 실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지구를 지켜라’에선 피해자로서 병구가 과거에 겪은 비극이 회상으로 제시되면서 그의 공격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원인과 맥락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반면 ‘부고니아’에서 란티모스는 이러한 드라마를 대거 생략해 버렸고, 때문에 테디의 분노는 정당성을 잃은 채 단지 포즈로서만 남는다. 이건 표면의 양상만 그리면 저절로 깊이감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 착각의 산물이며, 사회적 담론은 빈껍데기인 작품을 치장하는 패션으로 억울하게 끌려 나올 뿐이다. ‘왜?’와 ‘어째서?’가 빠져버린 채 도식의 껍데기와 장광설만 남은 작품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부고니아’는 증명하고 만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원 국힘서 민주당 다수로…낙동강協 단체장 회동 촉각
  2. 2지방소멸기금 강원·충남 66억씩 최다…부산·경남 34억씩
  3. 3인구감소지역 신규지정 금정구, 정주여건 개선 올인
  4. 4매출 목표 30% 그친 홈플러스, 분리매각 기로
  5. 5부산북구 자체 감사 가시밭길…의회 “감사를 감사할 것” 벼러
  6. 6시속 110㎞ 스릴, 6m 아기상어 캐릭터, 달맞이 음악실…부산 새 핫플
  7. 7북극항로 연 아크로호 귀항…이젠 상업화 길 연다
  8. 8市 개발 ‘부산 단디체’ 무료 배포…130개국서 활용 가능
  9. 9경찰개혁·김지용 중수청장 청문도 공방 예고…부산 해수부 첫 국감
  10. 10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1. 1경찰개혁·김지용 중수청장 청문도 공방 예고…부산 해수부 첫 국감
  2. 2與·한동훈 점입가경 공방 인신공격까지(종합)
  3. 3정부, 김지용 저격 임은정 감찰 지시(종합)
  4. 4국힘 “한미 균열…정동영 통일부 장관·이종석 국가정보원장 경질을”(종합)
  5. 5주진우 "대구 천장 붕괴사고 때 이 대통령 골프, 참사때마다 벌써 세 번째"
  6. 6[속보]외교부, 사우디 전역에 ‘출국 권고’…중동 재외국민 안전대책 점검
  7. 7울산 북구, 내년 구의원 월정수당 15% 인상안 주민 의견 듣는다
  8. 8우크라 갈등에 한미 정보협력 난기류까지…靑 고심
  9. 9이 대통령 "팬스타아크로호 귀항 축하, 이번 성과 바탕으로 북극항로 시대 준비"
  10. 10노무현·박원순 소환한 이 대통령 "품격없다 비난해도 SNS 소통 계속할 것"
  1. 1매출 목표 30% 그친 홈플러스, 분리매각 기로
  2. 2시속 110㎞ 스릴, 6m 아기상어 캐릭터, 달맞이 음악실…부산 새 핫플
  3. 3북극항로 연 아크로호 귀항…이젠 상업화 길 연다
  4. 4발전설비 점검하고, 길 위 장애물 치우고…부산 기관 로봇들 맹활약
  5. 5[한 손 뉴스] 국산 비만치료 신약 ‘에페’, 위고비·마운자로에 도전장
  6. 6“부산 중심으로 체계적 해양AI 개발…협의체 꾸리자”
  7. 7최전방 GOP용 ‘AI 경계병’ 개발한다
  8. 82030세대 겨냥 ‘저도수 토마토 막걸리’ 뜬다
  9. 9고금리 벼랑 부산 취약층에 ‘재기 사다리’…910건 금융지원
  10. 10신세계센텀서 ‘미세키서울’ 26FW 선봬
  1. 1전원 국힘서 민주당 다수로…낙동강協 단체장 회동 촉각
  2. 2지방소멸기금 강원·충남 66억씩 최다…부산·경남 34억씩
  3. 3인구감소지역 신규지정 금정구, 정주여건 개선 올인
  4. 4부산북구 자체 감사 가시밭길…의회 “감사를 감사할 것” 벼러
  5. 5市 개발 ‘부산 단디체’ 무료 배포…130개국서 활용 가능
  6. 6“부산 라이프스타일 만족도 최상…아이 키우기에도 매력적”
  7. 7“우주항공복합도시 특별법 제정, 기업 유치 등 사천 경제 활성화”
  8. 8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2일
  9. 9합천·하동·산청·거창, 인구소멸 해법으로 양수발전소 유치전
  10. 10거제 양대 조선소, 지역 인재 더 뽑는다
  1. 1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2. 2과감한 샷 2R 버디 11개 폭발…유현조 ‘부산의 퀸’(종합)
  3. 31부 승격 향한 마지막 질주…부산아이파크, 막판 승점 쌓기 총력전
  4. 4유도 차세대 간판 이현지, 세계선수권 정상 메치다
  5. 5유현조, 여자골프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 정상…시즌 2승
  6. 6허훈·킹 47점 합작에도…KCC, KT에 접전 끝 패배
  7. 7한화 김경문 감독·손혁 단장 동반 퇴진…후임 인선 착수
  8. 8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9. 9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10. 10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