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분란하다. 새 선장을 만나 부푼 꿈을 안고 항해를 시작한 한국호는 처음부터 '촛불 민심'에 발목이 잡혀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표류하더니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암초를 만나 10개월 만에 좌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능한 선장과 뛰어난 갑판장 기관장 항해사가 있다면 암초를 벗어나 안정적인 항로로 이끌겠지만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싸여 탈출구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자칫 침몰되는 상황이 예견되는데도 한국호 선장의 리더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기관장과 갑판장은 눈치만 살피고 있다. 선원과 승객들은 우왕좌왕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재앙을 막기는커녕 자중지란의 모습조차 보이고 있다.
막막한 정치, 암담한 경제, 참담한 국민. 2008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한국호 풍경이다.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IMF 시즌2' 상영은 딱 10년 전에 경험한 바 있어 견딜만할지도 모른다. 금융시장 불안, 가계 부채, 실물경제 침체, 기업 구조조정, 대량 실업은 낯익은 레퍼토리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실패한 과거를 통해 전혀 배운 게 없다고 자탄할 시간조차도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포는 아직 시작조차 안했을 수도 있다. 제2의 미국발 '경제 쓰나미'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대형 파고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한국호는 난파선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하루라도 빨리 세워야 하는 비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배가 침몰할지도 모르는데 자기 이익을 챙기느라 주판알을 튕기는 것은 사악하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너와 나로 나뉘어 분열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지켜볼 심산이 아니라면 남은 4년2개월을 암초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 채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선장이 제 한 몸을 희생한다는 각오로 돌파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새롭게 능력 있는 선원을 구해야 한다. 혈연 지연 학연의 고리를 끊고 다방면에서 '내 사람'이 아닌 일할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약이 쓰다고 뱉어버리면 병만 깊어질 뿐이다.
중국 한나라 고조인 유방의 명장 한신은 "병사 10만 명을 거느리는 것보다 장수 한 사람을 거느리는 것이 낫다"며 인재등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정치적 경쟁자였던 힐러리를 새 정부에 중용하고, 대처, 루스벨트 등도 위기상황일 때 상대 진영의 유능한 인재를 등용해 갈등 상황을 단합으로 이끌어 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지난 9월에도 이 난을 통해 말한 바 있지만 지금은 정파를 떠나 '비상 거국 내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상한 상황인데 정쟁에 몰두해 계속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위기만 심화될 뿐이다. 거국 내각을 구성해 정책을 잘한다고 해서 당장 좋아질 리는 만무하겠지만 최소한 더 악화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가만히 앉아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만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사도 기회를 놓치면 만시지탄이 되고 만다.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현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1분도 허비할 여유가 없다"며 경제드림팀을 가동하고 "새 행정부를 '비틀거리며' 시작할 의도는 없다"며 행동계획을 강조한 것도 참고할 만하다.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정확한 통찰을 토대로 차분히 미래에 대응하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국호에 탄 순박한 백성들도 한 번쯤은 마음 편히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힘들었던 올해는 이 추위만 가시면 지나가겠지만 내년을 희망으로 시작할 수 없다면 국민의 마음은 엄동설한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체에 붙은 갖가지 잡것들을 과감히 떼어내고 항로를 잘 잡아 목표지점을 향해 순항했으면 한다.
정치부장